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국제문제 8월호 이영일 칼럼에 기고한 글임)
지금은 정부가 남북대화를 서둘러 재개할 때가 아니다.
1. 북한의 적화통일역량은 끝났다.
오늘의 한반도 안보상황은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제위기그룹(ICG)이 세계 각국에 그 위기수준을 알리는 분쟁위험지역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상태다. 분쟁이 발생할 요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반도를 에워싼 세력균형이 북한 측에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간 북한은 한반도는 휴전 중(休戰中)일뿐 통일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명제 하에 무력남침을 꾸준히 준비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무력통일노선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상실했다. 북한과 유일하게 쌍무적 안보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도 북한의 전쟁노선을 확고히 반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규탄하는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중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북한과 러시아간의 우호조약은 문자 그대로 우호조약 일 뿐 안보지원의 성격을 탈각한 지 오래다.
(남북군사회담 광경)
또한 북한 자체의 적화통일추진역량도 만성적인 식량난, 에너지난, 원자재 난으로 전면적인 파국에 직면했다. 물론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개발이 국내외적으로 과시한 통일역량 같지만 이는 오히려 국제적 견제의 대상이 됨으로 해서 북한의 대외 고립과 경제난을 가중시켰다. 결국 북한의 핵개발시도는 한국 통일을 지지할 국제여론조성에 엄청난 난관을 조성했다. 우리 주변국들은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 통일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주저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결국 침체와 추락으로 운명 지워진 낡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틀을 중국처럼 과감히 내팽개치고 개혁, 개방으로 나서는 대신 ‘주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이를 유지하려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주민들의 끼니조차 돌볼 수 없는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하였다. 또 지난해에는 그간 배급제의 붕괴이후 주민생활의 근거가 되어온 초보적인 장마당 시장을 다시 정권의 계획경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화폐개혁을 감행했다가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을 만나 경제의 총체적 파탄을 가져왔다. 여기에서 비롯된 식량난과 인프레로 지난 5월 26일에는 북한주민각자가 자기 식량을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이른바 ‘5.26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좋은 벗들 2010년 6월14일자 북한소식 340호 참조 ) 이 조치가 사실이라면 김정일 정권은 더 이상 사회주의라는 말조차 꺼낼 자격을 상실한다.
2. 북한이 다시 꺼내든 서울 ‘불바다’ 론
북한은 자기들의 처지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악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1994년에 들고 나왔던 서울 “불바다” 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휴전선에 배치된 장사정포로 서울을 공격해서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전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북한정권이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실제상황은 될 수 없다. 북한 군 지휘부도 남북한 간의 군사적 실력격차를 잘 알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선제공격했을 경우에는 6.25의 경우와는 달리 한미연합군이 행사하는 자위조치를 김정일이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북한과 체결하고 있는 상호 원조조약에서 북한의 사전행동이 원인이 되어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어떠한 군사지원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이 완전범죄를 목표로 감행한 도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공동조사로 북한의 행위임이 밝혀졌는데도 철저히 이를 부인하는 자세로 일관 대처하고 있다. 유엔안보리가 북한책임을 지적할 경우 유엔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떼거지를 쓴다. “큰 거짓말은 진리로도 통용”될 수 있다는 스탈린의 선전전술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의 어떠한 군사도발도 그것의 필연적 결과는 북한정권의 괴멸이다.
3. 북한은 아직도 ‘남조선’ 해방에 미련을 두고 있다.
이제 상황은 북한이 줄곧 추구해 온 한반도의 적화통일이 더 이상 실현불가능 함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남조선 혁명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민주화이후의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자신들의 적화통일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고 자평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이후 1998년 정권장악에 성공한 김대중 정권과 그에 뒤이은 노무현 정권의 용공통일정책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원하는 남한내부의 적화혁명동조역량이 크게 강화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선 김대중 정권은 전교조(全敎組)와 민노총(民勞總)을 합법화 했고 북한군을 한국군의 주적(主敵)개념에서 배제했으며 햇볕정책의 이름으로 북한에 제공한 현찰외화를 포함한 거액의 경제지원이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돕는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또 김⦁노 양 정권 하에서는 북한정권이 그들의 선전과 심리전의 주공목표로 삼아온 남한에서의 반미선전선동사업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고조되었다. 예컨대 전교조와 민노총이 앞장서서 미군의 탱크운전사고로 두 명의 한국 여학생이 숨진 사건을 반미대중운동의 소재로 키워 전국적인 반미운동으로 확산시켰고 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투쟁, 맥아더 동상 철거투쟁 등은 하나같이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른바 남조선 혁명지원역량이 그 어느 때 보다 고양되었다고 판단할 요소가 된다.
여기에 곁들여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과거 정권에서 간첩죄나 이적활동으로 처벌받은 인사들을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민주인사로 재분류,
국가에서 상당액을 보상해주는 조치를 취해줌으로써 국민들의 안보관, 특히 청소년들의 안보의식을 사실상 마비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볼 것이다.
이러한 투쟁을 주도한 진보좌파들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반미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수입문제를 반정부 대중투쟁의 유발요인으로 활용, 촛불시위를 확산함으로써 이명박 정권의 존립을 위협했다. 여기에 북한이 "남조선 혁명"의 미련을 버릴 수 없는 까닭이 있다.
4.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적화통일동조로 오인
북한이 시대착오적인 대남적화통일의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는 것은 남한 사회가 국론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북한 측의 대남공작이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아직도 한국 사회 내부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망가진 경제 재건보다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제한된 역량을 집중하면서 남한사회내부의 모순과 갈등개발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현재 천안함 폭침사건의 모순조작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한의 이른바 진보세력들이 모두 적화통일동조세력은 아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진보는 곧 친북(親北)내지 대북동조라는 낡은 공식에 사고가 닫힌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러한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진보진영 인사들 가운데도 오늘의 북한경제 사정이나 정치 상황을 자기들이 지향하는 목표나 비전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을 떠나 먹을 것, 입을 것, 치료받을 의약품이 태무한 북한을 동경하는 진보세력은 없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정권세습을 정당하게 받아들일 진보세력도 없다. 북한의 핵개발이 반전평화운동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진보세력도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한국형 진보세력가운데는 이렇게 오도되고 있는 북한을 바로 잡기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북한체제의 개혁을 위해 당당히 월북, 김정일을 상대로 개혁투쟁을 전개할 용기 있는 인사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헌법이 민주주의의 다양성 존중이라는 원칙에 입각, 보호해 주는 권리를 등에 업고 진보적 가치 추구라는 명분하에 친북 내지 대북동조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마치 사발 안에서 낚시질하는 어부(漁夫)같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나는 역사의 편에 섰다"고 자위(自慰)할지 모른다.
1990년대 중엽부터 시작되어 최근 새롭게 고조되는 탈북현상은 북한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저항이다. 그러나 자신을 열렬히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배고파서 북한 땅을 등지고 뛰쳐나온 탈북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동정심도 베풀지 않는다. 탈북자 돕는 일을 반 진보(反進步) 진영에 가담하는 것으로 동일시하는 천박성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은 민주화를 이제 막 시작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미 성취된 민주화선상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선진화를 향해 달리는 G20국가의 일원이다. 한국 사회에서 들리는 친북적 목소리나 주장을 적화통일에의 동조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이 민주화의 결과로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일 만큼 국가포용능력이 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남조선 혁명’보다는 임박한 북한의 내부혁명을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있다.
5. 금강산 관광객 사살은 포용정책의 사살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의 진보세력과 야당들은 6.2지방자치단체선거가 햇볕정책으로 표현된 대북포용정책의 정당성을 국민들이 수용한 결과라면서 포용정책 재개를 이명박 정권에 강력히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햇볕정책의 파탄이 현 정권 아닌 북한 정권 자신의 소행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에서 발생한 관광객 피살사건은 북한이 마땅히 사과, 해명하고 재발방지의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북한은 서해에서 발생한 연평해전 중에도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선을 띄워 북한의 비위를 맞춰주었던 김대중 정권처럼 이명박 정권도 북한이 사과나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더라도 남북대화에 매달리면서 금강산 관광을 그대로 지속시킬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그것은 북한의 오판이었다. 국민의 생명을 위험상황에 방치하면서 금강산 관광을 계속할 정권은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개성공단의 통행로 차단과 체재인원 감축, 마침내는 공단 폐쇄까지 위협했다. 그러나 공단폐쇄는 북한에 치명적 손실을 입힐 것이다. 3만5천명을 넘는 북한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그들에 딸린 가족들을 합하면 10만 명이 넘는 북한주민들이 김정일 정권을 원망하면서 휴전선일대에 깔릴 것이다. 또 개성공단은 한국이 보내는 송전(送電)스위치를 끄는 순간 언제나 가동중단에 빠질 운명이다. 한국의 야당들이나 좌파들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면서도 정부가 마치 포용정책을 버렸다고 비판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다.
6. 모든 사태에의 의연한 대처만이 평화의 보증이다.
남북한관계는 현시점에서 한국이 천안함 폭침사건을 그대로 덮어둔 채 당국 간이나 민간인들 간의 대화 재개나 교류협력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한의 대남심리전이 아무리 가열하더라도 심리전에는 심리전으로 응수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 변하지 않고는 북한이 살아남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변화를 계속 거부하는 한 그나마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응원해 온 중국도, 천안함 폭침을 규탄하는 국회결의안 표결을 거부한 민주당도, 유엔안보리에 북한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는 정부발표에 반론을 제기한 참여연대 같은 소위 진보좌파단체들도 더 이상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지쳐 넘어질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느 경우에나 제2의 동족상잔을 초래할 전쟁을 확고히 반대한다. 전쟁은 민족적 고통과 불행을 가중시키고 평화통일을 향한 역사의 전진을 가로 막기 때문이다. 또 우리 민족이 모처럼 세계사의 중심대열에 참여하는 발전의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의 대남적대 심리전 공세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반전 심리를 6.2지방자치단체선거에 나타난 민의로 과잉 해석하여 무원칙한 대북지원을 재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국가위기를 부를 것이다. 실패로 끝난 햇볕정책을 재개한다면 국론은 더욱 심각히 분열될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더욱 악랄해지고 개혁개방은 더욱 요원해 질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배운 확실한 교훈은 북한의 모든 형태의 도발에 단호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안보 토대를 마련할 때 비로소 새로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남북한관계만큼 이 교훈이 진리로 통하는 곳은 없다. 지금은 남북대화보다는 안보토대강화에 주력할 때다.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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