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조상현 장로님을 영별하면서
이 영 일 (전 국회문교공보위원장)
우리들이 사랑하는 조상현 장로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오랜 투병 끝에 지난 10월 28일 병고와 근심이 없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나는 중국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오늘 아침(11월1일) 조상현 장로님을 영별하는 발인예배에 참석했다. 그분의 삶의 족적을 살피고 회상하면서 그분의 명복을 비는 조용하고 엄숙한 영별식이 박종화 목사님의 사회와 말씀으로 진행되었다. 고인이 남긴 노래 ‘국화꽃 옆에서’(서정주 시)를 녹음으로 들으면서 그 분의 마음속에 항상 간직되었던 그리움의 실체를 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분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의 운명이 돌연 싫어진다.
나는 1958년부터 경동교회에 출석하여 오늘까지 섬기고 있다. 돗수 높은 안경 너머로 항상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성가대들 지휘하던 조 장로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나는 장로님과 교회생활에서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나는 12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 그분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고 또 마침 국회문교공보위원장을 맡으면서 함께 국정을 논의하던 시절에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당시는 국회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정쟁의 한 가운데서 매일 같이 여야 간에 갈등과 격돌이 끊이지 않는 시절이었다. 노태우 대표의 6.29선언이 발표되기 전후의 시기였기 때문에 국정은 끝없이 표류했고 학원안정법, 언론기본법, 방송법 등의 처리문제로 여야가 파국을 향해 달리는 분위기였다. 직업정치인이 아니고 예술계를 대표해서 직능대표로 국회에 영입된 점잖은 조상현 의원 같은 분에게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정치 상황이었다.
나는 상임위원장으로서 법안의 강행처리도 불사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고 이때마다 조상현의원님과 상황을 놓고 대화하면서 조언을 구했다. 모든 문제를 어렵게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탄하면서도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게 여당의 입장에서 상황을 당당히 처리하자고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다행히 6.29선언으로 상임위원회에서의 강경대치는 끝났고 그 후는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교육 언론 예술 문화 분야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개혁입법이 다수 처리되었다.
조 장로님은 그에게 주워진 직능대표로서의 역할을 의회토론과정에서도 잘 수행하셨지만 당대표를 만나거나 당 정책팀과의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도 예술 문화사업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하는데 앞장섰다. 당시 군 출신들이 결정의 주요 부서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문외한인 분야인 문화예술, 특히 음악분야에 관해서는 조 장로님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였다. 연설하지 않고 조용히 설득하고 젊은 친구들의 오만한 자세를 잘 감내하면서 성실하게 일을 추진하는 자세는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 것이다.
오늘 발인예배에서 작곡가 김형주 선생님은 조사에서 조상현 장로님의 수고와 기획으로 애국가의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의 유해를 스페인 땅에서 국립묘지로 이전했던 일, 광복절 기념음악제를 대한민국음악제로 발전시켜 음악을 통한 국민통합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일 들을 회상하면서 그 분이야말로 우리 음악계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분이었다고 울먹였다. 특히 이날 김형주 선생님의 조사가운데 조 장로님이 시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겨울 나그네’ 전곡을 암송하는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성악인으로서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살리셨다는 말씀은 참가자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이제 조 장로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분이 가신 곳은 우리가 믿는 천국이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병마가 없고 인격적인 아픔이나 갈등이 없는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으신 것이다. 그 분의 명복을 빌면서 그의 부인과 자녀들에게 하늘로부터의 위로와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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