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10년 9월 10일 통일신문 11면에 전재되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북한 동포문제
(북한을 돕자는 종단 지도자들의 모임)
2010년 8월 27일 한국5개종단의 종교지도자 9인이 정부의 허가를 얻어 개성을 방문, 밀가루 400톤을 북한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식량난에 수해가 겹쳐 굶주리고 있는 북한동포를 그냥 앉아서 볼 수만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량이 남아도는 한국이 어려움에 처한 북한동포를 돕는다는 것은 거창한 명분으로 인도주의를 내걸 필요도 없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1995년 그들의 표현대로 큰물피해와 냉해로 식량난에 허덕이면서 유엔에 구호를 호소했을 때 한국정부와 민간NGO단체들은 북한에 대한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북민협(北民協)(북한을 돕는 민간단체협의회의 약칭)에 가입한 단체 수만도 50개를 넘었다. 그러나 왜 이러한 지원이 최근에는 중단되다시피 되었고 국제사회의 대북지원도 급격히 줄어들었을까.
오늘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은 강도를 만나 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피 흘리면서 길가에 버려진 사람을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본문으로 하여 자기도 참여한 이번 종교인들의 대북지원이 갖는 성서적 의미를 설교했다. 특히 목사님은 "너의 형제가 주릴 때 너는 굶는 형제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느냐"고 주님께서 물을 때 아무 답변도 할 수 없는 크리스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옳은 말씀이다. 필자도 약 6년간 북한을 돕는 개신교 단체의 공동대표로서 활동하면서 북한 땅을 여섯 차례 다녀왔다. 목사님이 말씀한 요절도 간증자료로 많이 활용하면서 북한지원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필자의 북한을 향한 열정은 식어버렸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우리들이 지금까지 해온 대북지원 사업이 결국 선군정치를 뒷받침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을 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회의는 사마리아인이 구해주었다는 "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피 흘리면서 길가에 버려진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 보지 못하고 다만 북한당국이 만나라고 지정한 사람만 만나고 다녔다는 것이다.
결국 북민협에 참여한 사람들은 북한 동포를 위해 북한에 보낸 모든 지원물자가 북한 동포들을 위해 제대로 쓰여 졌는가를 한 번도 확인하지 않고 물자만 갖다 주었던 것이다. 북민협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시간에 북한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자기들이 제공한 물자가 제대로 쓰이는가를 확인할 모니터링을 요구하면 내정에 간섭한다고 몰려 재방북이 불가능해졌다. 북민협은 평양에 연락 사무소 하나도 갖지 못했다.
그러나 핵실험이전에는 체제차이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속에 피어나는 회의를 억누르면서 언젠가는 북한이 변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필자가 참여한 단체의 북측 상대가 요구하는 물자는 의약품의 경우 다소 힘에 벅차더라도 구해서 보내주곤 했다. 필자가 북민협 회의에 참여해서 항상 강조한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that)라는 철학을 우리들이 가져야 북한지원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도와줘도 감사할 줄 모름에도 불구하고, 항상 오만한 태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추방하듯 내쫒고 재방북(再訪北)의 길을 막음에도 불구하고 겸손과 인내로서 북한지원을 계속하면 북한이 변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자는 것이었다.
필자의 이러한 신념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근본적으로 흔들려 버렸다. 특히 북한이 자행한 2009년 5월의 제2차 핵실험은 우리로부터 통일에 대한 꿈을 접게 만들었다. 특히 김정일 정권의 북한사회에 대한 통제가 절대적 수준을 유지하는 한 우리들의 대북지원은 예외 없이 선군정치지원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에 보낸 비료는 대부분이 동남아로 포장을 바꾸어 수출되었으며 심지어 약품, 겨울철에 아동들의 방한(防寒)을 위해 애써 만들어 보낸 아동복까지도 컨테이너에 실린 채 북한 땅에 내리지도 않고 그대로 중국변방지방으로 팔려나갔다. 쌀이 군량미로 변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북한 군대도 가난한 북한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쌀을 인민들에게 나눠 주지 않고 군량미로 비축해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이번에 방북한 한국의 종교인들도 "강도를 만나 피 흘리면서 길가에 버려진 북한 동포들"(聖書에서 말하는 사랑의 誘發態)을 한 사람도 못 만나고 돌아왔다. 북한에서 부족한 식량이 얼마이고 얼마나 지원해야 북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정확한 정보도 없이 굶는다는 소문만 듣고, 어렵다는 이야기만 듣고 밀가루를 트럭에 싣고 들어가서 북한이 지정한 장소에 운반해 놓고 왔을 뿐이다. 앞으로 밀가루가 북한 동포를 위해 쓰일지 아니면 군량미창고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밀가루를 주고 온 것이다. 동시에 굶주리는 형제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자위를 얻었을 것이다.
현실은 참으로 딱하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의 정확한 실상도 알 수가 없고 또 지도자를 잘못 만나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무작정 외면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동포지원이 곧 김정일 정권지원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을 묵인할 수도 없는 상황 앞에 우리는 놓여있다. 도대체 이러한 어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풀어가야 한단 말인가.
8월 29일 아침에도 북한 방송은 어떠한 도전에도 핵무기로 대응하겠다고 엄포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하지 않고는 국제사회가 우리의 통일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핵 실험을 통해 통일의 앞날에 이처럼 엄청난 난관을 조성한 북한을 그래도 인도주의 이름하에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 실로 풀기 힘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호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이 선택의 험 곡에서 우리는 어느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바이블이 우리에게 주는 해답은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있는 바로 그 현장에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신앙인들이 내려야할 결단의 과제가 우리의 새로운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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