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목의 정치에서 검증의 정치로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이영일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는 1 류 인데 정치는 3 류
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어느 재벌기업가가 뱉은 이 말은 한국정치의 어느 단면의 정곡을 찌른 탓에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다. 또 어떤 학자는 한미 FTA협상이 진행될
때 발표한 한 칼럼에서 수입시장을 전면 개방할 바엔 차라리 정치시장도 확 개방하여 능력 있는 정치CEO를
영입하자는 주장까지를 내 놓았다. 다소 희화적인 이야기이지만 정치가 식자들로 받는 평가의 한 대목 같다.
그러나 필자는 최근 한나라당이 벌이는 대선후보자 검증 공방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우리나라 정치도 이렇게 날카롭고 예리한 검증과정의
전통을 잘 발전시켜 나가면 정치발전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 같구나 하는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한나라당의 두후보진영간에 벌리는 검증공방은 그 범위가 후보자의 출생부터 성장과정, 성장후의
사회활동, 친자관계, 가계는 물론 결혼생활 자녀양육에 이르기
까지 훑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하다. 여기에 후보자 자산의 소유형태, 재산형성과정의 적법성 여부, 친인척의 재산보유정도와 재산형성배경에
이르기까지 검증의 칼날이 비켜가는 곳이 없을 만큼 날카롭다. 남의 신상문제에 관련해서는 심지어 DNA검사까지라도 해 보자고 나올 정도로 처절하다.
개인의 명예훼손죄의 위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지경에 이르면서 전개되는 검증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역겹기도
하고 권력에 미친 사람들의 광기를 보는 것 같아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저런 입장에 있다면 과연 저 예리하고 무서운 검증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를 자문해보았다. 평소부터 큰 뜻을 세우고 역사의 검증석에 나가서 어떠한 검증의 칼을 들이대더라도 떳떳하게 자기를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분들이 우리 정치권에서 몇이나 될 가도 생각해 보았다.
또 이미 대통령을 지낸 분들 중에서도 저런 검증의 칼을 들이댔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사람이 몇 분이나 계실 것인가도 손꼽아 보았다. 아마 없을 것 같다.
한국 야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던 지난날을 회상해보았다. 각목싸움이 판을 치고 당수집의
담을 넘어 습격하는 등 한국 정치의 후진사(後進史)가 머리를 스쳐갔다. 또 권위주의 리더들이 추종자들을 앞세워 후보로 옹립되어 기염을 토하던
체육경기장 전당대회의 이 모습 저 모습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끝났다. 검증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검증의 절차나 과정은 좀더 세련되어야겠지만 이 길만이 평소부터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정치인을 후퇴시키는 길이며 정치정화의 길, 정치인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확립시키는 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한국정치도 이제 비약적으로 발전할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한나라당의 후보검증에서 고생하는 후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후보들의 수고와 아픔이 있음으로 해서 한국정치는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발전할 전기를 갖게 되었다. 또 야당이 스스로 자기 허물을 들추어 씻어내지 않으면 권력과 수사권을 가진
여당은 반드시 더 강한 힘으로 야당의 허물을 파헤치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검증의 정치가 바야흐로 각목의 정치를 과거사로 만들고 권위주의 정객들의 군림의 정치를 제어하면서 한국정치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바야흐로 우리는 검증의 정치 시대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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