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북아 정세와 한국의 국가위기

20191112

연사 : 이 영 일

동북아 공동체연구재단

목 차

1. 들어가면서

2. 동북아정세의 변동과 추이.

. 미중패권전쟁의 양상

. 미국의 대응

3. 미중관계의 전망과 그 파급예상

. 누구도 외면할 수 없거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

. 중국 상황 평가

4. 한일 간 갈등의 심화

. 수교협상의 회고

. 새로운 갈등의 등장

5.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 핵과 미사일 문제의 현황

. 북한의 핵문제와 대응

. 핵 상황처리전망

6. 글을 맺으면서

. 한국현대사의 교훈

. 최근 한국의 정치변동과 국가위기

. 안보정책상의 위기

. 종합결론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와 한국의 위기

들어가면서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출범한지 어언 12개성상이 지나고 있다. 이 연구재단 발족에 동참한 사람들은 세계역사발전의 큰 축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으로, 특히 동북아시아로 옮아오고 있다는 시대적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동북아시아 중에서도 한국이 이 지역발전에서 중심축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꿈과 비전을 공유했다.

회고컨대 지난 12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급성장이다. 20107월 중국이 총량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솟았다. 둘째로 북한의 군사력이 핵과 미사일 등을 보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안전과 평화에 위협이 될 만큼 강화되었다. 셋째는 트럼프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크게 변화했다. 우선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세력 내지 수정세력으로서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지목하고 이중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가장 큰 경쟁세력으로 규정,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전면적인 견제정책을 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미중 양국 간에 패권(覇權 Hegemon)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이런 정세변화이전에 한국은 국내적으로는 세계랭킹 10위에서 12위를 오르내리는 G20 권내에 드는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중국,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바뀌었다. 본 연구재단이 추구하는 동북아 지역발전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꿈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2016년 정권이 교체되면서부터 국가의 제반 상황은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그리던 꿈과 목표를 실현할 전망을 돌연 어둡게 하고 있다.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동맹을 통한 국가안보라는 세 궤도 위에서 국가발전을 도모한다는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새 정권은 남북관계개선과 자주성 확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모든 시책을 여기에 종속시킴으로써 한국의 오늘을 만들어낸 국가발전의 궤도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국민들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뚜렷한 미래비전도 내놓지 않고 기존질서만 흔들어댄 결과 경제는 연평균 성장률이 1%선으로 내려앉고 내치외교는 난맥과 혼란만 거듭한다. 나라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국론갈등과 국민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을 유념, 최근 동북아시아의 주요정세변동 요인과 여기에서 조성되는 위기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대안을 모색코자한다.

 

2. 동북아시아정세의 변동과 추이

 

. 미중패권전쟁의 양상

오늘날 미중관계를 무역 전쟁관계라고 말하지만 무역전쟁은 양국 간에 시작된 패권전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다투는 패권싸움이 양국 간에 시작된 것이다. 양국 모두 핵 강국이라는 제약 때문에 군사전쟁만을 뒤로 미룬 가운데 모든 분야에서 대결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국제정치이론의 세력전이(勢力轉移)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싸움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중국은 등소평 외교의 덕택으로 2001년 미국의 지원을 얻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고 자유무역질서와 개발도상국지위라는 특혜를 활용, 국력의 급신장을 이루었다. 중국은 20107월 일본을 재끼고 세계2(G2)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2016년부터는 구매력평가(PPP)에서 미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힘입어 중국은 스스로 신형대국임을 내세우면서 중국도 세계문제에서 미국과 대등한 발언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강대국(Responsible Stakeholder)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을 권고하고 신형대국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이 주석이 되면서부터 중국의 대미자세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시진핑은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가 말한 것처럼 세계최강국을 지향했다. 아편전쟁이후의 100년간의 치욕의 역사를 끝내고 중국이 옛날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비전으로 내놓았다. 시진핑은 중국의 일본추월(追越)을 상황의 큰 변화로 보고 상황이 달라지면 사고(思考)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등소평의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속에서 힘을 기르자-에 중국이 더 이상 메일 필요가 없고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는 2017년의 제19차 당 대회에서 창당 100년을 넘어서는 2025년에는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를 실현, 현대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선도국가가 되며 2035년에는 선진복지국가가 되고 건국 100년이 되는 2050년에는 세계최강이 되겠다는 발전시간표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아울러 그는 이렇게 큰일을 잘 감당하도록 당이 자기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요구, 2018년 개헌을 통해 당주석의 임기제한 조항을 철폐했다. 이에 대해 당내 경쟁세력들이나 중국내 민주개혁세력, 소수민족들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시진핑은 ITAI를 이용한 디지털감시체제를 확대시행 하고 있다.

또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Initiative(BRI)>정책을 내세워 중국의 영향력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19차공산당대회이후의 중국은 한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이래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를 바꾸겠다는 도전이었다.

 

. 미국의 대응

미국정부의 새로운 대 중국정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2018104일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한 펜스 부통령의 연설이었다. 이 연설에서 펜스 부통령은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의 일원으로 포용하고 개발도상국으로 특혜를 제공한 한 것은 경제를 발전시켜 먹고 살기가 편해지면 독재정치가 풀리고 인권도 향상되며 자유가 신장되는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였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것은 1인 독재가 모택동 때보다 더 강화되어 전체 주민들이 혹독한 디지털 감시체제하에서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펜스는 중국은 독창적인 기술개발이나 산업발전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선진투자기업들로부터 기술을 강탈하거나 도적질 하고 경영노하우까지 내놓도록 강요하면서 지적재산권의 해킹, 도적질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진했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을 떠나 도시나 해안지역으로 몰려온 자국 농민들에게 호구(戶口)제도를 적용, 외국인 노동자처럼 염가노동을 강요하고, 이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등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인권유린방식으로 경제를 키워왔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나아가 펜스는 중국기업들이 미국에서 누리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미국기업들도 중국에서 누리도록 허용하는 조치가 있어야 미중 간에 공정무역, 자유무역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미중무역협상의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얻은 모든 이득은 그것이 불공정거래의 산물이기 때문에 중국의 대미무역규모 5000억 달러 중에서 그 절반에 해당하는 2500억 달러에 대해 25%이상의 관세(과거에는 10%)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시진핑도 맞불관세로 응수하면서 대미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온 국민들이 애국주의기치로 뭉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맞불관세는 대미수입량이 미국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2019년 하반기에 매년 400억 내지 500억 불 상당의 미국농산물을 중국이 구매하겠다고 함에 따라 미국도 관세율을 25%에서 30%로 더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보류하고 기술규제를 다소 완화하는 선에서 무역협상을 타결키로 했다고 하지만 아직 시행은 보류상태다.

이러한 수준의 합의는 간헐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양국 국내정치적 필요를 다소 충족시킬 뿐 이미 시작된 패권싸움이 곧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아직도 5G의 큰 손인 중국의 화웨이(華爲)에 대해 동맹국들에게 거래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하면 그 순간부터 중국 헤커들의 무상출입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미국은 말한다. 미국은 또 2018년도 전략보고서에서 아시아대륙의 패자를 꿈꾸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함대사령부를 인도태평양함대사령부로 재편성하면서 일본, 한국, 타이완, 필리핀, 호주, 인도를 연결, 대 중국포위망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은 구소련과 체결한 바 있던 중거리 미사일 제한협정(INF)에서 탈퇴한 후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본격 개발, 일본이나 한국 등에 배치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은 INF탈퇴이유로 러시아의 협정불이행을 말하지만 그 진의는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능력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또 미국은 중국이 자기영토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에 대해 항해의 자유를 앞세워 수시로 함정을 순항시키면서 중국의 영토주장을 국제법적으로 인정치 않는다.

 

3. 미중관계의 전망과 그 파급 예상

 

. 누구도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현실

미국과 중국이 지금 펼치는 패권다툼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중국에 인접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으며 일본도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52개의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하고 있다. 이중 7개 기지는 유엔군사령부의 통제 하에서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동맹국의 동맹국이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다지만 현시점에서 한국, 미국, 일본이 3자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지구상에서 경제력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동맹체가 되어 중국의 패권굴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이렇게 되면 한국의 대미전략가치는 높아지고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베트남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아직 미중패권전쟁에서 최종적인 승자가 미·중의 어느 편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모든 면에서 중국을 앞선다. 우선 미국은 식량을 자급하고 에너지도 쉐일(Shale)가스 혁명을 통해 중동의존을 벗어나 자립했다. 과학기술적 창의와 군사력에서도 중국을 압도한다. 동맹외교에서나 Soft Power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4년에 한번 씩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라는 국내적 제약이 있다. 또 미소(美蘇)시대와는 달리 중국은 미국에 많은 거래 선을 깔고 있어 대내적으로 풀어야 할 중국문제도 많다. 중국학자 옌쉐퉁(閻通))은 이제 중국은 필요한 기술과 인재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세계의 누구도 중국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진핑도 지구전(持久戰)으로 밀고 나가면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체제상의 불리에도 불구하고 세계패권을 지키려면 중국제압은 피할 수 없다. 설사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미국의 중국제압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을 압도할 최강국이지만 대국간 갈등이 가져올 세계 공동체의 피해파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승부를 피하면서 내파(Implosion)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 중국 상황 평가

중국도 대내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신강 위구르나 티베트 등 소수민족문제를 비롯하여 하나의 중국 론의 준거가 될 일국양제(一國兩制)가 홍콩 사태로 시험대에 올랐으며 타이완의 독립운동도 시진핑 정권에는 큰 부담이다. 또 미국의 인권공세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1인 독재와 디지털 감시체제 강화에 대한 중국내부 민주세력들의 저항, 당내불만세력들의 도전, 지역과 계층 간에 확대일로에 있는 불평등 때문에 시진핑 정부의 공안예산은 줄곧 국방예산을 상회하고 있다. 디지털 독재에 대한 저항을 막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11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메르켈 독일 수상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크고 작은 어떤 장벽도 허물리고 말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구공산당과 시진핑이 자유를 향한 역사의 큰 흐름을 애국주의 선동과 감시로 끝까지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4. 한일 간의 갈등 심화

 

. 수교상황의 회고

이상의 정세변동요인에 부가해서 최악의 상태로 변한 한일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변수의 하나다. 한일관계는 1965년 어렵게 국교를 정상화했다. 어려웠던 원인은 1910년의 한일합병조약의 처리문제였다. 이승만 정부는 1910년의 합병조약이 강박에 의한 조약이기 때문에 원천무효’(Originally Null and Void)라는 입장이었고 이에 반해 일본 측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수용, 식민지를 모두 포기했기 때문에 한일합병조약은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입장으로 맞섰다. 한반도에 대한 36년간의 식민통치의 불법성을 인정치 않고 무조건 항복에 의한 식민지 포기로 한반도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원천무효를 관철시키지 않으면 한국은 배상청구권을 갖지 못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임중 한일수교를 거부하면서 일관해서 요구했던 주장이 원천무효였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비공식적 중재를 통해서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는 이미 무효라는 전제하에 한국에 남겨진 일본인 재산권의 전면포기 한국에 대한 무상 경제지원 3억 달러, 유상지원 2억 달러-이중 2500만 달러를 징용노동자보상금으로 책정했다-로 양국은 협상을 타결, 수교조약을 체결하였고 국회는 이를 비준했다.

 

. 새로운 갈등의 등장

한일수교로부터 이제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경제발전의 결과로 G20의 국가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최근 수교당시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고 여겨진 징용 노동자문제가 재론되기 시작했고 수교협상에서 중시되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도 새롭게 제기되었다.

오늘날에는 국가라도 개인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협상 처리할 수 없다는 인권사상이 발전했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재론을 수용하는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에 앞선 노무현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일본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보고 역대정부가 제대로 처리 못한 보상 문제를 정부 책임 하에 해결하겠다면서 필요한 보상조치를 취했다. 위안부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끈질긴 협상 끝에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게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피해당사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논란은 남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징용노동자들은 전범(戰犯)기업이라고 부르는 미쓰비시(三菱)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개인별 배상청구소송을 제기, 한일 간에 외교문제를 일으켰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소송이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 정부와 법원 간에 합리적 해결방도를 조율하는 도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새 대법원장은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일제(日帝)의 불법행위에 따른 '개인별 보상청구시효'는 아직 유효하다고 판시, 미쓰비시와 신일본 제철은 고소인들이 요구대로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한국국내에 투자된 미쓰비시 등의 재산을 억류, 보상받게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위반, 즉 국제 법을 위반했다고 강력 항의 하면서 한일청구권협정문에 명시된 제3자 중재절차를 따르자고 제안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이를 외면 내지 무시했다.

결국 일본의 아베정부는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반도체생산의 필수요소인 불소 소재(弗素素材)3종류에 대한 수입제한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수출의 전면금지가 아니고 소재수출의 조건을 자동수출대상에서 심사케이스로 바꾸었다. 그러나 심사의 전권을 일본이 쥐기 때문에 한국기업에는 위협적이었다. 이에 맞서 한국정부도 수출입상의 대일 우대조치를 폐기함과 아울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시한을 연기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파기시켰다. 한일관계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단절을 피하려면 국제법적으로 유효한 한일 간의 제반협정을 준수하고 사법부의 판단이 국제법과 충돌하면 이를 치유할 국내정치차원에서 특례입법을 제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5. 북 핵과 미사일 문제

 

. 핵과 미사일 문제의 현황

동북아시아 정세가운데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다. 미국은 당초 북핵문제를 대 중국정책의 부속(附屬)문제로 간주하고 해결의 열쇠를 중국이 쥐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역대 다른 미국행정부와는 달리 북·중 관계에 내포된 갈등에 주목, 북한을 중국영향권에서 떼어놓으려는 외교공세를 시도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 해서 김정은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한껏 올려주었다. 이어 제2차 회담을 하노이에서 개최, 북한이 비핵화를 추동하면서 베트남 모델을 벤치마킹함으로써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빅딜(Big Deal)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빅딜을 수용할 태세가 아니었다. 트럼프의 제안을 덥석 받기에는 미·북 간에 신뢰가 얕았고 파키스탄처럼 북한도 대미협상을 통해 핵 보유를 인정받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9.11 사건에서 미국이 얻은 뼈아픈 교훈은 이슬람의 테러분자들의 손아귀에 불량국가(Rogue State)로부터 단 한 개의 핵탄두도 들어가게 해서는 미국에 큰 위협이 된다는 강한 인식이었다. 9.11을 체험한 미국으로서는 핵의 완전하고 검증되고 돌이킬 수 없게 폐기한다는 원칙(CVID)에서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었다.

 

. 북한의 핵 상황평가

흔히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핵개발의 동기는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1950년에 실패한 무력통일을 기필코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제어할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김일성의 전략적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어렵고도 힘든 관문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유엔안보리가 결의하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제재의 벽이다. 둘째로는 민생경제의 파탄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다. 북한은 이상 두 가지의 어느 것에도 자신이 없다. 핵과 미사일의 포기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맞서면 맛 설수록 북한 자체의 안보불안은 더 커지고 민생경제도 더욱 피폐해진다. 오늘날 대다수의 국가들은 핵무기 없이도 국가안전과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 때 미국과 10년 이상 전쟁을 치룬 베트남도 핵무기 없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성취하고 있다. 북한은 생존이나 안보를 위해서 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3대에 걸친 시대착오적 세습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현시점에서 북한은 국제제재가 지속되는 한 국가로서 존립을 유지해 나가기조차 어렵다. 식량, 의료, 에너지가 태부족한 상태를 언제까지 버티고 나갈 것인가. 북한주민들의 불만은 이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김정은의 손에 남은 카드는 대미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길 뿐이다. 미국을 상대로 협상하려는 것은 미국만이 핵 폐기의 대가를 실질적으로 제공할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핵 상황 처리 전망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은 핵의 완전포기의 대가로 북한의 베트남 화(Vietnamization)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을 트럼프는 빅딜(Big Deal) 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는 하루아침에 해체될 수 없다.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적어도 핵 폐기가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북한이 지니고 있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종류, 숫자, 위치신고(Inventory) 검증(Verification)과 사찰(Inspection) 해체(Dismantlement)관련조치 핵 폐기에 따른 보상조치(Reward),체제보장요구를 담보할 평화체제가 협상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 미국과 북한 간에 협상이 재개되면 북한은 원칙 면에서 빅딜을 수용하고 이 빅딜 속에 이상 지적된 5개항의 내용을 채우는 스몰딜(Small Deal)들을 하나로 묶어 빅딜타결로 합의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합의의 이행정도에 상응, 국제제재의 부분해제도 검토될 수 있다. 이러한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쉬울 것 같지 않다. 협상이 결렬되고 새해에 북한이 다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다면 미국은 군사적 조치이외의 다른 수단이 없다. 트럼프는 본시 북한에서는 정권을 교체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김정은이 완전 비핵화에 순응하면 북한의 베트남화를 지원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염과 분노로 비핵화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직도 핵 보유 세습독재국가에 집착하기 때문에 협상해결의 길이 쉽게 열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6. 한국의 바람직한 선택

 

. 한국현대사의 교훈

한국은 국토분단 이래 지정학이 한반도에 부과했던 역사적 운명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조선조 500년을 빈곤의 굴레 속에 묶어두었던 대륙세력의 꼬리국가에서 해양세력의 대륙진출 교두보로 지정학적 운명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 대륙세력에 붙은 북한지역은 아직도 조선조 5백년처럼 1인의 자유는 있지만 만인의 자유가 없이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 서구 등 해양세력으로부터 국가발전에 필요한 지식, 기술, 정보, 자본을 공급받았으며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촉진시켜왔다. 현재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G20에 속하는 국가로서 세계 랭킹 12위를 넘나들며 2012년부터는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인구 5천만 이상에 1인당 GNP 3만 불을 넘는 국가클럽)에 가입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한미동맹을 통한 국가안보라는 세 기둥 위에 국가발전의 궤도를 깔고 해양세력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기 때문에 한국은 탄탄한 궤도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 최근 한국의 정치변동과 국가위기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그간 단단했던 국가발전의 궤도가 크게 흔들리면서 국가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그간 한국은 4.19혁명, 5.16 쿠데타, 10,26사건으로 정권이 바뀌는 역사를 살아왔다. 그러나 정권들이 바뀐다고 해서 국가발전의 궤도이탈현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한미동맹에 의한 안전보장이라는 국가유지의 근간은 조금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민 간에 국가이익개념이 다르지 않고 공유되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국민과 대통령 간에 국익 개념이 달리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선 내치 면에서 국민적 합의부재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득주도성장, 탈 원전, 최저임금제, 노동시간의 주52시간으로의 규제, 세금복지정책 등이다. 특히 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복지정책은 다음 세대나 다음 정권이 부담 없이 승계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 확충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문 정권은 세금을 국민의 혈세로 보지 않고 정권지지 세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 세금복지-‘묻지마 현금복지’-를 실시했다. 우리 국민 중 1200만 명이 이러한 세금혜택을 입고 있다고 한다. 만장일치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이를 그대로 입증한다. 조국(曺國)임명파동이 이를 입증한다. 문 정권은 세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른바 망국적 세금주도성장을 획책, 세금은 매년 수 조원씩 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실시하는 이러한 정책이 겨냥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 투자가들은 정치적 전망이 밝던 몇 안 되는 아시아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위상이 지금 크게 흔들린다면서 국가경제운영의 방향을 바꾸라고 권고하다. 그러나 방향전환도 하지 않고 뚜렷한 미래비전의 제시도 없다. 내놓을 비전이 없을 때 쓰는 카드가 과거를 뒤집어 파헤치는 적폐청산이다. 문 정권은 여기에만 몰두한다. 국민적 혼란과 좌절만 확산된다.

 

. 안보정책상의 위기

안보외교에서도 국익개념이 전혀 공유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현재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주한 미군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抑止)하고 북한의 핵 공세를 제압할 미국의 전략자산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이나 판문점 선언으로 평화가 도래했고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문 정권의 평화 팔기는 북측의 표현대로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소리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문 정권은 전쟁보다는 나쁜 평화가 낫다면서 평화만 강조한다. 문정권이 3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군사합의나 중국과의 3불합의(3不合意)도 상대방의 행동에 전혀 구속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정부는 북한이 올해 13회에 걸쳐 유엔결의를 위반한 탄도 미사일이나 방사포를 발사해도 아무 대응도 못하면서 남북관계가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한일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징용노동자문제가 나오자 이를 빌미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36년간의 식민통치의 불법성문제를 재론하였다. 여기에 편승 반일주창자들은 한일협정을 뒤엎으려하면서 일본상품 불매, 관광 거부, 죽창으로 궐기하자는 등 시대착오적 망동을 부추겼다. 이를 비판하는 국민을 토착왜구로 몰아세우고 결국 한일갈등 속에서 GSOMIA를 연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양국관계를 악화시켰다. 한국은 대 중국 포위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결과적으로 실현 불가능 하게 만들었다. 문재인정권이 취하는 반일(反日)정책은 미국의 대 중국 전략구도를 허물어뜨린 점에서 반미(反美)나 다름없고 미국은 한국이 동맹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행태는 한국의 전략 가치를 감소시키고 주한미군 철수 론이 나올 빌미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권이 한국의 국익논리를 이른바 진영논리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 의하면 문재인 정권이 한마디로 한국외교를 탈미(脫美), 반일(反日), 친중(親中), 종북(從北)으로 바꾸려고 할 때만 통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도 G20반열에 오른 국가인 만큼 G20국가답게 징용자문제를 한일 청구권 협정대로 정부가 맡아 해결하되 다만 한마디 일본의 불법적 식민통치로 받은 치욕의 역사를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발표로 양국갈등을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GISOMIA도 계속 유지, , , 일 관계를 명실상부한 공조로 정상화시켜야 안보위기의 현실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종합결론

최근의 한국정치변동은 흔히 보수정권을 진보정권이 대체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보정권으로 분류되는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도 국익개념이 정부와 국민 간에 공유되었다. 공유되지 않으면 국론은 분열되고 혼란은 가중되며 국가는 정신적인 내전상태에 빠진다. 지난 10.3, 10.9의 국민적 시위가 이런 가능성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는 침체할 수밖에 없다. 요즘 한미방위동맹도 깨지고 주한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소리가 들린다. 문 정권은 자주국방을 강조하지만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국가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구최강국과의 안보동맹은 필수적이다. 동맹을 통해 안보혜택을 받으면 주권국가로서의 자율성에 다소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떠한 동맹도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중(親中)정책으로는 얻을 것이 없다. ·중의 과거사나 사드 배치 이후의 현실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민낯을 바로 보았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지구최강인 미국과의 동맹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해나가면서 일본과도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길만이 우리를 지키는 길이라 믿으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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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의 용미탈미(用美脫美), 미국은 알고 있나

주간조선 2015/10/05-11(pp.33-35)에 기고한 이영일의 글입니다.

日 안보법 통과되던 날

이영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전 국회의원  

▲ 지난 9월 18일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안보법안 무효화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연합
필자는 지난 9월 15일부터 19일까지 4박5일간 아베(安倍晉三) 정권의 안보 관련법 제정을 놓고 전개되는 일본 여론의 흐름을 현지에서 직접 체험하기 위해 일본의 도쿄와 동북지역 중심도시인 센다이,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이 낙하된 히로시마를 다녀왔다. 아베 정부가 제출한 안보 관련 11개 법안들은 필자가 귀국하기 전날인 9월 19일 오전 일본 참의원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수적 우세로 밀어붙여 날치기 통과되었다. 이 법안들은 지난 8월 중의원 통과에 이어 이날 148 대 90으로 참의원에서 통과됨으로써 입법절차가 완결되었다.
   
   필자는 도쿄에 도착한 당일 먼발치에서 국회의사당 앞의 시위를 지켜보았고 TV와 신문을 통해 시위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일본 여행의 두 번째 정착지인 센다이로 이동했다. 도착 당일 밤 센다이 시내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대를 만났다. 필자는 우선 안보법 반대시위자들의 표정과 구성에 놀랐다. 일본 기상청이 태풍 19호로 센다이 지역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우비를 입고 수백 명의 시위대가 센다이 광장으로 질서 있고 진지하게 몰려가고 있었다. 광장에는 모리야 가스히코(守屋克彦)라는 전 재판관이 마이크를 잡고 서서 “다수결의 힘을 무기로 삼는 오늘의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서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안보법률들은 통과되어서는 안 되며 일본 국민들은 너나없이 호헌투쟁에 동참하라”고 호소했다. 이 사람은 안보법 제정 반대를 청원한 법관 75인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시위대의 선두에는 센다이 대학생들과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참여했고 한때 우리나라에서 ‘넥타이 부대’라고 알려진 샐러리맨들도 다수 참가하고 있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안보법에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서는 시위에 참가하는 도리밖에 없어 귀가하지 않고 여기 왔다”고 말했다. 센다이에서 사업을 하는 필자의 지인은 “센다이 같은 지방에서는 중앙정치 문제 때문에 시위하는 일이 드문데 이번에는 시위가 크고 전국적으로 번지는 것으로 보아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TV들은 매시간마다 안보법 관련 참의원의 동정을 알리면서 찬반 관련 인사들의 의견을 인터뷰를 통해 가감 없이 보도했다. 오사카의 한 여성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왔는데 참가 이유를 물은즉 자기도 안보법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싶은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유모차를 끌고 그대로 시위현장으로 나왔다고 했다.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중국이 힘만 믿고 센카쿠열도를 위협하고 중국 해적들이 일본 어로수역에 마구 출몰하는데, 미국에만 안보의 모든 책임을 맡기고 우리가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안보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그간 미국에 안보를 맡겨왔지만 지금 미국 형편도 국방비를 감축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동맹국들끼리 후방 지원의 길을 열어 협력하는 것이 미·일동맹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아 안보법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들 중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위협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소수였고 주로 중국의 위협을 안보법 지지의 명분으로 삼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헌법 9조는 240만의 죽음과 바꾼 것”
   
   지난 9월 18일 아침 아사히신문은 다스미 요시코(辰己芳子)라는 90세 일본 여성 요리전문가의 칼럼을 게재했는데 글에 담긴 메시지가 읽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내용을 간추리면 이 여성은 시집온 지 10일 만에 남편이 군에 입대하고 필리핀전투에서 사망한 후 혼자 살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자기가 조사한 바로는 제2차 대전으로 사망한 일본군 총 240만명 가운데 30%는 전투로 죽었고 나머지 70%는 작전 실수나 보급로 차단 등으로 굶어죽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었음을 통계로 밝히면서 일본 평화헌법 9조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240만명의 억울한 죽음과 맞바꾼(引換) 피의 대가라면서 헌법 수호를 간절히 호소했다.
   
   도쿄를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전개된 시위는 하나같이 아베 정권의 위헌 규탄이 주를 이루었다. 일본에서 최고재판소의 판사를 거친 법조의 거물들은 하나같이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지 않고 내각의 이른바 ‘헌법해석’을 개헌으로 간주, 헌법에서 수권되지 않은 안보 관련법을 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데 거의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일본의 국내외 정치 상황에 비추어 개헌과 같은 국내 절차를 하나씩 밟아나가면서 내외의 도전을 극복하기가 힘든 상황으로 보고 안보법 제정을 결단했다고 한다. 그러면 안보법을 밀어붙이는 아베의 생각은 무엇일까.
   
   우선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 경제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아베의 경제 살리기(아베노믹스)를 성공시켜야 하는데 성공의 조건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이 미국의 협력을 얻어 엔화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대륙에서 잠재적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에 편승, 필요한 협력을 일본이 미국에 제공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하는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전략의 큰 축을 일본이 맡아주자는 것이다. 아베는 미국 의회에서 국방비를 2011년부터 향후 10년 동안 6000억달러 삭감해야 한다는 시퀘스터(Sequester)법안이 통과되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정부와 교섭을 개시, 지난 4월 미국과 일본 간에 집단자위권 행사를 핵심으로 하는 방위협력지침(통칭 가이드라인) 개정에 합의했다. 그는 그 대가로 미국 국회에서 처음으로 연설을 하고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엔화 인하라는 경제 살리기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끌어냈다.
   
   
   안보 무임승차 시대의 종언
   
   그동안 일본 국민들은 1978년의 제1차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에 대해서는 냉전시기 소련으로부터의 안보 우려와 방위의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다. 1997년에 개정된 두 번째 가이드라인은 한반도 등 주변 국가의 안보 위기가 일본에 미칠 영향에 대비하자는 취지를 내세웠다. 이 시기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나 핵실험이 있었다. 이로 인해 주변 사태가 일본 자체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하여 국민들은 대승적 견지에서 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그러나 지난 4월에 개정된 제3차 가이드라인은 일본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주변 지역이 아닌 전 세계로 넓히면서 미국이 공격받으면 일본이 공격받는 것과 동일하게 대처하고 지원한다는 이른바 집단자위권을 명문화했다. 일본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 미군을 후방에서 전투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게이오대학의 헌법학자 고바야시 세스(小林節)는 “자위대의 법적 의미는 평화헌법 9조에 비추어 오로지 외부의 침략만을 막는 전수방위(專守防衛)의 경찰력이며 유엔의 평화유지(PKO) 목적을 위해 해외에 파견되는 자위대도 제2의 경찰력일 뿐 결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미군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집단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용인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가 통과시킨 안보법들은 자위대의 군대화(軍隊化)를 의미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면서 안보법 반대운동의 최일선에 나섰다. 그만이 아니라 다수의 법조인들이 “개헌 없는 안보법 제정은 일본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의 종언을 의미한다”면서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위헌 여부 논쟁보다는 안보법이 통과됨으로 해서 생활상에 나타날 변화를 우려하고 있다. 70년 동안 없었던 징집이 재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징집에 대한 우려, 방위세가 신설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 증가에 대해 우려하며 반대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젊은 대학생들이 안보법 반대에 나서는 현실적인 이유다. 70년 동안 지속된 ‘안보 무임승차 시대의 종언’을 현실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학자로서 안보법 제정 반대에 나서고 있는 우에쿠사 가즈히대(植草一秀) 전 와세다대학 교수는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DNA를 아베가 잇는 것 같다”고 했다. 전범(戰犯)인 기시 전 총리는 도쿄전범재판에서 8년 징역형을 받고 스가모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미국이 소련의 아시아 침략을 막기 위해 트루먼독트린을 발표했다는 말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려면 아시아에서 일본을 활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자기 같은 정치인을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스가모형무소에서 풀려나와 전범으로서의 과거를 덮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 우파 정치인들을 끌어모아 자민당을 창당하고 총리가 되었다. 이후 미·일 안보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강행처리했다. 법안 통과 후유증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미국의 의중을 정확히 간파하면서 일본의 진로를 개척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이 점에서 아베도 매우 유사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총리 취임과 동시에 미국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미국을 이용, 일본 경제의 살길도 뚫으면서 일본 우익들의 오랜 꿈인 일본의 보통국가화, 즉 군사적으로 거세당한 일본을 군사력을 가진 정상국가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이 대목에서 한국도 미국의 필요를 미리 읽어내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베가 해석개헌으로 정국을 밀어붙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생각하는 국민들’ 다수의 반대와 아시아 주변국들의 우려 때문에 아베의 정치적 효용이 그리 오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을 지향하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시대가 아니다. ‘아시아의 시대’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때문에 보통국가화의 고지에 일본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아베의 시대적 용도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
   
   
   참회 빠진 히로시마
   
   일본 펜클럽 회장인 아사다 지로(淺田次郞)는 “일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의 반핵운동에 앞장서는 것이 일본의 인류를 위한 참된 공헌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필자도 이러한 관점을 마음에 담고 1985년 일본 자민당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번 들렀던 히로시마를 30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동안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자료관은 많이 발전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과 실물을 보는 것보다는 자국말로 된 이어폰만 끼면 누구라도 손쉽게 원폭 피해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50여개의 전시물을 1시간가량 돌아본 후에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미국은 가해자이고 일본인은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전시물은 일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피해자라는 인식을 보는 이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곳에 왜 원자폭탄이 떨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한마디 설명도 없이 마치 미국이 최악의 폭탄을 만들어 어린 초등학생이나 아녀자들을 처참하게 희생시킨 반인도적 집단인 것처럼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중국의 난징대학을 강연차 방문하는 길에 1937년 난징대학살의 현장기념관을 들른 적이 있다. 이곳은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14만명보다 더 많은 비무장 양민 30만명을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인간 잔인의 극치라 할 만한 수법으로 도륙을 냈던 곳이다. 중국이 이곳의 간판을 ‘난징 학살’이 아닌 ‘난징 대도륙(南京大屠戮)’의 현장으로 표현한 것은 적절한 어휘 구사였다.
   
   일본이 진정으로 히로시마를 세계반핵운동의 허브로 만들려면 자료전시관의 정신적 바탕에 원폭을 받게 된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참회하는 반성이 깔려야 한다. 패전 직전 일본 군부는 지는 전쟁임을 알면서도 ‘무조건 항복’이 아닌 ‘조건 있는 항복’을 추구했다. 이를 위해 전체 일본인의 목숨을 걸고 본토 상륙 전쟁에서 결판을 내겠다고 미국을 위협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더 많은 인명피해를 막는 방도로 원폭을 결정했다. 그러나 일본은 마치 자기네들이 피해자고 미국을 잔인한 가해자로 만드는 학습장으로 이곳을 활용하고 있다. 히로시마 자료 전시장이 일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뜨거운 증오가 불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일본을 이용하고 있지만 일본인의 내면에 도사린 반미정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의 용미탈미(用美脫美)의 전략을 미국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영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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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송년자치에 다녀와서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연말이기 때문에 요즈음 사람들은 여러 위치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송년모임에 참여하겠지만 나는 12월 27일 남한 출신들로는 다소 참석하기 힘든 송년잔치인 탈북민 송년잔치에 초대를 받고 참여하였다. 27,000에 이르는 탈북자 전체를 대표하는 모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국사회에 정착에 성공했거나 성공하기위해 활약 중인 인사들 40여명이 모여 조촐한 송년잔치를 벌이는 곳이었다.

 

탈북여성으로서 1호 박사학위를 받은 이애란 여사가 차린 능라밥상(낙원동 입구)에서 준비한 모임이기 때문에 북한 식 요리가 안주였고 음료는 맥주, 소주 막걸리였다. 모인 면면들도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들도 몇 있었고 탈북민 단체를 이끌고 있는 대표라는 분들도 있었다. 알 만한 사람으로는 시인 장진성씨, 아나운서 송지영씨(여), 아리랑 가수 백민영(여), 피아니스트 김철웅, 미술가 권오인 씨(NK데일리), 요즈음 종편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강명도 교수, 안찬일 박사(세계북한연구센터)씨 등이고 그 밖의 분들은 나름대로 각 분야에 정착했거나 사업하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도 있었다.

 

다 같이 돌아가면서 건배를 하면서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건배사의 주류는 통일을 위한 건배였고 다 같이 행복하고 잘살자는 취지의 뜻을 담은 ‘위하여’를 연창하였다. 한 순배의 건배시리즈가 끝나면서부터 오가는 대화가운데 귀에 남는 대화는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탈북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의 사업 실패담이 이어지면서 직장에서 받는 소외,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디에 대고 말할 곳이 없다는 푸념들이 오갔다.

 

자리를 함께 한 필자와 박범진 전 의원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 메모하면서 유심히 들었다. 이때 돌연 장진성 시인이 탈북민들에게 전파되는 매체에서 금년에 탈북민들이 선정한 가장 나쁜 사람(Worst Person) 다섯 명을 골랐다면서 첫째가 한필수 둘째가 이석기, 셋째가 이정희 넷째가 새정치연합 소속의 박 모의원, 다섯 번째가 새누리당 소속의 전의원이었던 정모(여)씨 이름을 발표하면서 이런 선정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선정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지만 모두 박수를 치는 것으로 보아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필자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맨 첫째로 부른 한필수씨가 누구냐는 것이다. 분위기에는 안 어울리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좌중을 향하여 한필수가 누군데 최악의 인물 1호로 뽑느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일어나 설명했다. 그는 한때 탈북자로서 성공한 모델이라고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북한이탈주민 지원재단에서도 탈북자의 성공사례로 홍보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현혹된 탈북민들은 자기가 가진 돈을 몽땅 한필수가 세운 한성무역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의 한필수 사장은 투자한 돈을 몽땅 털어먹고 중국으로 도망쳐서 지금 400여명의 탈북자들이 165억 원의 손해를 보고 투자 돈을 회수 못한 좌절감 때문에 세 사람이 자살했고 거지 신세로 전락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이래서 탈북자가 뽑은 최악의 인물 1호가 한필수라는 것이다.

 

이 자리의 탈북민들은 한필수를 탈북자의 성공모델로 홍보한 정부도 결국 한필수에게 기만당한 셈이지만 정부의 홍보 때문에 손해를 입은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모른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적어도 경매를 통한 한성무역의 자산매각 때도 은행부채 정리보다도 우선해서 탈북자들의 손해를 줄이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제1, 제2의 경매가 진행되었지만 은행부채만 우선시되었다면서 12억 남은 제3차 경매에서라도 탈북자를 배려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 한필수를 성공한 탈북민 모델이라고 치켜세워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강사로도 활용한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재단은 피해탈북자들의 손실회복을 위해 최소한 변호인이라도 선임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이마져 외면하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이들의 피맺힌 호소가 귓전을 스칠 때 마다 먹는 안주와 마시는 술이 흥취를 돋구기 보다는 탈북세계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하는 각성제로 느껴졌다. 이들의 공통된 하소연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탈북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내 가슴속에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왔다. 탈북민 문제를 이렇게 놔두고 통일준비가 가능할 것인지 머리가 띵했다. 통일준비는 국내외 석 박사들을 모아 놓은 정부의 통일 준비위원회의 정책연구, 전략연구도 중요하겠지만 2만7000명의 탈북민들이 목숨 걸고 탈북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도록 관리하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더 시급한 통일준비가 아니냐고 내마음속에서는 대통령에게 외치고 있었다.

 

통일이 구호가 아니고 실천이기 위해서는 탈북민들의 문제가 이처럼 허투루 다뤄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떳떳이 지방자치단체의 일원으로 통합되어 당당히 대접받고 살아야 하고 어려울 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탈북민을 돌볼 능력이나 조직도 없는 통일부가 탈북민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남북대화를 맡고 있는 부서는 탈북민문제를 맡아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을 받은 탈북민 관리는 행정안전자치부가 맡아야 하고 이북5도청운영에도 탈북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필자는 여러 가지 새해 탈북민 관련 아젠다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송년장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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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전쟁위협과 대응책

 (중국 다이빙궈 대외연락부장과 회담하는 김정일 위원장)

[이영일 칼럼] 북의 전쟁 위협과 대응책
2009.02.16 10:40:06
이 글은 www.ournews.kr아우어뉴스(2월 16일 창간)에 기고한 글입니다.

새해 들어 북한의 한국에 대한 위협공세가 전쟁일보 전 상황을 연상할 만큼 긴박하다. 최근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징후가 점점 구체화 되고 있는 가운데 발사시점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의 미사일 발사 징후에 대해 미 국무부와 국방부 장관이 연일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조치를 취하지 말라면서미사일을 요격 하겠다는 것이다. 북의 무력도발에 대한 강력 대응 메시지다.

그러나 북한은 막무가내로 강성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정일 북방 위원장이 포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최측근 강경파인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인민 무력부장에 발탁했다. 황해도와 옹진반도의 북측 기지에 은익 했든 해안포를 밖으로 꺼내차려 포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서해 연평도 근처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이 자취를 감추었다. 북의 도발 징후에 대피했다는 교신도 확인됐다. 북한은 남쪽에 대해서는 서해 교전을, 미국에 대해서는 미사일 공격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을 불사한다는 결의를 안팎에 과시하고 있다.

북한은 왜 이럴까. 우선 그들의 내부정세에서 보면 경제난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과 저항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강요당할 바에야 차라리 탈북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 농민시장 등 종합시장을 폐지하겠다는 당의 방침이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시행이 연기되었다.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유입차단도 탈북자들로 인해 사실상 붕괴되어 체제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김정일의 건강악화까지 겹쳐 체제불안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북의 전쟁위협은 이러한 내부갈등을 은폐, 극복하기 위해 그 책임과 원인을 한국 측에 전가해보자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권지원 아닌 대북민생지원정책을 대북대결정책이라고 거짓 선전하면서 남북군사대결불사를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북 서해 도발 미사일 협박, 경제난 남한에 전가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다. 남북군사충돌을 우려해서 예전 같으면 사재기를 하거나 피난 준비를 서둘거나 사회가 혼란으로 요동칠 법 한데 그러한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초 북측은 그들이 강도 높은 대남공세를 펼치면 남한 민심이 요동치고 이명박 정부에게 북측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남북한 간의 군사충돌을 피하는 것이 경제 살리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여론이 촛불시위처럼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것 같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에 맹종하는 민주당, 민노당 등이 합세한 이른바민주연합세력은 전쟁보다는 차라리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쟁과 긴장을 줄이자는 주화론(
主和論)으로 이명박 정부를 압박,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심산이었던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기가 햇볕정책을 펼칠 때는 남북관계가 나날이 개선되어 왔는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이 남북한 관계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 김·노 정권의 대북정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이어 받았다. 금강산 관광을 비롯하여 개성공단, 철도연결사업 등 전 정권의 모든 사업을 승계했다.

금강산 사업이 중단된 것은 금강산 여성 관광객이 북의 총격으로 피살된 후 그 진상을 구명하고 재발방지를 논의하자는 남측 제의를 북측이 거부한데서 비롯되었다.

북측은 한동안 개성공단도 폐기할 것처럼 언동 해왔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폐기되면 35,000명의 북한 노동자들-그 가족을 합할 경우 10만여 명의 밥줄을 끊게 된다.

북측은 휴전선일대에 10여만 명의 반 김정일 세력을 만들고 싶지 않아 서둘러 폐기할 생각을 접은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북측에 제공했던 대북지원을 내용별로 따져보면 한마디로 북한의 정권지원 즉 선군정치, 핵개발지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주의 이름으로 북에 제공된 식량은 대부분 군량미로 전용되었고 식량증산을 위해 지원된 비료가 외국으로 역수출되어 군수자금으로 변했다는 것은 관계당국의 정보기관이 이미 간파한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후 이러한 평가와 반성에서 앞으로 한국의 대북지원을 군비지원 아닌 민생지원, 산업재건지원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이 어떻게 김대중 씨 등이 말하는 대북 강경정책이고 북측이 주장하는 대결정책이란 말인가.

힐러리 장관 방한 기대, 북 핵 방지책 긴요


최근 북한은 차제에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시험할 심산인 것 같다. 북한은 최근 미국의 일부 정보기관들이 북한을 사실상 핵 국가로 인정하는 것 같은 문건을 발표한 데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기회요인으로 보고 아무리 강한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핵을 보유한 북한을 이라크처럼 함부로 공격할 수 는 없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한미연합방위태세가 현시점에도 북의 군사도발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여부를 시험하려고 한다.

그간 미국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왔으나 미국의 어느 전략가도 김정일이 외교적 접근으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이 핵 포기 아닌 외부유출억제로 나간다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반열에 오를 것이다. 북측이 한국을 향하여 쏟아내는 위협공갈의 배후에는 그들이 핵을 보유했다는 과시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는 2 19일 한국을 방문하는 힐러리 국무장관은 한국국민들이 그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무엇이지를 직시하고 북 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좀 더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 핵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태도가 바뀐다면 세계 제5위의 원자력발전(
發電)설비를 갖춘 한국도 어느 순간 NPT 탈퇴를 결심하고 핵개발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한미양국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물샐틈없이 대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북의 대남공세에 동조, 가세할 기미가 있는 소위민주연합세력들의 동태를 소상히 파악, 감시해야 한다.

한국에는 좌파정권 10년의 유산으로 안보와 통일을 놓고 여야가 갈릴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음을 직시, 내치외교를 총력안보에로 통합시켜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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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우려할 때가 아니다.

이영일(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이명박 정부 등장이후 북한의 대남심리전 공세가 나날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북한은 금강산 관광객살인으로부터 시작해서 남북적십자 직통전화 단절, 개성공단 폐쇄 위협 등으로 공세를 강화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김·노 정권들처럼 대북유화조공정책을 승계하도록 압박해오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남공세에 편승하여 국내 일부논객들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당선자의 대북정책은 부시정권과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현재와 같은 대북자세는 필시 통미봉남(
通美封南)을 유발할 것이라면서 김노 정권이 만든 대북합의를 그대로 이어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외의 이러한 공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구정권들의 오도된 대북정책과 구별되는 이명박 정부 나름의 새로운 정체성(
正體性)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유엔에서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유엔결의안을 공동 발의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조치다. ·노 정권이 북한 동포들의 최악의 인권상황을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김정일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유엔인권위 표결에서 기권하거나 불참했던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동포가 굶주리는 상황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북한 땅이 지구최빈국 수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도 이 정부가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무조건 북한을 지원한 결과 그것이 북한에서의 선군정치의 시효만 연장해 주고 결과적으로 핵실험까지를 지원했던 구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햇볕정책이 쓸모 있는 정책이 되려면 북한 동포들을 굶기지 않고 북의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 동포들을 굶기면서 핵개발을 뒷받침하는 정책으로 쓰였다면 그것은 반국가적 이적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부 논객들은 구정권의 과오에 대한 통절한 반성 없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자세는 통미봉남의 덫에 걸릴 것이라고 연일 공갈한다.


원래 통미봉남이라는 말은 1994년 제1차 북 핵 위기 때 서울대 교수 출신의 정치인 N박사가 맨 처음 쓴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핵을 가진 자와는 손도 잡지 않겠다는 대북강경메시지를 발표했는데 미국은 한국의 입장보다는 자기들의 구상대로 제네바에서 북한과의 양자협상을 통해제네바합의를 만들고 협상에 끼지 않은 한국에 경수로건설 부담만 안겨준 것을 빗댄대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북핵문제를 미
북 양자 간의 문제로 파악한 클린턴 대통령 때와는 달리 한반도주변 국가들을 북 핵의 이해관계당사자로 보고 6자회담을 통해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도 이 틀을 외면할 수 없으며 더욱이 미국외교를 일방주의보다 다자주의에 중점을 두면서 우방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음에 비추어 앞으로 북 핵을 비롯한 한반도문제해결에서 한미공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 간에 거론되는-루가 법’(Nunn-Lugar Act)을 활용, 북핵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경우 한국의 협력은 불가결의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국도 늘 북한이 국제사회에 연착륙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대북접근에 한국의 입장은 조금치도 장애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통미봉남을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앞으로 북한의 심리전 공세가 여러 형태로 격화되더라도 거기에 휘말리지 말고 그들의 태도가 바뀔 때까지 의연히 기다려야 한다. 머지않아 북한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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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대 이사장 내외분과 이영일 박사가족들)

이영일 명예법학박사학위 수락연설전문

 

이 연설문은 200811 6일 호남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거행된 이영일총재 명예법학박사학위수여식에서 행한 이영일의 수락연설 전문임

수 락 연 설 문

존경하는 박기인, 이화성 설립자 내외분, 장병완 총장님, 백운선 대학원장님, 중국의 광주총영사관을 대표해서 참석하신 허잉 수석영사님, 교수님들과 내외귀빈 여러분!

오늘 저는 호남대학교가 저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한 결정을 가장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이 학위를 가장 영광스럽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이 학위가 제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저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간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훈장이나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1979
년에 정부에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훈장은 국토통일원에서 행한 제 직무에 대한 평가에서 저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훈장을 중앙청에서 최규하 국무총리에게서 받을 때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100여명의 중앙, 지방 공무원에 대한 상훈행정 차원에서 주는 훈장이기 때문에 이 훈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는 기쁠지 모르지만 개인차원에서는 별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홍조보다 한 급 더 높은 청조훈장을 받아야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을 뿐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1985년 벨기에 정부에서 대 십자수교훈장을 벨기에 왕궁에서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훈장은 정상회담을 위한 국가원수의 친선 방문 시 공식 수행원들에게 벨기에 정부가 주는 외교 관례에 따른 훈장이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 없이 아! 이런 훈장정책으로도 친선외교활동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정도의 지식을 얻었을 뿐 내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주는 훈장에서 감동을 가질 리 없었습니다.

2003년에는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 외국어대학에서 명예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학위는 우즈베키스탄처럼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에서 한국의 유력한 NGO단체들이 한국어학과를 설치하고 있는 이 대학의 발전을 위해 많은 협찬을 기대하는 학교섭외활동의 일환으로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학위를 제가 받았다고 해서 어떠한 긍지나 감동을 느낄 수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에 부담만 생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호남대학교가 저에게 주는 명예박사학위는 대한한국에 태어나서 한 6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남달리 치열하게 살아온 제 인생을 그런대로 곱게 보아주고 좋게 평가해서 이 학위가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는 정말 감개가 무량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저도 이제는 나이가 좀 든 편에 속하지만 기분과 정열에서는 아직도 청년같이 살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제 삶은 앞서 경력보고에서 밝혀진 대로 항상
官界 政界 學界 활동무대로 삼아왔고 또 그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큰 돈벌이의 욕심은 아예 가져 본 일이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저에게 주어져 있는 한 가지 큰 과업이 있다면 조국의 평화통일에 사심 없이 올바로 기여코자 하는 것입니다.

그간 북한이 개발한 화생방 무기나 미사일이나 고성능 자주포나 심지어 핵무기 같은 폭력이 동족상잔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도를 찾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저 같은 전문가들의 과제임과 동시에 우리 국민들에게 주어진 일인 줄 압니다.

동시에 북한을 개혁 개방하여 배고픔 없는 나라로 북한정권을 연착륙시키는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한반도 주변의 어떠한 강대국들도 찾지 못한 방도를 우리가 기필코 찾아내고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저에게 주어진 과업입니다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업일 것입니다.

저는 1961 4.19 혁명직후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했다가 5.16군사혁명재판에서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1년가량 옥살이를 한 후 4.19혁명유공자라고 하여 형 면제로 석방된 바 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갖는 사회과학도로서의 문제의식의 맨 선두에 통일문제를 매달고 살아왔습니다.

공직생활의 시작도 국토통일원이었으며 세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일외교통상위원회로 선택하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政界 떠난 후에도 韓民族福祉財團 공동대표를 맡아 평양을 네 차례 다녀오고 금강산과 개성을 시찰하는 등 여섯 차례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사업을 비롯해서 의료지원 사업, 식량증산사업 등을 펼쳤습니다. 항상 통일문제를 제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조성에 나름대로 심혈을 쏟았습니다.

금년에 제가 집필해서 출판한햇볕정책의 종언은 일부에서는 반론도 없지 않겠지만 저는 21세기의 상황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제 나름의 정책구상을 밝히면서 국내에서 잘못 왜곡되어진 통일 장애요인을 극복하려는 제 의지를 문제로서 제기한 것입니다.

저는
政界 떠난 이후에는 저의 경력보고가 말해주는 것처럼 NGO운동가로 변신하였습니다. 목이나 어께에 힘을 주는 일이 아니라 남을 섬기고 돕는 일로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한민족 복지재단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북한을 돕는 사업이외에도 23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을 전쟁직후의 시기에 뛰어 들어가 고아들을 돕는 의료지원 사업을 2년간 계속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아프가니스타에는 어린이 다섯 명 중 세 명이 고아였습니다. 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에
列邦親善病院 세우는 일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저는 한국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한중문화협회를 맡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이 협회는 1942년 중국의
重慶에서 설립된 항일독립운동단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독립의 과제는 없어졌지만 항일독립운동 시에 우리 독립운동지도자들이 중국 사람들에게 진 우정의 빚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중국인들은 35년간 계속된 독립운동기간 중에 우리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게 투쟁의 공간을 제공했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으며 때로는 함께 피를 흘리면서 日本帝國主義者들과 싸웠습니다.

우리는 중국에 진 이 사랑의 빚, 우정의 빚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지금 이런 명분을 내세우고 중국에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 심장병환자를 중국 지방정부의 추천을 받아 매년 20명씩 무료수술을 3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 병원 심장외과 전문의들의 자원봉사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 16일 수술 팀을 이끌고 중국산동성 천불산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 병원 현관에는 작년도에 수술 받은 어린이 여섯 명과 학부모들이 모여 있다가 우리 일행을 현관에서 영접하면서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오는 11 23일에는 신축된 하얼빈 아동병원에서 수술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NGO 단체 대표생활을 하면서 모금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정치자금 만들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어려움은 있지만 정치권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과 보람이 있기에 이것이 항상 제 삶과 활동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제게 주어지는 호남대학교의 이 학위가 저의 이러한 삶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제 아내와 제 가족들이 와 있습니다. 친지들이
京鄕各地에서 축하해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들입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다 아시겠지만 이곳 광주에서 국회의원선거에 나서서 633패의 기록을 가진 사람입니다. 승리의 기억보다는 낙선의 아픔이 오래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제 삶에서 처음으로실패한 이영일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도시가 광주입니다. 때로는 태 자리를 원망하는 못난 소견에 사로잡혀 좌절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저이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 대학에서 받는 학위는 정말 자랑스럽고 특히 제 아내와 가족들에게 광주에서 실패만 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게 되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정계를 떠나있을 때 나에게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인생에서
再起 꿈꾸도록 기회를 마련해준 분들이 이 대학의 설립자 내외분입니다. 저는 10 년 가까이 이 대학에서 초빙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북한문제, 한국정치문제, 국제관계를 강의했습니다.

이제 호남대학교는 한국의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했고 특히 호남지역에 최초로
孔子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한중간의 문화 교류와 협력의 큰 길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큰 발전이 학교를 발전시키겠다는 설립자내외분의 강한 의지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광주 서구 쌍촌 뜰에서 출발한 이 대학이 오늘 같이 큰 발전을 이루기까지는 설립자님들께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자기가 키워온 기업을 희생시키는 데는 살점을 떼어내는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기업보다는 학교를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哲學 있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오늘 같은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학교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설립자 내외분의 공헌을 우리 지역사회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호남대학교가 한중교류협력의 큰
架橋 되고 湖南人才 양성의 큰 基地로서 더욱 더 크게 발전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울러 설립자 내외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또 이 대학에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교수님들에게도 큰 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자리를 함께 해주신 친지들에게도 건강과 가정에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祝願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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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인민관이 등소평과 전혀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4 6 19일 영국의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총명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한국과 세계경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며중국의 등소평처럼 북한을 냉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끈질긴 개혁가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가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사실적 평가라기보다는 다분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희망론적 평가로 보인다. 김대중 씨는 그가 내놓은 햇볕정책의 주요정세가정의 하나로 북한도 중국의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주장의 정당화를 위해 이런 평가를 말한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대중 씨의 정세가정은 그의 희망이었을 뿐 북한의 실상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필자는 김정일과 등소평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햇볕정책의 정세가정이 얼마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인가를 지적코자 한다.


우선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은 그의 개혁개방철학이 중국 인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62년 등소평은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죽는 참상을 목도하면서빈곤은 사회주의의 특징이 아니며 모두가 부유해지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라면서 인민에게 빵을 주는 것은 공산당의 절대적 사명이기 때문에 인민에게 빵을 주는 일이라면 노선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유명한 흑묘백묘(
黑猫白猫)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이 주장을 내세웠다가 문화대혁명 때 자본주의앞잡이로 몰려 당직을 박탈당하고 시골로 추방당하여 트랙터 공장에서 7년간 직공생활을 했다. 그는 계급혁명만능(
萬能)론을 부르짖은 모택동 주석이 죽은 후 오도된 지도노선을 지양하고 인민에게 빵을 주고 경제를 현대화하는 개혁개방의 길을 열었다.

이 뒤를 이은 후진타오 주석은인민에게 사랑받는 공산당을 구호로 내걸고 개혁개방과 경제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2008년 제29차 하계올림픽의 베이징 개최를 성공시킴으로써 전 세계가 중국의 존재를 의식해야하는 대국으로서의 중국시대를 열었다.

등소평은 그의 개혁개방정책이 정착되기 시작하던 1983년 봄 김정일을 베이징으로 초청, 중국이 걷는 개혁개방노선을 자세히 설명하고 북한도 중국의 길을 함께 걷자고 권고했다. 김정일도 초기에는 중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1984
合營法 비롯한 14개 개혁개방관련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아마 이 길을 계속 걸었더라면 지금쯤 북한은 중국보다 훨씬 더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지구의 온대권에 속한 국가로서 밥을 굶는 나라가 북한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개혁개방이 북한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른바조선식 사회주의노선을 천명하고 개혁개방 아닌 주체와 자력갱생을 앞세우는 시대역행의 길을 걸었다. 그것의 결과는 잘 알려진 데로 1990년대 중반에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餓死하는 비극을 낳았고 수십만을 헤아리는 탈북난민사태를 가져왔다.

중국정부는 2001 9월 장쩌민 주석의 방북, 2005 10월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방문에서도 중국식 개혁개방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김정일이 노선을 바꾸도록 적극 권유하고 필요한 경제 지원까지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을 보는 태도에서 등소평과 김정일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등소평은 자신을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인민의 이익을 그의 정치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지금 중국공산당에서는 인민의 이익이 모든 정책결정의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에게 인민은 어떠한 존재인가. 정치사회적 유기체이론에 입각, 수령이 두뇌라면 당은 몸통이고 인민은 지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민은 수령의 생명을 옹위하는 도구적 존재이다.


지금 북한 전역에는 중국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없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널려있다.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지도부를 목숨으로 옹위하자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지도부가중국인민을 위한 지도부라면 북한에서는수령을 위한 존재가 당이요 인민이다.

수령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1~2백만의 인민이 아사하는 것 정도는 아예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이것이 김정일의 본체일진데 김대중 씨는 김정일을 한참 잘못 본 것 같다.


한중양국간의 대화와 협력이 남북 간의 대화와 협력보다도 더 용이한 것은 양국 공히 인민의 이익을 중시하는 인민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남북대화에 의한 통일접근이 얼마나 힘든 길인가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오늘의 남북한처럼 인민관이 공유될 수 없는 상황에서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선전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는 정치적 상징조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선군정치로 강성대국을 만들어 핵개발을 통해 통일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김정일 정권에 물자를 무조건 퍼주고 달래야 평화통일의 길이 트인다는 김대중 식 햇볕정책의
邪術 추호라도 현혹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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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른바 햇볕정책의 옥동자를 사살했다.

북한군이 지난 7 11일 미명 금강산 해변 가를 산책하던 관광객 1명을 총격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측은 관광객이 넘어서는 안 될 북측 금지구역을 넘어왔기 때문에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관광객에 대한 총격살인은 금강산 관광에 따른 관광객의 신변보장에 관한 합의위반이다. 설령 관광객이 무의식중에 북측 금지구역을 월경했더라도 사전 경고나 검문을 통해 응분의 처벌로서 벌금을 과하도록 한 남북합의를 크게 위반한 과잉대응이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구상이라고 말하는 6.15선언상의우리민족끼리의 원칙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조치였다. 아무 무장도 하지 않고 관광지해변에서 새벽산책을 하고 있는 중년여성을 정조준 총격 살해한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에서는 남북공동으로 현장을 합동으로 조사, 진상을 구명하고 책임의 소재를 가린 후 재발방지책을 강구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북측에서는 금지구역을 월경하도록 방치한 남측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특히 북한군 당국은 8 3일자 성명을 통해 앞으로도 북한군은 금지구역을 넘어올 경우 총격을 가할 것이며 금강산 구역에 체류하고 있는 남측인원 중 불필요한 인원을 추방시키겠다고 남측에 통보해 왔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합리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만행과 폭언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우발사고 아닌 북측의 계획적인 도발

이번 북한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박왕자 여인의 죽음은 결코 우발적 사고가 아니고 북한군 당국, 북한군의 최고책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이번 8 3일자 성명은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성명은 한마디로 김대중, 노무현 양대 정권이 그토록 내외에 햇볕정책의 옥동자라고 자랑하던 금강산관광사업의 파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의 배경이 된 햇볕정책이 끝장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간 북한은 김대중, 노무현 양 정권시절에는 남측에서 말하는 햇볕정책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햇볕정책을 표방하는 대북 조공(
朝貢)정책, 즉 겉으로는 남한 내부의 여론무마용으로 햇볕정책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에 압도되어 한반도평화유지라는 명분을 내걸고 남측이 북측에 물자를 갖다 바치는 일종의 조공정책이라고 북측은 선전하였고 이러한 논리의 문맥에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사업을 대내적으로 정당화해 왔던 것이다.

북측은 그간 남측이 쌀과 비료를 북한에 보내오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의 성과라고 주장했고 북한군부와 주민들의 대다수는 이런 주장을 어처구니없게도 사실로 믿어 왔던 것이다.

김대중 식 햇볕정책거부에 대한 의도적인 반발

그러나 지난 대통령선거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 해서 대북 조공정책의 다른 표현인 햇볕정책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그 기조가 근본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한정권은 한국에서의 정권교체의 초기에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대북 조공정책으로서의 햇볕정책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이 분명해지자 이명박 정권을 반통일 세력, 민족반역의 역도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체의 대남 접촉과 대화를 전면 거부하면서 현 정부를 상대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표방해 온 조공정책으로서의 햇볕정책을 승계할 것이냐 아니면 남북대결과 대치상태를 격화시킬 것이냐를 놓고 양자택일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6.15선언과 10.4남북정상합의를 무조건 승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김·노 정권과는 달리 북측이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요구할 경우에 한해서 지원할 것임을 천명하고 북한이 구체적으로 요구도 하지 않는데 식량과 비료를 덮어놓고 갖다 주는 종래의 대북정책을 뒤따르지 않았다. 북한은 당황했고 마침내 정치적으로 대남강공정책을 구사함으로써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박왕자 여사의 죽음은 바로 북측의 이러한 대남태도의 변화가 몰고 온 도발의 시작이며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아니 이보다 훨씬 더 한 도발이 있을 수 있다. 동서 해상이나 휴전선일대에서, 때로는 미사일 발사로, 심지어 핵 공갈까지도 불사할 수 있다.

당당한 대응만이 도전극복의 길

이제 이명박 정부는 더 이상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정세 속에 내포된 여러 가능성 가운데서 현재 또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가장 유리한 정책을 선택하고 실천해야 한다. 우선 당면해서는 북측이 박왕자 여인의 총살을 사죄하고 재발방지를 보장하지 않는 한 금강산 관광은 당연히 중단시켜야 한다.

현대아산의 기업이익에 얽매여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정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 공단에 대한 정책도 신변보장에 대한 확실한 안전판의 구축을 요구해야 하며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협력중단을 각오해야 한다.

일부 친북 이론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늘의 남북한 관계를 악화시킨 원인인 만큼 북측이 요구하는 6.15선언과 10.4 남북정상간 합의의 승계를 약속하여 남북관계를 이전의 상태로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미국과 북한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현재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가다가는 통미봉남(
通美封南)의 함정에 빠져 외교적 고립을 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김대중·노무현양정권이 저질은 잘못된 대북정책을 그대로 연장 승계하라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양 정권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이름하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은 값비싼 입북료(
入北料)를 선납(先納)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남한 대통령들이 북한을 찾아오거나 오게 하여 이들이 내놓는 대북제안을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에서 검토하고 북한정권의 논리와 철학으로 그 내용을 재구성하고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이 내놓는 대남정책이 이른바 6.15남북공동선언이고 10.4남북정상 간 합의라는 것이다.

그는 이 합의를 남측이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그 자신은 서울 답방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앞으로도 답방할 의사가 없음을 작년 10월 노무현대통령에게 분명히 밝혔다.

답방 없는 정상회담은 올바른 정상회담이 아니다.

지금까지 모든 정상회담은 나라나 국력의 크기와 관계없이 방문 상대방의 초청이 있을 경우 반드시 답방하고 상대국 국민들에게 우의와 친선을 다짐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의 국가원수로서 한국을 답방하지 않은 국가원수는 한사람도 없다.

김정일도 틈틈이 중국을 방문하고 러시아를 답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방문만은 이를 거부하고 외면했다. 2000 6.15선언 제5항은 김정일의 답방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미 무시되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남한대통령들의 방북은 정상적의미의 정상회담이라고 볼 수 없다. 북측 논리에 따른다면 김정일에 대한 남한 대통령들의 배알이거나 알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그를 수행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후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 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그가 서울에 와서 육성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그런 말을 들려준다면 그의 진의를 다소라도 믿겠지만 김대중과 임동원이 간접으로 전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을 액면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은 항상 한입으로 두말하기가 일수였고 합의위반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이다.

북측이 진정으로 6.15선언과 10.4남북정상합의를 이명박 정부가 승계하기를 원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우선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고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자기의 의지와 뜻을 한국국민들에게 육성으로 설명하고 약속해야 한다. 3의 서해교전이나 제2의 박왕자 여인의 죽음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임을 한국국민들에게 확실히 약속해야 한다.

확고한 전략적 비전으로 상황에 대처

이명박 정부가 유념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과제는 남북한 관계의 현상과 장래에 대해 확고한 전략적 비전을 갖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폭력은 결코 만만히 볼 수는 없다.

핵실험에 성공했다지만 성공한 핵실험을 바탕으로 실전 배치 가능한 무기를 제조하는 데는 실험에 못지않게 많은 돈과 기술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북한이 도달한 무기화의 수준을 어떻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 공갈은 일단 한국만의 단독대처과업이 아니기 때문에 차치해둔다고 하자. 그러나 외화벌이 수단으로 그간 북측이 개발한 미사일이나 재래식 무기, 그리고 북한군의 현재의 배치상태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가진 이러한 폭력은 그것이 다소라도 행사될 경우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외자유치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의 북한의 도발은 어느 경우에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없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도발은 적대적 심리전 이상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북한공세에 대한 대처도 전면전을 불러올 만큼 강력한 것일 수도 없다.

한반도에는 아직도 주한미군의 전쟁억지기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도발로서 관광객피살이나 해상도발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북한이 외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유엔안보리의 제재(1787결의 등)해제나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굴레를 벗어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폭력이 1950년대와 같은 한국전을 재발시킬 것으로 우려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오판으로 전쟁이 재발한다면 그것은 한국에 큰 재앙을 불러오겠지만 그것은 동시에 북한정권을 지구상에서의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한 오늘의 북한이 자멸을 바라지 않는 한 전면전을 도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주한미군의 전쟁억지기능을 믿고 심리전 차원에서 군사수단을 이용한 도발을 틈틈이 시도해보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 사태는 북한의 어떠한 형태의 도발이 있더라도 전면전을 각오할 필요 없이 한국의 외교, 안보, 심리전 수행능력의 범위 내에서 충분히 대응 가능한 상황이다.

북한시계는 개혁개방을 가리킨지 오래다

현재 북한의 진로를 알리는 시계바늘은 북한체제의 개혁과 개방 쪽을 가리키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그의 선군정치세력들이 시계바늘의 움직임을 억지로 붙잡고 있을 뿐이다.

에너지와 식량과 원자재가 태부족한 나라가 외부의 지원만으로 정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북한을 돕던 사회주의 강국들인 중국이나 러시아도 이제는 냉전시절의 우방이었던 북한을 무상으로 지원할 체제를 오래전에 벗어났다.

개방된 시장경제국가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개혁 개방을 하지 않고는 북한정권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개혁개방을 통해 주민들에게 빵을 주는 체제를 만들지 못하는 한 김정일 정권은 외부의 침략세력 아닌 내부인민의 저항에 직면하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다.

북한에서 현제 일어나고 있는 탈북현상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인민저항의 수동적 표현이지만 앞으로는 능동적 저항의 상황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북한이 일으키는 대소도발이나 불장난을 지나치게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의연히 심리전 차원의 대응을 하면서 김대중·노무현시대의 잘못된 정책으로 회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국력의 우위만을 믿고 지나친 강경책을 구사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북측에 대화의 문호는 항상 열어두되 북측에 대화를 간청할 필요도 없고 대화에 매달리거나 대화를 구걸하는 추태를 보여서는 더더욱 안될 것이다.

지금 대화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쪽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남북한 관계의 현상에 맞는 상식적 처방이다.

치밀한 내부점검과 통합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유념해야할 세 번째 중요한 과제는 국내 친북세력의 준동을 다스리는 지혜를 발현하는 것이다.

그간 김대중·노무현대통령의 집권10년 동안이야말로 친북좌익세력들에게는 한국정부수립이래 가장 행복한 세월이었다. 시민단체이건, 대북지원NGO이건 간에 친북좌익세력들은 가장 우대받는 세력이었다.

광주(
光州)사태와 관련하여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되어 정부보조금은 물론 항공기 이용특혜를 받는 사람의 총수가 1000여명을 넘었으며 국가보안법 등 법령위반으로 전 정권에서 수형생활을 한 시국사범의 대부분 인사들이 민주화유공인사로 재분류되어 국가유공자로 된 사람의 숫자도 부지기수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시민단체나 NGO는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을 사실상 독식했고 국영기업체의 임직원이 되어 일거에 중산층이상의 소득수준을 갖게 되었다.

또 민주평통자문위원들의 대대수도 이들로 충원되었다. 방송사의 PD나 기자들, 언론단체의 간부들도 이들이거나 이들 자녀의 상당수가 차지했다.

이들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 가장 행복했던, 살맛나는 10년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정권인수위원회는 이러한 사람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이 새 정권에 대할 태도를 면밀히 파악하고 대비하는 지혜가 요청되었다.

그러나 인수위는 새 정부에서 나눠 쓸 감투에만 혈안이 되었을 뿐 좌파정권으로부터 인수받은 정권의 효율적 운영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못했다.

이들 세력들을 심층 연구해온 사람들의 어느 누구도 인수위나 새 정부에 기용된 사람은 전무했다. 우파에서 우파로 정권이 바뀐 것으로 착각한 상태에서 정권의 밑그림을 그린다고 헛발질을 하다가 민심의 이반만 초래했던 것이다.

촛불시위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대통령은 임기3개월 만에 대국민 사과를 되풀이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제는 더 이상 좌고 우려할 필요가 없다. 미진한 정권교체과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차분히 정권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정권안정화의 기초는 공권력의 엄정한 확립, 법치의 확립뿐이다.

경찰이 폭력 시위 배들에게 맞지 않는 나라만 만들어도 이명박 정권은 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게 될 것이다.

한국의 선진화는 공권력의 확립, 법치의 확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과거 구정권의 비리나 권위주의 통치 때문에 박탈된 권리를 회복시킨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조치가 다소 지나친 점이 있더라도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간 수익처분을 시정한다는 이름하에 빼앗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이 현 정부를 타도하고 친북좌파정부를 되찾기 위해 자기 돈을 써가면서 조직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추진하는 행위는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국가에서의 심판은 선거일 뿐 합법정부를 정복하려는 폭력시위는 내란죄를 구성하기 때문에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비추어 국가유공자의 지위는 박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가유공자를 만드는 과정상의 비리나 위원회정치의 잘못된 유산과 행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관련학계를 통해 폭로, 비판해야 한다.

가짜 국가유공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우대하는 잘못된 역사를 승계했다고 평가받는 정부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불가피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들 친북좌파행동을 정당화하는 대학 내의 이론가들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김·노정부의 대북정책이 옳았기 때문에 이를 승계하라고 주장하면서 박왕자 여사의 죽음을 놓고 살인을 자행한 북한군을 비판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무리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통미봉남이라는 용어는 한국 사회과학에서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친북좌파들이 북한을 변호하기위해 만들어낸 말장난이다.

현시점에서 한미관계는 이민사회로부터 경제협력, 안보협력, 문화교류, 가치관면에서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북한이 아무리 미국에 접근하고 가까워진다고 하여도 한미관계의 오늘의 심도를 능가할 수는 없다.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단절한다고 해서 북한이 받는 불이익에 비교하면 남한이 입는 외교안보상의 부담은 아무 것도 아니다.

북의 핵개발 지원으로 햇볕정책은 끝장났다.

좌파이론가들은 김·노 정권 시절의 대북정책이 좋았기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었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사업도 사고 없이 잘 나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노 정권의 대북 조공정책은 북한사회를 변화시키지도 못했고 북한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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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달러가 넘는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의 수는 줄지 않았고 그 대신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을 뿐이다.

그들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일방적으로 짓밟았던 것이다. ·노 정권의 대북정책은 결국 북의 선군정치의 시효를 연장시켰고 핵개발과 실험을 지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김·노 정권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김정일의 답방거부와 핵실험강행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서울을 답방할 자신이 없는 김정일에게 평화통일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북이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의 좌파들은 반핵(
反核)을 핵심으로 하는 반전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인민을 수령인 김정일 자신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버릴 존재로 규정하는 북한과 인민을 섬겨야 하는 정부를 갖는 남한사이에우리민족끼리라는 용어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주민은 우리가 마땅히 섬기고 도와야 할 대상이지만 주민들을 수령의 목숨을 지킬 도구로 규정하면서 선군을 위해 아사(
餓死)까지를 강요하는 북한정권을 과연 진지한 대화의 상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이론가들은 이러한 김정일에 대해 그들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입장의 표명 없는 정부의 대북정책비판은 말장난 아니면 친북옹호주의자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결 론 과 건의

오늘날 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는 부러울 만큼 개선되고 있다. 중국본토와 대만 간에 자유로운 관광여행이 가능해졌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고 환전업무도 자유화되었다.

비록 대만의 국민당 정부는 비통일(
非統一), 비독립(非獨立)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생활상의 통일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만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변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등소평의 집권과 때를 같이하여 개혁과 개방을 통해 인민에게 빵을 주는 정부를 만드는데 치중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인민에게 빵을 주는 공산당을 만들자는 등소평의 흑묘백묘(
黑猫白猫)론은 바야흐로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에서 잊을 수없는 명언이 되었다.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가 이끄는 오늘의 중국공산당 지도부는인민에게 사랑받는 공산당 운동을 주도하면서 지역, 계층, 직종간의 격차를 줄이자는 화해(
和諧)사회론과 과학적 발전관을 주창하고 있다.

오늘의 중국의 인민들은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도구가 아니라 공산당 지도부의 섬김을 받는 인민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가 오늘의 양안관계를 우리가 부러워할만한 관계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4 6 19일 영국의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총명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한국과 세계경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며 중국의 등소평처럼 북한을 냉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끈질긴 개혁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대중 씨의 이러한 평가는 그의 희망론(wishful Thinking)이라면 몰라도 현실의 김정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논평이다.

등소평은 1984년 김정일을 북경으로 초청,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소개하면서 북한도 중국의 개혁노선을 따르도록 설득, 권고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강조하면서 개혁개방이라는 세계사의 큰 물결을 외면하고 오늘의 북한을 지구의 온대권에 속한 국가로서 유일하게 국민을 아사시키는 나라로 전락시켰다.

인민을 굶기면서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데 총력을 쏟는 선군 정치의 나라가 오늘의 북한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는 모든 노력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식의 선군정치지원정책은 단호히 거부하는 용단을 보여야 한다. 여기에는 물론 김정일의 막후지령을 받는 국내좌파들의 저항도 만만찮고 북한에 퍼주기를 하더라도 남북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더 좋다는 사려 깊지 않은 여론의 압력도 있을 수 있다.

또 미국과 북한관계가 개선되어 국제합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불가피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남북대화만은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뚜렷한 전략목표를 세우고 국민적 합의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비핵개방 3000의 구체안을 마련하여 북측에 꾸준히 재안하고 국민적 지지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지원하고 개혁개방을 유도하지 않고는 통일문제의 해결도, 분단고통의 감소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국민의 정치교양은 민주평통이나 각 대학 및 언론기관의 연구소, 대북지원NGO들이 앞장서 추진하도록 정부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어떠한 대북전략도 국민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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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 동포들과의 통일 대화
(2008
6 18 14일까지)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영일

한중문화협회를 맡아 운영한지 10년이 되었고 그간

연변조선족 자치주에도 이런 저런 명목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조선족 동포들과 조국의 통일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행히도 한중문화협회가 3년째 계속 사업으로 중국낙후지역을 몇 개 지역으로 나누어 추진하는 극빈어린이 무료수술사업단을 인솔하고 마침 연길에 오게 되어 34일간 머무르게 되었다.

한중문화협회는 외교통상부산하 산하 국제협력단의 지원과 LG, GS 홈쇼핑그룹의 협찬을 얻고 서울대학교 소아병원의 심장외과 전문의와 심장내과 전문의들의 자원봉사를 결합시켜 올해까지 3년간 중국길림성의 연길, 흑룡강 성의 하얼빈, 섬서성의 시안, 중경 등지에서 도합 60명의 중국극빈가정 어린이 심장병환자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지원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필자는 의사는 아니지만 심장병 수술지원단을 인솔하고 중국지역의 수술현장을 방문,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TV대담 등을 통해 한중우호증진활동에서 심장병수술지원 사업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고 현지 정부기관들과의 간담모임을 갖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일정을 마련, 한중친선, 환자위로, 의사독려 등의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여러 차례 조선족 동포사회인 연변을 방문했지만 통일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연길 체재 중 연변대학 동북아연구소가 대학원 학생들을 상대로 21세기와 한국 통일문제를 주제로 강의해 달라는 특청이 있어서 뜻밖에 조국의 통일문제를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1
시간 반에 걸친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졌는데 아마 강의시간보다 더 흥미롭고 유익했던 것 같았다. 강의가 일방통행이라면 질의응답은 쌍방통행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원생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 연길에서는 남한에 친척을 둔 사람은 경제적으로 유복해졌으나 북한에 친척을 둔 사람은 하나같이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도와 달라, 돈을 좀 꾸어달라는 부탁 등으로 지난 10년 동안 너무 시달려 왔기 때문에 지금은 북녘 친척들을 고의로 피하는 실정이라면서 언제쯤 북한경제형편이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느냐면서 앞으로 통일의 전망은 있느냐고 비꼬는 듯이 질문했다. 또 하나의 질문은 한국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심장병 어린이들이 있을 텐데 그들을 돕지 않고 일부러 멀리 연변까지 와서 무료수술지원 사업을 펼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
지구의 온대권에서 밥 못먹는 나라는 북한 뿐이다]

나는 한마디로 지금 지구상에서 온대권에 속하는 나라로서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는 나라가 있다면 북한뿐인데 만일 북한도 등소평 같은 지도자를 만나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했던들 오늘날 중국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아직도 개혁개방을 외면하고 김일성 주석의 교시와 정책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받드는 한 앞으로도 경제상황이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나는 내가 알기로는 그간 중국지도자들은 1983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상대로 직접 초청도 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 비공식 방문시마다 기회 있는 대로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권면해 왔다. 그러나 북한 측은 중국 측의 개혁개방의 성과는 인정하면서도 선뜻 중국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우리식 사회주의의 길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답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교수 한분이 북측이 중국의 충고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캐물었다.

[
진리는 실천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나는 중국의 경우 모택동 주석의 교시와 정책은 무조건 옳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관철해야 한다는 화궈펑(
華國鋒)주석의 양거빤스(兩個凡是)주장과 비록 모택동 주석의 교시와 정책이라도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으면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양거빤스(兩個凡是)반대주장이 대립하다가 마침내 진리에 대한 실천검증론이 승리함으로써 개혁개방이 시작된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일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에서는 그러한 토론이나 투쟁이 김일성 주석의 생시는 물론, 사후에도 일어난 일이 없고 지금도 김일성유일사상 10대지침을 높이 받들 것을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육신은 비록 죽었으나 당적으로는 아직도 살아서 주석 직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북한노동당이 그의 사망을 선고하지 않는 한 그는 아직도 영생하는 존재로 북한 정치 안에 살아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켰다.

아직도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교시와 정책, 주체사상은 불변의 진리로 살아있으며 김일성이 주석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도 국방위원장은 될 수 있지만 주석은 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꺼리는 둘째 이유로는 주민들에 대한 북한의 정치사상 교육 때문이다. 즉 북한은 정권성립이래 시종여일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인민의 해방이 곧 통일이라는 정치사상교육을 실시해왔는데 개혁개방을 하면 그러한 교육의 허구성이 바로 탄로 날 것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빈곤과 가난은 모두 김일성부자에게 그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
東北工程보다 長白工程 터져 나올까 더 걱정]

셋째로는 김일성·김정일 가계우상화(
家系偶像化)의 실체가 들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측면도 개혁개방을 꺼리는 무시할 수없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해주었다.

그 예로 그간 북한은 한국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중시한데 반하여 그들은 고구려를 중시하고 북한이 고구려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한다는 취지에서 평양에 동명성왕능을 복원까지 해 놓고 있으면서도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왜곡 날조할 때 단 한마디의 반론도 지금까지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남한 학계와 정부가 나사서 고구려의 역사왜곡을 중국에 항의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 대항조치로 고구려사연구소-이제는 명칭을 바꾸어 동북아연구소를 만들어 이론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북측은 그들이 고구려사왜곡을 들고 나올 때에 중국이 그들의 장백공정(
長白工程)을 까발 치고 나올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해 주었다.

장백공정이란 한마디로 백두산을 무대로 한 김일성 가문의 우상화와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으로 왜곡선전하는 일련의 북한판 가계우상화사업을 말하는데 이 사실은 중국 측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북공정에 당당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고 지적해 주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모택동 주석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자기 가계의 역사를 날조하거나 우상화한 사실이 없었다.

이 답변에 청중들은 모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때 다른 학생이 일어나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통일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은데 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
북한이 변해야 실질적인 통일대화 가능]

나는 지금 중국과 대만관계를 보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오는 7월부터 중국과 대만 간에 자본이동이 가능하고 양안 간에 관광객을 태운 항공기의 입출항이 허용되었고 환전업무도 순조로이 진행될 만큼 좋은 관계가 진전하고 있는데 이 까닭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사상해방을 통해 변화되었고 그 결과로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따라서 북한이 이렇게 변하지 않는 한 통일은 당분간 힘들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나는 이어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도 북한을 다녀오신 분들이 많을 텐데 현시점에서 북한은 인민이 권리의 주체가 아니고 수령에게 종속된 체제인데 반해 한국은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지지에 권력이 유지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남북한 간에 존재하는 이러한 체제차이로 인해 대화를 위한 대화, 교류를 위한 교류는 있어도 평화와 통일을 진전시킬 가치 있는 교류나 협력이나 대화는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인민을 권력의 주체로 보거나 정권의 존재이유가 인민의 복지증진일 경우에는 서로 간에 진지한 대화가 가능하고 이런 점에서 중국과 한국 간에는 진지한 대화가 생활의 각 방면에 걸쳐서 언제나 가능하지만 남북한 간의 대화는 한국과 중국 간의 대화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고 대화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
남북한 동포들간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

그러나 한 대학생은 6.15선언이후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남북한을 오가는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 또 철길이 뚫리고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일들이 일어난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면서 토론에 끼였다.

나는 그 학생에게 이산가족의 만남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이때의 만남도 감시와 지도아래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그밖에도 남북한 간에는 접촉이 있어 왔지만 우리가 북한을 방문한다고 해서 북한의 일반 주민을 자유스럽게 만나서 대화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또 북한정권이 남북한 민간의 자유로운 접촉을 적극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교류기 이루어지고 철길이 뚫이고 상봉이 이루러진다고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있다는 형식일 뿐 실질적인 의의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 예로 나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여섯 차례 북한을 다녀왔지만 북한노동당의 통일전선부 간부나 그들이 만나도록 권면하는 사람들만 만났을 뿐 평범한 북한동포를 한명도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본 일이 없다고 증언했다.

내가 보기엔 북한 주민은 민족의 혈맥을 같이 나눈 우리 민족이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하나같이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지도부를 목숨으로 옹위해야할 존재로 규정되어 있어 개인으로서의 민족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6.15선언에 씌어있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이 사실상 허구임을 나는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의 이런 표현과 주장에 대해 반론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말을 끝맺자 박수로 화답해 왔다.

말을 끝맺으려는데 한 학생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묻겠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전 정권들이 북측과 맺은 6.15선언이나 10.4남북정상간 합의를 승계할 것으로 보느냐는 매우 민감한 질문을 던져왔다.

[
김정일의 서울 답방이 합의 승계의 필수조건]

남북한 정상 간의 합의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준수하는 것이 원칙이겠으며 또 정권이 바뀌더라도 전 정권의 합의를 새 정권이 승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6.15선언의 경우 가장 중요한 합의의 하나라고 생각한 김정일의 남한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 씨는 비싼 방북료를 내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북측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이는 선언에 합의했지만 그 합의의 의미를 보편, 객관화하고 또 한국 측에서 요구하는 주장이나 요청을 포괄하는 새로운 합의가 김정일 위원장의 남측방문이후로 발표될 때 비로소 남북양측이 준수해야할 선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답방약속을 저버렸고 그의 답방 없는 남북공동선언은 북의 일방적 선언이거나 반쪽짜리 선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새 정권이 마땅히 승계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김대중 씨는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후 한국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한국에 남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다고 말하고 이제 한반도에는 영원히 전쟁의 위협이 없어졌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그러한 소리를 서울을 답방한 김정일 자신으로부터 듣고 싶다고 말했다.

10.4
남북공동합의도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통해 그의 입술로 확인되어야 남북한 모두에게 준수를 말할 수 있는 합의로 보여질 것이다.

김정일의 답방 없는 남북정상간 회담이나 합의는 지금까지 준수되지 않고 휴지화되어버린 남북한 간의 무수한 합의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 중국과 대만 간에는 별다른 문서상의 합의 없이도 양안관계가 잘 발전하고 있음을 볼 때 지금 중요한 것은 합의보다는 실천이며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 중국처럼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서방측의 북한 식량생산량 과대평가가 문제다]

토의 맨 끝에 북한식량사정문제도 튀어나왔다. 연변대 교수는 자기가 지금까지 북한농업을 연구하면서 서방측 분석에 불만인 것은 북한의 식량생산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1정보당 쌀 생산량이 6.5톤에서 7.5톤에 이르지만 북한에서는 평균 1정보당 2톤에서 3톤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내기, 잡초 뽑기 김매기 전투가 모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해치우는데다가 비료나 제초제, 농약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소출이 늘어날 수 없는 공유지의 비극이 되풀이 되고 있다면서 항상 200만 톤 이상의 식량부족이 이어져 오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식량계획이나 한국통일부는 식량부족분을 많이 볼 때는 150만 톤, 적게 볼 때는 50만 톤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한 식량생산에서 큰 앙양이 일어날리 만무하고 현재처럼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한 북한은 만성적인 기근지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 놓았다.

이야기들이 너무 비관적인 쪽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 나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한마디 첨언했다. 역사에서 보면 민족통일처럼 의미 있는 큰 사건은 우리의 조국광복처럼 돌연히 찾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너무 비관하지 말고 내외정세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변화의 씨앗을 찾아내자고 말을 맺었다.

끝으로 한국에서는 6세 이하의 어린이 심장병 환자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어린이 심장병문제는 이제 한국에서는 걱정대상이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토의과정에서 북한의 식량문제를 들으면서 요즈음 법륜스님이 제보하는 좋은 벗들에서 북한의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다시 아사(
餓死)자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나는 즉시 차편을 빌려 타고 북한의 식량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중국과 북한을 잇는 삼합(三合) 쪽을 살펴보기 위해 그쪽으로 향했다. 삼합은 북한의 회령이 내려다보이는 중국의 국경도시인데 중국에서 식량을 실은 트럭들이 북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식량 실은 차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삼합에서 보이는 북녘 땅의 세관 창고도 텅 비어 있었다.

외신기자들에 의하면 요녕성 단동(
丹東)의 다리 위에도 식량 실은 차들이 보이지 않는다던데 이쪽 통로도 비었다면 법륜스님이 말하는 북한의 식량난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걱정하는 마음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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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국걱정하는 역대 총리들)

여야는 거리에 팽개쳐진 정치를 국회로 끌어들여라

필자 이영일(전 국회의원)

지금 한국정치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의민주주의는 실종되고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 민주정치가 고대희랍식의 직접민주정치로 역행하고 있는가.

표면상으로는 촛불 문화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시위가 거의 매일 밤 수도 서울의 중심부를 완전 점유하고 있다.

민중동원의 주체는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라고 하지만 이 시위는 지금까지 각종 시위를 주도했던 세력들이 배후를 형성하면서 시민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가정주부들이 나와 있는가하면 아무 문제의식도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가장들이 자녀들의 손목을 붙잡고 나와 참가하고 있고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고 촛불다방이 도처에 개설되어 시위인지 문화행사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신형 시위문화가 펼쳐지고 있다.

문화제라는 명분에 걸 맞는 장치나 유모차, 술판, 가장들의 손목을 잡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자녀들과 아낙들의 모습은 경찰들의 강경진압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위도 양이 축적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유도되어진다. 광우병에서 이명박 퇴진으로 구호가 바뀌고 문화제는 도시게릴라 전의 양상으로 바뀌면서 쇠파이프가 튀어 나온다.

지금은 바야흐로 배후가 잘 보이지 않는 중고생들, 한총련이 동원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민노총이 지휘하는 노조투사들이 정권퇴진투쟁의 주력군으로 전환되면서 결국 평화적 시위를 위장한, 문화행사를 위장한 비합법적 정권퇴진투쟁이 개시되고 있는 정황이다.

이 상태가 장기화되면 누가 이익을 보는가. 정권은 무력화되고 정치인은 여야 공히 용도가 폐지되고 이른바 아나키적 민중권력이 상황을 지배하게 됨으로 해서 국가자체의 존망에 까지 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국민생활이 전체적으로 파국을 맞게 되고 경제침체는 장기화된다. 결국 국민들은 민중이 주도하는 아나키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군이 사태를 장악하는 군정을 선택할 것인가의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이제 정치권은 더 이상 방관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민중시위의 동조대열에 끼여 있어도 안 된다. 촛불시위에 나타난 민의와 국민들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정치적 욕구들을 적극 수렴하여 상황의 과제들을 정치논리로 재구성,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여기에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대의제민주주의의 참맛이 있는 것이다.

국회는 정치의 주도권을 하루라도 더 오래, 더 길게 민중단체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들의 손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민중에게 아부하고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은 결국 군부의 손에 정치생명이 끊기는 역사를 우리의 현대사는 잘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의 혼란한 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의 경륜과 능력, 도량이 큰 구상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할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실패는 그 개인만의 실패가 아니다. 그를 작년 12 19일 대통령에 선출한 국민들의 실패로도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18대국회도 실패한 국회로 끝나게 되고 마침내는 대한민국이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여야 정치인들은 거리에 있는 정치과제들을 국회로 끌어들일 때에 이르렀다. 더 이상 민중의 부르짖음을 거리에 팽개쳐 두어서는 안 된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오늘의 한국이 당면한 과제들을 국회가 해결할 과제로, 정치적으로 해결 가능한 과제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대통령의 독선과 민중의 아나키가 나라를 망치지 못하도록 견제함으로써 정치의 주도권을 국회가 되찾아야 한다. 여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가 있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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