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0년을 돌아보면서
중국은 북한의 유보요구를 거부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한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교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2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회상하면 한중수교는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지형을 크게 변화시킨 동인이었다. 북한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1989년 자기 생애에서 48차로 베이징을 방문,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한중수교로 달리는 중국의 입장을 재고해줄 것을 간청했다. 또 1990년 하반기에는 그의 제49차 중국여행지인 심양(審陽)에서 장쩌민 주석과 다시 만나 한중수교에 대한 북한 측의 우려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당시의 실력자 덩샤오핑이 한중수교가 중국에 무해유익(無害有益)하고 한국과 대만관계가 단절됨으로 해서 중국의 통일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표명, 한국과의 수교정책을 굳히고 있었다. 또한 한국 측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정책을 통해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하여 소련과도 이미 수교관계를 맺음으로써 중국과의 수교명분을 자연스럽게 조성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한중양국의 수교에 대한 외교상의 걸림돌이 모두 제거되어 수교협상이 원만히 타결되었다. 장쩌민 주석은 이때 당시 첸치천(錢其琛)중국외상을 평양에 보내 한중 수교결정을 사전에 통보하고 김일성의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절차를 가졌다. 그러나 김일성은 자기가 최초로 입당했던 중국공산당이 자기의 유보요구에도 불구하고, 또 미국이 북한과의 수교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한데 큰 상처를 입고 1994년 그가 죽을 때까지 중국을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동북아시아 정치지형에 변화 초래
당시 한중수교는 한중양국이 냉전해체의 정치과정에 진입함으로 해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상황의 과제였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주도하는 개혁개방정책이 1989년 천안문 사건이후 개혁의 폭과 규모를 더 한층 확대하는 실리외교를 펼치면서부터 수교를 통한 한국의 대중경제협력을 기대했다. 이것은 그간 한국의 경제발전이 중국의 경제발전의 모델로 부각될 만큼 성장한데 기인한다.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동북아시아 정치에서 중요한 행위자(Actor)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무역환경을 갖게 되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 닭울음소리와 개짓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다고 양국관계가 형용된다. 오늘날 중국시장이 개방되고 중국이 총량GDP에서 세계2위국으로 부상됨에 따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국과의 거래를 모색하는 모든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수교와 동시에 한중무역규모는 작년 말로 2,200 억 달러에 이르렀고 한중간의 인적 교류는 6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은 중국의 3대 무역파트너이고 한국 제1의 투자대상국이다. 북한과 중국의 교역량이 작년 35억 달러일진데 한반도의 남북한을 보는 중국인의 시각이 옛날 혈맹논리에만 묶여있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한중친선협회의 이세기 회장은 그의 “중국관계 20년”이라는 최신 저서에서 “한국은 불의(不義)에 못 참지만 중국은 불이익에 못 참는 국민성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한중 양 국민들이 지닌 국민성의 어느 측면을 적실히 표현한 것 같다. 한중관계가 앞으로 양국국민의 이익을 반영하는 쪽으로 변해 가는 것은 외교사의 필연적 귀결이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북한과의 혈맹이라는 냉전논리의 잔영을 철저히 털어내지 않음으로 해서 한중관계가 불편해지는 측면도 있었지만 앞으로의 중국제5세대 지도부가 출범하면 냉전잔영세대가 대거 퇴진함으로 해서 한중양국 간의 구체적 실리에 역점을 두는 중국의 새로운 주변국정책이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관계 변화의 단계적 이해
중국정부는 한중관계를 그들의 입장에서 단순수교단계, 협력적 동반자관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설정의 기준과 의미를 형용사적 차원을 넘어서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필자가 아는 한 한국에도, 중국에도 없다. 그저 그럴 것이라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필자가 보기에 한중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①수교초창기의 밀월단계, ②경제적 이해차이의 실감단계, ③정치, 외교, 안보적 이해갈등의 표출단계, ④새로운 조정단계로 변전해왔다고 생각된다.
국가 간의 외교관계 수립이 양국관계의 모든 국면을 선린우호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미관계도 외견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대립과 갈등국면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는 노골적인 대립이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채널을 통한 대화로서, 때로는 주고받음으로써,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불리를 감수 감수하면서 그래도 우호협력관계를 이어왔다. 한중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시절의 마늘수입을 둘러싼 갈등, 해난사고와 해적문제, 중국으로 몰려간 한국 중소투자기업들의 줄도산 같은 사태도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최근에 와서 확실히 노출된 안보이익상의 갈등으로서의 천안함 문제, 연평도 포격사건을 보는 한중간의 시각 차이는 심각했다. 수교20년이 지나면서도 아직까지 영사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불거져 나온 김영환 씨 등에 대한 고문사건도 오늘의 한중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쉽게 표현되기 힘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대화와 소통,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중관계의 앞으로의 과제
수교20 주년을 맞으면서 정부와 국민들이 함께 반성할 일이 있다. 우선 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의연한 외교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국민들의 눈에 보이는 정부의 자세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의 유행가의 가사 한 대목이 연상될 정도로 중국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의 태도가 너무 쪼는 것 같다. 중국경계론이나 위협론이라는 미국공보원식의 정세분석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지금 한국의 스포츠맨들은 세계 어느 나라선수들과 상대해도 결코 쫄지 않는다. 우리는 새마을 운동 성공이래 어느 나라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국민철학을 가지고 엽전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한국축구가 영국을 이긴 소이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무역보복도 겁낼 필요가 없다. 중국이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내는 것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FTA를 통해 수출시장, 원자재 시장을 다변화하면서 중국에의 의존도를 줄여나가면 된다. 중국이 벌이는 애국주의를 앞세운 중화주의(中華主義) 고취, 부국강병을 위한 군사력증대, 우주개발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체제안정을 통해 공산당의 일당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중국내수용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한중간에 영사협정이 맺어지지 않고 인권 면에서 한국을 차별하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상황 하에서의 한중 FTA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중FTA협상의 중단을 정부는 검토해야 한다. 인권이라는 현대세계에서 가장 유효한 외교카드를 포기하는 정부는 더 이상 존속할 가치 있는 정부가 아니다. 대통령이나 외교통상부장관도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우리의 태극전사들처럼 쫄지 말고 당당해지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이것이 한중수교20주년을 20주년답게 맞는 정도이다.
국민들도 중국을 넓은 시장과 13억을 넘는 소비인구를 가진 땅으로만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중국의 커진 국격을 존중하면서 한국인과 경쟁할 상대가 13억명 이상이 있다는 것으로 오늘의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대륙을 우리의 확고한 시장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중국을 상대로 하는 소프트파워가 민간외교의 기반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국에 와 있는 8만 여명의 중국유학생과 60만 명을 넘는 중국국적의 노동자들이야말로 한국의 중국시장진출을 위한 좋은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도 중국노동자를 저임금의 수입원(收入源)으로 만 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한중친선과 중국시장을 확보하는데 보탬이 될 선전일꾼으로 만들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관리해나가야 한다. 대학당국들도 중국유학생들을 정원외(定員外) 수입원이나 정원미달을 메우는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한중관계의 미래를 개선해 나갈 사절(使節)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정부와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힘을 합쳐나간다면 한중수교 20년은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트는 외교의 대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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