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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선택을 노망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지난 11 26일 통합신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인 김근태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계속 1위를 고수하고 이회창 후보가 2위를 하는데 이어 자당 후보인 정동영후보가 3위로 처져 있는 것을 보고 국민들을 노망한 것 같다고 발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국민들을 노망한 것 아니냐고 내놓고 말은 못했어도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국민의 선택을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았다. 노무현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회창 씨가 낙선했을 때도 국민들이 노망했다고 말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다만 매스컴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또 현재의 분위기대로라면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국민의 선택이 훌륭했다고 역사에 기록될 분들이 과연 있을까 조차 의심스럽다.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 국민들은 줄 곧 노망했다고 책망 받을 선택만을 해왔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특히 이번 대선에는 12명이라는 사상 최다의 대통령후보가 출마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국민생활이 얼마나 어려워지는가를 여러 차례 체험한 국민들이기 때문에 이번만은 국민들이 노망하지만 않고 제대로 뽑는다면 모두 자기를 선택할 것으로 믿고 출마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주요정당의 추천을 받지 않고 출마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학력이나 경력이나 살아 온 이력이나 집권했을 경우 펼칠 정책전망 면에서 주요정당에서 추천한 후보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표현이 부적절할 만큼 많은 장점을 지닌 분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주요정당 추천 후보들보다 자질 면에서는 훨씬 나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세계 민주정치의의 현 단계 수준을 잘못 본데 기인한다. 대통령 선거는 교과서의 정의대로라면 훌륭한 인재-엘리트를 국민들이 투표로 뽑아내는 정치과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론적 희망일 뿐 정치현실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들은그 때 그 때”(jeweilige)의 상황에서 그 때 그 때의 정의를 앞세워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인 사람들이었다. 이 방향에서 그 나름의 지지를 비축(reserve of support)해 온 사람들이었다.


음악성만 좋다고 모두 인기가수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음악성에끼와 매력을 발산할 능력이 있어야 인기스타가 된다. 또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조직력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는 자금 동원능력도 있어야하고 일반대중에게 아필 할 수 있는 언변도 지녀야 한다. 요즈음 취업시험에서는 아이큐 좋은 사람보다는 느낌 좋은 사람이 잘 발탁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아필 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윈스턴 처칠이 민주정치를 최선이 아닌 최악의 정치제도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을 찾을 때까지는 이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의 참 뜻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학력이나 경력은 좋은 후보가 되는데 필요한 하나의 객관적 요소일 뿐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만을 옳다고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국민들은 항상 노망했거나 오판을 했다고 평할 것이다.


물론 역사에서 보면 히틀러를 선택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유권자들은 오판했거나 노망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어떻게 루터의 나라, 괴테의 나라, 베토벤의 나라에서 히틀러 같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느냐는 개탄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 역시그 때의 독일인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는 정치적 천재를 발휘했다. 프란츠 노이만 교수는 이때의 독일인들은 어느 순간 정치적 문맹( Political Illiterate)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국민은 언제나 정치적 선동에 속을 수 있고 그릇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노망하지 않게 하고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정치지도자가 발휘해야할 중요한 능력이다.


선거는 어느 경우에나 국민의그 때 그 때의 진정한 필요를 읽으면서 그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비축하고 선도하는 내공을 쌓는 정치인에게만 승리를 안겨주었다. 지금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순위는 국민들이 노망한 결과가 아니라 국민들의 필요를 반영하는 지표로 보아야 한다. 선거운동과정을 통하여 이 지표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자기가 당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국민을 노망했다고 비난하는 태도는 민주정치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엘리트만 집권해야한다면 선거보다는 쿠데타가 더 첩경일 것이다.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이영일(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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