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10년 11월 25일 관악아카데미에서 행한 이영일 특강내용이며 國際問題誌 12월호pp28-35에 轉載되었음)          
                     
                     

                    북한은 중국의 입술 아닌 립스틱이다.

 중국과 북한은 지금 두 차원에서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나는 공산권 특유의 국가 대 국가외교 차원과 당 대 당(즉 동지 대 동지관계)차원에서 양자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대 국가 관계에서 보면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이나 개혁개방거부정책에 비판적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에 중국이 두 차례나 찬성한 것은 국가대 국가차원의 외교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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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은 당 대 당 차원에서는 북한의 김정일 집단을 혈맹으로 대접한다. 장쩌민 주석 당시 1회,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취임한 이후 김정일은 5회 중국을 방문했는데 이런 방문 모두가 중국 외교부 아닌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의 초청과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즉 공식방문이 아니고 비공식 방문이며 전 세계가 지켜보는 의전행사도 방영되지 않았다. 이 관행은 지금도 지속 유지되고 있다.


 
지난 3월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우선 샹하이 엑스포 개막일에는 중국외교부 초청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의장(북한의 국가원수)이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만났다.

 이때 후진타오주석은 남북한의 국가원수들과 각각 정상회담을 가진 지 3일 후 김정일을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를 통해 따로 북경으로 불러 들였다.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김정일에게 국제사회에 파급이 클 중요한 문제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단독으로 결정하지말고 사전에 중국과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

 또 원자바오 총리도 이때 김정일과의 만남에서  외교적인 언사로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소개한다고 표현했지만 내용인즉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 두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중국의 요구를 실천할 것인가. 중국과의 사전소통약속이 지켜진다면 추가적인 북한의 대남도발로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억제될 가능성이 많고 6자회담재개도 예상된다. 또 서해상에서의 새로운 도발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 측의 요구를 항상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개혁개방이나 대남태도에서 제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요구한지 금년으로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등소평이 1984년 김정일을 만나 개혁개방을 권고했고 그 이래 장쩌민, 후진타오, 원자바오에 이르기까지 영도 급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했거나 북한고위층을 만날 때 마다 개혁개방을 권고했다.

지난 8월에도 중국 장춘에서 김정일을 만난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권고하고 북측도 정권세습이후 중국이 김정은에로의 권력세습을 묵인한다면 개혁개방의 점진적 실시와 북한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한국이나 미국만큼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핵 장난을 외교적으로 이용하면서 대미, 대일, 대한국 외교의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차원에서는 유엔안보리를 통해 북 핵을 비난하면서도 당 대 당 차원에서는 북핵이 중국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 핵을 사실상 묵인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강력하게 요구하지도 않고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정책에 반하여 북한에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북한의 핵 포기 압력을 무효화시키는 상황이 이대로 지속되는 한 북한의 핵 포기는 기대하기 힘들며 북한의 개혁개방도 중국이 내정불간섭원칙을 내세워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불행도 계속될 것이다.

 일부 중국학자들은 북중관계를 양국안보의 순치관계(脣齒關係)로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핵과 탄도미사일, 그리고 전략무기로서의 항공모함이 등장한 시대에는 어불성설이다. 이때문에 중국학자들 가운데는 북한이 중국의 입술이 되어 중국의 안보를 뒷받침한다는 순치관계론의 효용을 부정하면서 북한은 중국의 입술이 아닌 립스틱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또 어떤  중국학자들은 북한이 중국안보를 위한 완충지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민을 굶기면서 핵과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선군정치로 주변정세에 엄청난 불안정을 조성하는 세력이 완충국이라는 견해는 어떤 국제정치교과서에도 없는 소리다. 

 지금 중국은 북한이 목숨을 이어갈 정도의 최소한의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해줌으로써 북한이 중국에 철저히 매달리도록 하고 그 대가로 북한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외교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에 주력하고 선군론을 펼치면서 대남도발을 강화하면 할수록 중국의 외교카드로서의 북한의 효용은 커질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결코 안보상의 순치관계 때문이 아니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일본을 상대로, 한국을 상대로 교섭하는 외교카드로서 북한의 용도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산이 작동하는 한 중국의 협력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 개혁개방, 대남도발억제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한편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태도를 역이용, 대남도발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이나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면서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즉 북한은 국제사회가 자국을 핵 국가로 인정하도록 유도하면서 나아가 핵보유국지위를 이용한 경제지원을  얻어내어 강성대국의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국가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지만 당 차원에서는 당분간 어느 시점까지는 북의 핵 활동을 묵인하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공갈외교로 한국을 비롯한 서방측의 양보와 경협을 얻어내도록 북한을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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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미국의 힘이 경제적으로나 국제정치차원에서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취하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한국의 외교와 안보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오늘의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큰 책임을 감당할 G2로 대접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대국(大國)도 소국(小國)도 아닌 중국(中国)으로 대접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히 고민하지 않을 수없다.

필자는 중국이 북핵을 용인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중국의 앞날에 양호유환(养虎遗患)이 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오늘의 중국이 앞으로 G2로서의 큰 행보와 역할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평화와 안보를 위한 국제 레짐(International Regime)의 활성화에 중국의 기여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이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이루어낸다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요인을 줄이고 북한주민들의 아사(餓死)나 탈북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 민족이 오매불망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통일 여건조성에도 크게 공헌할 것이다.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에 보탬이 되는 중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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