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일 2009년4월 5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새 구상이 필요하다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이 영 일(한중문화협회 총재)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국제사회의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장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다. 외교협상을 통해 북 핵을 포기시킨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6자회담은 사실상 실패한 협상이다. 유엔안보리의 결의 1718이나 의장성명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억제하는데 실패했다.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실험을 단행했고 인공위성우주탐사라는 명분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단행, 미사일 능력을 과시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나 전략적 종심(縱深)이 짧은 국토의 협소성 때문에 남북한 어느 측도 핵무기, 탄도미사일, 항공모함 같은 전략무기를 가질 입장이 아니다. 전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그 전략무기로 안보위협을 받는 국가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고 반드시 간섭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략이론가들이 한반도를 핵전장터(theatre nuclear)가 아닌 재래전장터(theatre conventional)라고 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남북한의 어느 측이라도 전략무기의 보유를 시도하면 반드시 외세의 개입을 불러 오며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게 된다. 또 소위 6.15남북선언에서 말하는 남북한 연합추진도 연합구성체간의 안보체계가 핵 대 비핵으로 갈리기 때문에 불가능해진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베이징의 6자회담장)
북한은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이 북한의 핵무장을 불가피하게 한다고 강변하지만 오늘의 세계에서 지구 최강국인 미국이 지구 최빈국 중의 하나인 북한을 무력으로 침략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북한은 핵무기를 가짐으로 해서 주변국들의 견제와 간섭, 심지어는 군사제재까지를 받을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정일은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가.
이 집착은 한마디로 김일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들 김정일에 이르는 2대에 걸친 세습통치의 정치명분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정권은 “미제의 강점 하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인민을 해방 한다 ”는 명분위에 세워져있다. 따라서 남한 땅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남조선을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정권의 존재이유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곧 통일이며 앞으로 시도할 제3대 세습까지를 정당화시킬 혁명혈통계승의 명분이다. 이들은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할 위력적인 핵탄두미사일로 무장해야 만이 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조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남북한 상황은 이미 탈북현상이 웅변하듯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소련의 위성국가로 첫발을 내디딘 북한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건국의 기초를 다진 한국은 GDP세계 랭킹 13위로 올라선 경제대국이다. 북한은 이미 남북한 간의 개발과 건설을 향한 발전경쟁에서 패했으며 중국식 개혁개방을 본받는다고 하더라도 인민들의 생활수준은 향상될지 언정 남북한 간에 벌어진 발전격차를 매우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남북한 상황에 대한 이러한 평가 때문에 북한은 중국정부가 오래전부터 권고해 온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을 수용하지 않고 이른바 “조선식 사회주의”를 실시하겠다면서 핵과 미사일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선군정치와 강성대국의 기치로 병영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북한의 전략행동결정의 준거는 주변대국들의 동향보다는 한국의 대북동향이며 통일의 주도권을 잡기위하여 남한보다 우위에 서는 사업이 무엇이고 방법이 무엇이냐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한국이 핵 비확산 조약(NPT)과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에 묶여있는 현 상황 하에서는 핵과 미사일을 먼저 개발 보유하는 것이 한국에 대해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결정적 요소이며 또 이 분야에서의 대남우위가 북한이 한반도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60년 동안 일관된 북한의 전략이며 이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은 어떠한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핵과 미사일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입장은 북한과 같지 않다. 한국은 남이건 북이건 핵무기를 포함한 전략무기를 갖는 한 외세의 개입은 필연적이고 결과적으로 평화통일을 향한 국제환경조성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한반도의 비핵화는 통일의 선행, 필수조건이라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를 끝내 거부하고 주변대국들이 자국의 실리를 의식, 실효 없는 외교해법에만 매달린다면 한국은 NPT체제에 계속 묶여 있을 필요가 있는가를 신중히 재고해야 한다.
원자력발전능력 세계랭킹 5위국가인 한국도 NPT의 굴레를 벗고 북한과 대등한 핵보유를 할 수 있음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북한을 제압할 핵무기를 갖지 않는 한 북한은 결코 핵무기나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핵보유, 이것은 어느 면으로 보면 모순 같지만 이 방도를 떠나서 북한의 핵 포기가 가능할 것인가를 자문해야 한다. 남북한이 핵무기를 상호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고 북한을 외교로 핵을 포기시킬 방도는 없다. 모순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킴으로써 비로소 모순극복의 길이 트인다는 변증법의 진리를 새삼 시도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구상과 병행해서 정부는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전면 참여해야 한다. 북한 측의 반발을 의식해서 참여를 늦춘다면 그것은 안보의 포기다. 지금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PSI자체가 아니라 한국의 참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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