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江 鄭哲鎬 선생의 84회 생신잔치를 다녀와서

청강 정철호 선생은 우리 현대 국악계에서 생존하는 거목이다. 그는 名唱에 名鼓手, 또 판소리 唱劇을 창작하는 達人이기도 하다. 12월 23일은 청강 정철호 선생의 84세 생신날이며 언론인 김동성 씨가 청강의 삶과 예술인생을 말하는 評傳의 출판기념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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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光州를 무대로 판소리 활동을 펼치시는 정철호 선생을 수년전 운산동에 있던 한중문화협회 내 사무실을 방문한 선생과 인사를 나누었을 뿐 가깝게 대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가까운 친구가 정 선생의 판소리 공연을 한번 듣자고 해서 따라왔던 것이 뜻밖에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해서 읽은 평전에서 나는 청강 선생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瞥見하면서 호남 명창이며 호남국악인의 멘토가 된 명창 임방울이후 가장 뛰어난 국악계의 예인이 바로 이 분임을 알게 되었다.

 나도 南道 출생이기 때문에 국악계의 두 분 거목으로 임방울 선생과 정철호 선생이 고향분이라는 사실에서 항상 긍지를 느껴오던 터에 뜻밖에 청강 선생의 출판기념식과 거기에 뒤이은 문하생들과 선생 자신의 연주를 들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역시 2년 전 고향사람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호남가를 배워 볼 양으로 친지의 소개를 받아 무형문화재 5호 정광수 선생에게 판소리를 이수한 신영자 선생의 국악전수소를 출입하면서 1년1개월가량 판소리 단가 몇 곡과 북치는 법을 배운 바 있다. 이 짧은 판소리에의 인연이 있었기에 이날 청강 선생의 삶과 예술을 말하는 행사에 얼굴을 당당히 내밀게 된 것 같다. 이 자리에 아는 분들은 별로 없었으나 김종규 선생이나 김동성 씨가 나를 기억하고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내가 국회문공위원장을 지낸 분으로 소개까지 해주어서 참가의 보람을 느꼈다.

국악계에는 全敎組가 없는 모양이다. 제자들이 선생을 위하고 받드는 모습에서 사도(師道)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師父를 노동자로 알지 않고 자기 인생의 멘토로 대접하면서 그분의 삶과 인생을 기리는 태도가 이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에 역력했기 때문이다. 제자는 문하생이고 문하생은 자기에게 예술을 익히게 한 師父를 끔찍이 모신다.

청강 정철호 선생은 전남 해남의 극빈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에게 판소리의 기초훈련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가정의 안온함이나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증조부는 神廳 계원으로 굿 음악, 춤 등을 가르쳤고 조부도 피리, 젓대, 징 등의 명인이었으며 부친도 김달천 문하에서 소리를 베운 소리꾼이었다. 이점에서 정철호 선생은 가문의 DNA속에 판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지만 어정굿판을 다니며 삶을 이어가는 생활이 극빈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12세의 어린 나이에 임방울 선생을 사부로 모시게 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임방울 선생은 앞으로 대성할 기운을 보인 청강의 성량을 높이 사주었고 여기에 청강이 보인 열심과 성실, 창의력이 가미됨으로 해서 그의 국악인생은 해가 갈수록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적벽가의 명창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도 판소리의 주요악기인 북치는 법(鼓法)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청강의 예술세계는 공연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국악으로서 판소리의 창극을 창작하는데도 一家를 이루었다. 聖者 이차돈을 창극으로 제작하였고 안중근 선생, 유관순 여사를 소재로 애국 열사들의 생애를 판소리로 극화했는가 하면 해상왕 장보고를 창무악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청강과 예술인생을 함께 해온 명창 송순섭은 “성자 이차돈”을 부산에서 공연했을 때 수많은 관객이 몰려들어 수개월간 공연을 한일이 있다고 이 자리에서 회고했다.

 나는 청강 선생이 국악 중 판소리를 현대적 창극으로 발전시킨 공헌과 업적은 마땅히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특히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판소리를 활용한 점도 후세들이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더욱 이날 행사에서 돋보인 것은 8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다시 열려 적벽가의 한 대목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비교적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연주하고 또 함께 활동했던 송순섭이 수궁가를 부를 때는 고수를 맡아 그의 鼓法 大家로서 무형문화재가 된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문하생은 물론이거니와 청중들 모두의 감동을 자아냈다.

앞으로 그가 그린 국악으로서의 판소리 창극이 더욱 발전하여 한국 예술의 중심축으로 부상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새 방향을 모색하는 한류가 한국국악의 세계화라는 차원에서 발전의 담론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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