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燮日의 북의 3대 세습으로 본 평양의 봄
이 글은 2011년 3월 23일 오후 6시 프레스센터 18층 오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주섭일 박사 출판기념회에서 행한 축사를 겸한 서평이다 |
한중문화협회 이 영 일 총재
저자 주섭일 박사는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입학한 후 캠퍼스에서 나와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눈 이래 어언 5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간 나와 주 박사는 비록 전공은 달랐지만 동시대인으로 같은 캠퍼스에서, 도서관에서, 학림다방이라는 조그마한 찻집 등에서 노상 만나 차를 마시거나 쌍과부 집에 들려 막걸리를 마시면서 많은 토론과 대화를 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또 나와 주 박사는 4.19 학생혁명대열에 함께 서면서 당시의 시대정신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동시에 민족사의 분단시대 극복이라는 소명의식을 공유한 동지적(同志的) 유대 속에서 친구로서 살아왔다.
이번에 출판사 사회와 연대가 발간한 주섭일 박사의 북의 “3대세습과 평양의 봄”은 주 박사가 파리 제13대학에서 박사학위로 쓴 논문을 책으로 옮겨 세상에 내놓은 ‘한말변혁운동과 프랑스 혁명“이후 열다섯 번째의 저술이다. 내가 알기로 주 박사에게는 그가 경륜을 편 삶의 현장이 크게 보아 두 곳이었다. 첫째 현장은 그가 가난한 불문학도로서의 대학을 마치고 신문사 사회부기자로서 활동하던 무대였다. 그는 4.19혁명이 5.16군사쿠데타로 뭉개진 이후 4.19혁명이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대학가의 연면한 데모투쟁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취재했다. 각 경찰서마다에 분산 수용되어 있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보도하면서 데모 현장을 떠난 선후배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학생운동으로 옥살이하다가 낭인 되어버린 당시 운동권 동료들을 챙기는데도 부지런했다. 이 당시 그를 이처럼 열심히 뛰게 했던 동력은 민주화였을 것이다.
그러던 주 박사에게 새로운 현장이 펼쳐졌다. 파리특파원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불문학을 전공한 기자들이 누구나 발령받기를 희망했던 바로 그곳에 그는 보내졌다. 파리는 서울과는 다른 무대에다. 공산주의를 비판한 알베르 까뮈와 공산주의의 가치를 지겹게 옹호한 사르트르와의 논쟁이 한창이던 때 그는 파리에 있었다. 국가의 자율성을 진영이익에 우선시키는 그람시와 알튀쎄 간의 토론, 마르쿠제와 포퍼 간의 논쟁도 세기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던 바로 그 시기의 파리를 무대로 그는 취재활동을 하면서 한말 동학운동으로 표현된 민족주의와 프랑스 혁명사상의 비교연구에 천착했다.
그러나 역사의 큰 흐름을 그가 학구에만 전심하게 하지 않았다. 동구라파와 소련의 붕과가 시작되면서 분단독일이 통일을 성취하는 새로운 정세가 펼쳐졌다. 이제는 중앙일보 파리특파원에서 세계일보 파리특파원으로 직장을 바꾸면서 파리에 머물러 동유럽 변화의 현장을 부지런히 쏘다녔다. 이번에 발간된 평양의 봄에 담긴 이야기는 북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구공산권의 변화와 붕괴, 소련제국의 해체와 그 배경, 독일의 통일과정, 특히 헬무트 콜 서독 수상과 겐셔 외상 등이 펼치는 통일외교, 미국 조지 부시 1세 대통령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마가렛 대처 영국수상들의 움직임을 리얼하게 취재했다.
그간 많은 학자들이 동구라파와 소련제국의 붕괴과정을 연구, 많은 저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실의 나열이나 시계열방식에 의한 사건의 정리로 시종되었다. 물론 깊이 있는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 박사처럼 동구의 변화와 소련제국의 붕괴, 독일의 통일문제를 자기 조국 대한민국의 통일문제에 연관시키면서 남의 문제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사실의 전후관계와 거기에 작용한 힘의 맥락을 쫓아서 취재하고 정리한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그는 독일통일의 막후교섭과정을 잘 파헤치고 있다. 물론 서독의 성공적인 경제발전이 전제되겠지만 그는 독일통일에서 외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매우 중시, 평가했다. 분단에 작용한 독일주변 4강의 입장을 조율, 독일통일을 긍정하도록 만들어 내는 외교야말로 통일외교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물론 역사적인 큰 사건은 누구의 예언이나 예측과 관계없이 도둑처럼 찾아온다. 오늘의 중동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견한 정치학자나 미래학자거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헬무트 콜 독일 수상자신도 자기가 영도하는 독일 통일이 이처럼 뜻밖에 이루어지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통일의 결실을 맺는 데는 외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 기회란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기 때문에 한번 놓치면 다시 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독일통일과정의 역사를 당시 주독대사의 리포트보다 더 실감나게, 전후관계의 맥락을 심도 있게 파악, 기술한 책이나 논문, 보고서가 나의 과문 탓도 있겠지만 아직 내 눈에 띄지 않았다. 그가 이처럼 깊이 있는 취재와 자료파일을 만드는데 작용한 힘은 무엇인가. 동서냉전으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열망하는 그의 절절한 소명의식이 취재와 분석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동구라파로부터 소련이 겪는 변화를 살피고 뒤이어 중국과 베트남이 변화하는 과정 을 분석한 후 끝으로 오늘의 쿠바의 카스트로가 공산주의로는 안 된다는 고백과 더불어 정권을 새로 계승한 아우의 시장 지향적 경제계획을 승인하는 과정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 분석과 전망에서 유추할 때 평양의 봄은 필연적이다. 역사는 1인 독재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계획경제도 실효(失效)된 지 오래다. 북한정권이 유지되는 것은 중국이 동북아외교에서 아직도 북한의 존재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의 필연성을 예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아직 누구도 예언할 수 없다. 도둑처럼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 박사는 김정일의 승계과정은 연착륙이었다고 평가한다. 20년에 걸친 후계수업과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미‧북 간에 제네바회담이 열려 이 회담의 효력이 김일성 사후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미국 정부의 희망 때문에 김정일의 후계 작업은 오히려 용이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다르다. 후계수업이 없었고 김정일의 병상 통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환경은 유엔안보리의 두 차례에 걸친 북한제제결의가 발효 중에 있다. 여기에 남쪽의 햇볕정책 마저 그 효력을 잃어 경제난이 가중되고 여기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평양에서의 세습정권도 조만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주 박사는 내다보면서 한국주도의 통일로 전개되는 역사의 새로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일통일이 비핵화와 영토회복주의의 포기로 주변국들의 통일지지를 얻었던 교훈을 지적하면서 한국통일도 비핵화 없이는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말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의 필요성을 진언한다. 여기에 통일외교의 진정한 과업이 있다. 아울러 통일을 위한 국론통일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끝을 맺는다. 정말 일독을 권할만한 좋은 저술이다. 젊은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독본이다. 특히 P세대들의 사유의 폭을 넓히는데 이 책은 그 유용성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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