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감동적인 이야기여서 여기에 퍼온다)
 
철 지난 유행가를 성가로 만드는 힘

박은주 기획취재부장 zeeny@chosun.com 2011.01.26 조선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 속이 오히려 후련해진다. 이런 걸, 카타르시스(정화·배설)라 한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지난해 1월 14일 선종한 이태석 신부 이야기는 그런 카타르시스와는 좀 거리가 있다. 책('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으로, 극장 다큐멘터리('울지마 톤즈')로, 방송 다큐로 이태석 신부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실컷 울었는데도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신부는 내전으로 엉망이 된 아프리카 수단에서 2001년 12월부터 7년여 동안 한센병과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했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내일은 오늘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찌 그렇게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부산에서 태어난 이 신부는 10남매 중 9번째다. 형님 중 한 분이 신부이고, 누님 한 분도 수녀다. 10남매 중 셋이 종교에 몸을 맡겼다. 그 집안 피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신부의 형님이 신부가 될 때 집안에 소동이 일어났던 것을 봤던 그는 신부 꿈을 가라앉히고 의대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결국 신부가 됐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그럴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우리 마음은 훨씬 편해질 것이다. 봉사할 사람은 양심이 아니라 DNA가 결정한다고 믿으면 죄책감을 조금은 면할 수 있다.

 

기록화면으로 남아있는 이태석 신부의 모습은 흔히 상상되는 '성자'의 모습은 아니다. 흑인 아이들의 머리를 꿰매며 그는 말한다. "(피부가) 다 새까마니 실이 안 보이네." 아이가 아프다고 꼼지락거리면 머리도 한 대 때린다. 톡 하고 말이다. 근엄 떠는 성직자가 아니라 가식 없이 친근한 '아저씨' 같은 모습은 보는 이의 양심을 더 세차게 찌른다.

 

사실 이역만리에서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이들은 지금도 수백명도 넘는다. 이태석 신부와 2회 한미자랑스런의사상을 공동수상한 심재두 샬롬클리닉 원장 또한 지난 93년부터 역시 의사인 부인과 알바니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알바니아에서 그는 결핵을 퇴치하고 의료캠프를 만들어 난민을 보살펴왔다. 뿐만 아니다. 26회 행사를 치른 보령의령봉사상 수상자들, 올해 10회를 맞은 한미참의료인상 수상자들 상당수가 국내외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이때, 이 땅에서 신부의 모습에 사람들이 그토록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단지 그가 세상을 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의사상을 수상하면서 이 신부는 "백신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고도의 의술로 불치병을 고친 것도 아닌 내세울 것 없는 조그마한 의술로 (아프리카에서) 몇 년 살았을 뿐인데…"라고 말했다. 공(功)을 드러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가식하지 않는 종교인의 모습. 온갖 다툼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우리 교회, 성당, 절에서 실망한 종교인들에게 진짜 종교가 이런 것임을 다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선종 3개월 전,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이태석 신부는 가발을 쓰고 휴대용 반주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윤시내의 철 지난 유행가 '열애'가 성가(聖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들린다. 이게 종교의 힘이다. 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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