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인민관이 등소평과 전혀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4년 6월 19일 영국의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총명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한국과 세계경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며 “중국의 등소평처럼 북한을 냉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끈질긴 개혁가”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가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사실적 평가라기보다는 다분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희망론적 평가로 보인다. 김대중 씨는 그가 내놓은 햇볕정책의 주요정세가정의 하나로 북한도 중국의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주장의 정당화를 위해 이런 평가를 말한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대중 씨의 정세가정은 그의 희망이었을 뿐 북한의 실상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필자는 김정일과 등소평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햇볕정책의 정세가정이 얼마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인가를 지적코자 한다.
우선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은 그의 개혁개방철학이 중국 인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62년 등소평은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죽는 참상을 목도하면서 ‘빈곤은 사회주의의 특징이 아니며 모두가 부유해지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라면서 인민에게 빵을 주는 것은 공산당의 절대적 사명이기 때문에 인민에게 빵을 주는 일이라면 노선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이 주장을 내세웠다가 문화대혁명 때 자본주의앞잡이로 몰려 당직을 박탈당하고 시골로 추방당하여 트랙터 공장에서 7년간 직공생활을 했다. 그는 계급혁명만능(萬能)론을
부르짖은 모택동 주석이 죽은 후 毛의 오도된 지도노선을 지양하고 인민에게 빵을 주고 경제를 현대화하는 개혁개방의 길을
열었다.
이 뒤를 이은 후진타오 주석은 ”인민에게 사랑받는 공산당”을
구호로 내걸고 개혁개방과 경제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2008년 제29차
하계올림픽의 베이징 개최를 성공시킴으로써 전 세계가 중국의 존재를 의식해야하는 대국으로서의 중국시대를 열었다.
등소평은 그의 개혁개방정책이 정착되기 시작하던 1983년 봄 김정일을 베이징으로 초청, 중국이 걷는 개혁개방노선을 자세히 설명하고 북한도 중국의 길을 함께 걷자고 권고했다. 김정일도 초기에는 중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1984년 合營法을 비롯한 14개 개혁개방관련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아마 이 길을 계속 걸었더라면 지금쯤 북한은 중국보다 훨씬 더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지구의 온대권에 속한 국가로서 밥을 굶는 나라가 북한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개혁개방이 북한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른바 “조선식 사회주의” 노선을 천명하고 개혁개방 아닌 주체와 자력갱생을 앞세우는 시대역행의 길을 걸었다. 그것의 결과는 잘 알려진 데로 1990년대 중반에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餓死하는 비극을 낳았고 수십만을 헤아리는 탈북난민사태를 가져왔다.
중국정부는 2001년 9월 장쩌민 주석의 방북, 2005년 10월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방문에서도 중국식 개혁개방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김정일이 노선을 바꾸도록 적극 권유하고 필요한 경제 지원까지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을 보는 태도에서 등소평과 김정일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등소평은 자신을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인민의 이익을 그의 정치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지금 중국공산당에서는 인민의 이익이 모든 정책결정의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에게 인민은 어떠한 존재인가. 정치사회적 유기체이론에 입각, 수령이 두뇌라면 당은 몸통이고 인민은 지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민은 수령의 생명을 옹위하는 도구적 존재이다.
지금 북한 전역에는 중국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없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널려있다.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지도부를 목숨으로 옹위하자”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지도부가 “중국인민을 위한 지도부”라면 북한에서는 “수령을 위한 존재”가 당이요 인민이다.
수령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1~2백만의 인민이 아사하는 것 정도는 아예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이것이 김정일의 본체일진데 김대중 씨는 김정일을 한참 잘못 본 것 같다.
한중양국간의 대화와 협력이 남북 간의 대화와 협력보다도 더 용이한 것은 양국 공히 인민의 이익을 중시하는 인민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남북대화에 의한 통일접근이 얼마나 힘든 길인가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오늘의
남북한처럼 인민관이 공유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선전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는 정치적 상징조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선군정치로 강성대국을
만들어 핵개발을 통해 통일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김정일 정권에 물자를 무조건 퍼주고 달래야 평화통일의 길이 트인다는 김대중 식 햇볕정책의 邪術에 추호라도 현혹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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