나는 오페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없는 무면허 운전자와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평범한 구경꾼의 한 사람으로서 토스카 관람 소감을 여기에 적어본다.


지난 4월 23일 19시 30분 우리 내외는 세종문화회관 대 강당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감상했다. 서울 시립오페라단이 마크 깁슨이 지휘하는 경기교향악단과 더불어 박세원 총감독의 지휘로 토스카를 상제한 것이다. 내가 감상한 토스카는 이번까지를 합하면 모두 세 번째이다.

내가 맨 처음 오페라를 접한 것은 1958년 대학입학 후 서울 명동에 자리한 시공관에서 본 Cavalleria Rusticana였다. 난생 처음 보는 오페라였기 때문에 이런 음악과 연극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바로 저런 형식의 음악과 노래가 진짜 음악 같다고 생각했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너무 깊은 감동을 받은 탓에 그 다음 해 가을쯤인가 벽보에 나붙은 오페라 토스카 공연광고를 보고 푸치니의 그 유명한 오페라 토스카를 꼭 가보고 싶은데 가정교사의 호주머니 형편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진은 푸치니)
 그런데 뜻밖에도 주인집에서 오페라 토스카 초대장이 있는데 주말에 한번 가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주인아저씨 내외분이 다른 일정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얻은 표를 준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내심의 축제 같았다. 빈집에 황소 들어오는 것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그날 밤 토스카에서 들었던 아리아들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을 만큼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 때만해도 토스카의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나 오묘한 조화의 가사를 나는 이태리어로 암송하면서 명동의 음악감상실에서 여러 차례 여러 성악가들의 노래로 열심히 들었다. “별은 빛나건만”을 부른 성악가들은 너무 많았다


나에게 인상적인 분은 마리아 델 모나코로서 고함지르지 않는듯하면서도 높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카바라도시의 심정을 쏟아놓는 테너음성을 들으면 전신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짜릿해 왔다. 토스카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경쾌하면서도 간절한 노래이지만 내가 전혀 흉내 낼 수 없는 소프라노의 노래였기 때문에 열심히 간직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후 나의 삶속에서 오페라는 한동안 거의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60년대 10년 동안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나 붙들려 들어가 서울 서대문 교도소에서 500여일을 보내야 했고 그에 뒤따르는 실업과 가난으로 하여 오페라 간판마저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삶이 안정 되면서 부터 다시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내도 오페라음악을 사랑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던 마리아 칼라스와 스테파노의 공연도 감상했다.


두 번째 토스카 감상은 시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의 장충단 국립극장에서인 것 같다. 이때는 노래도 노래려니와 스토리도 집중해서 들었다. 그때는 요즈음처럼 모든 오페라 대사와 노래를 원어로 하면서 자막이 나오는 방식이 아니고 번역된 한국말로 하기 때문에 한국성악가들의 레시타티브나 아리아의 한국번역 가사들이 사뭇 어색하게 들렸다. 오페라 대사가 어색한 우리말로 들리면서 비로소 우리나라의 창극이 바로 한국판 오페라임을 깨달았다.
1950년대 초엽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광주극장에서 공연하던 임춘앵, 조금행, 김경애 씨등이 주연으로 활약하던 여성국극 햇님 달님을 어머니 따라서 구경한 일이 있다. 그때 햇님과 달님간의 사랑이야기를 즐겁고 슬프게 연극화 했는데 모든 대화가 창(唱)으로 이어졌다. 창의 아니리나 창으로 하는 대화가 바로 오페라의 레시타티브요 간절히 부르는 한 곡의 판소리가 바로 오페라의 아리아 아니겠는가.


이번에 내가 본 서울시립오페라단의 토스카는 박세원 총감독의 연출 하에 극과 무대를 현대화된 기법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면서도 푸치니 작곡의 모든 음악과 극중 대사를 130분에 걸쳐 전부 소화해냈고 생동감 나는 오케스트라가 밑받침됨으로 해서 서양무대에 상제해도 큰 손색이 없을 수준작이었다.         (이소자여사의 대춘향전 광고)
특히 토스카 역을 맡은 김은경 교수의 열창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고성현씨가 맡도록 되어있던 스칼피아 역은 고성현씨의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여 최진학교수로 바뀌었지만  너무 실감나는 것이었다. 테너 박기천 교수의 카바라도시 역 역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에 합당했다.

 

무대는 항상 바뀌고 극의 구성도, 의상도 변하지만 푸치니의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시간을 초월해서 생명력을 갖는 것을 고전이라고 한다면 이제 푸치니의 오페라도 이미 고전이 되었다. 주인공 네 사람이 모두 죽는 끔찍한 비극인데도 슬픈 표정으로 극장을 나오는 사람은 없다. 스토리보다는 한 대목 한 대목의 훌륭하고 장엄한 음악과 아리아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관객이 푸치니 극의 스토리를 알고 있기때문인지도
                                                                                    (소프라노 김은경)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국극 춘향전은 몇몇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서양의 오페라는 요즈음에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공연되지만 우리나라의 창극, 특히 여성국극은 사살 상 소멸되고 있다. 오는 5월 1일 이소자 여사가 자기 사재를 털어 여성국극 대 춘향전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오후 2시, 6시30분에 공연한다고 한다. 한국판 오페라인 여성국극 부흥의 계기가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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