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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법으로 국가보안법을 대체하자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노무현 대통령이 부르짖고 이를 여당이 수용함으로써 나라 안팎이 온통 이념적 내전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존폐문제는 이를 어떤 선입견이나 감정에서 다룰 문제가 결코 아니다. 냉철한 이성과 국가 공리적 관점에서 21세기 한국의 앞날을 투시하면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국면에서 우리 사회의 태도가 갈등을 빚기 때문이다. 우선 첫째 갈등은 북한정권의 지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문제에서 파생된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헌법정신에 비추어 현 국가보안법은 합헌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규범과 헌법의 현실 간에는 현재 엄청난 괴리가 발생했다. 우선 북한이 주권국가에게만 가입자격을 부여하는 국제연합에 가입, 정식회원국의 지위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남북한간에는 그간 통치권이론에 의하건 정치현실의 필요성에 의하건 간에 7.4공동성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남북한 기본합의서,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에 이르기 까지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라는 법규를 현재대로 두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이 출현한 것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북한의 유엔가입이 이루어지기 전에, 남북관계가 극한적 대결구조에서 협력과 교류를 생산하는 대화관계로 전환되기 전에 성립했던 법이다. 북한을 괴뢰로 보고 우리의 통일을백두산영봉에 태극기 날리는 상태의 회복으로 생각하던 시기에 오늘의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가보안법은 상황논리에서 보면 이미 그 시효가 다 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만 단정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의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남북한간에는 법률상 전쟁상태가 종결되지 않고 적대관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남북한 간에는 정치적 수준에서 어떤 협력이 이루어지고 대화와 교섭이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헌법이 보는 북한의 지위는 적대국가(단체라고 표현하기가 어색하다면)이다. 특히 한반도의 휴전협정은 남북한 당사자간의 휴전협정이 아니고 1953년 성립된 이래 제네바 정치회담을 거쳐 국제화된 휴전협정이다. 정치적 수준의 새로운 협정중의 규정에 의하여 대체될 때까지(휴전협정 560)는 계속 효력을 지니는 협정이다. 그리고 이 휴전체제는 한국이 미국과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체결한 상호원조 및 우호협력조약체제에 의해서 지탱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할 명분이 살아있다고 말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갈등의 한 국면이 있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이적행위 또는 매스컴 적 표현에서의 친북행위를 어떻게 단속하고 규제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파생되는 갈등이다. 국가보안법이 하루아침에 폐지될 경우 우리 사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친북이적활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 최빈국(最貧國)으로 전락한 북한체제를 동경하거나 그 체제에 현혹될 국민들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도처에 김정일의 주의, 주장, 김일성의 소위 항일 유격대 활동을 지지 찬양하고 반미운동을 펼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북한의 통일방안을 지지하는 활동이 가두화(街頭化), 구호화 하고 인터넷 게시판마다에 구호가 뜨고 주체사상 연구회의 간판이 이곳저곳에 학원처럼 난무하는 사태도 야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50년간 반공일변도의 정치사상교육을 받고 살아온 국민들은 일시에 시국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한국의 장래에 대해 희망보다는 불안한 우려를 갖게 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활동은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의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또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과 친북 인터넷사이트들이 활개를 펴고 분위기를 띄워 가면 한국은 졸지에 그 정체성의 위기에 함몰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규제하거나 단속할 안전장치를 제도적으로 갖지 못하고 이런 분위기를 눈감아 주는 입장을 취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은 엄청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집권층이 불안 해 하는 국민들의 입장보다는 친북지지활동을 남북긴장완화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이며 6.15선언의 구현 내지 의미 있는 국민의식 개혁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지지하고 나선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이민사태가 속출할 수 있고 체제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이 와해될 수도 있다.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의 적국인 북한은 남한 내에 엄청난 동조세력을 얻게 되고 6.25전쟁당시 북한점령지역에서 북한 측에 섰던 이른바 부역자들과 그 가족, 그 후예들은 제 세상 만난 듯이 설쳐댈 수도 있고 조직화될 수도 있다. 자칫 대한민국의 망국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야당은 이런 사태를 예방할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고 국가보안법만 폐지시키자고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의 북한은 남한 정세를 자기들 뜻대로 바꿀만한 힘이 없다. 북한이 한반도 적화를 위한 전략이론으로 오래 동안 말해온 이른바 3대혁명역량의 어느 것도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예컨대 북한의 남조선해방노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역량(북한식 표현으로는 국제혁명지원역량)도 북한이 지구 최빈국이 되어 유엔에 식량지원을 호소한 순간부터 이미 기대할 수 없는 역량이 되었다. 북한자체의 사회주의 혁명역량도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탈북하는 사태 속에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지 오래다. 북한이 주도하는 남조선 해방을 바라는 이른바 남조선혁명역량은 일부 친북 사이트나, 진보를 앞세운 정치인들의 통일 지향적 언동 속에 아직도 잔존하는 것같이 보이나 그러한 주장이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다. 북한체제가 남한사람들에게 더 이상 매력 있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이 남한을 제압하거나 남한우위에 설 가능성은 없다. 북한이 핵개발에 체제생존을 의지하는 바로 그 이유가 이미 남조선해방이라는 그들의 정치목표가 허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는 폐지이후의 상황을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온존시켜야 하고 후자의 입장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시효는 이미 지난 것이 된다. 이러한 상황설정도 갈등의 또 다른 국면이 된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은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그 법의 부칙 규정에 의하여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는 것이다. 우선 새로 제정될 법에서는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조항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지 않는 현재의 상황 하에서는 북한이 법률상 대한민국의 적국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반 국가단체 아닌 적성국가로 정의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적성 국가를 지지, 찬양, 고무, 동조하는 이적행위에 대해서는 그 목적과 취지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 구체적 예시를 통하여 단호히 단속하고 규제하는 입법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법의 명칭은 대한민국안전보장법이나 민주질서수호법의 어느 것으로 해도 좋다. 다만 법의 시효를 명시하여야 한다. 즉 한반도에서 전쟁상태가 법적으로 종결될 때까지로 정하는 한시법(
限時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통하여 국내의 이념적 내전상태에 하루빨리 종지부를 찍고 국가발전, 경제건설을 위한 국민통합과 국민의 일체감조성을 위해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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