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연우포럼,No.4035]에 실린 김영환 칼럼에 감동되어 올립니다

 

무료급식의 허실

 

학교에서 점심밥을 학생 전원에게 무료로 주어야 하는가? 어느 도 교육감의 주장에서 촉발된 논란이 확산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밥도 거저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의무교육이란 병역, 납세처럼 자녀를 취학시켜야 한다는 부모들의 의무이지 국가가 모두에게 무료로 밥을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논란을 보면서 필자는 프랑스 특파원 시절이 생각납니다. 당시 초등학교(cole primaire)에 다니고 있던 남매는 점심 때가 되면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다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18층 아파트에서 빤히 보이는 학교 교정에서는 매일 급식차가 학교에 점심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알아본 결과 부모가 모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급식의 첫째 조건이었습니다. 아내는 일을 보조하고 있었으므로 교육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했죠. 그런 뒤에야 학교 급식이 가능해졌습니다. 급식 비용은 당시 부모의 수입에 따라 6등급으로 나뉘어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소득에 따라 여러 배 차이가 났습니다. 그 때는 프랑소아 미테랑 대통령이 14년간 집권한 사회당 좌파 정권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글을 쓰려고 프랑스 웹을 검색해보니 가장 덜 내는 아동과 많이 내는 아동 간에 10배 정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지자단체에 따라 다르지만 한 끼에 최저 0.5 유로( 800)에서 5유로(8,000) 정도였습니다. 부모의 수입이 높으면 많이 내고, 아이들이 더 많으면 덜 내는 구조입니다. ‘선진국은 모두 무료 급식한다’는 어느 야당 당직자의 발언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 드라마에 ‘장미 없는 꽃집(薔薇のない花屋)’이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의 애인이 죽으면서 낳은 ‘시즈쿠’란 여자 아이를 대신 길러주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는 아이의 도시락을 정성스레 싸주었고 점심시간에는 학생들이 죄다 도시락 밥을 먹고 있었습 니다. ‘꽃보다 남자(より男子)'’에서도 초명문 사립고에 다니는 여주인공은 오직 혼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데 호텔 수준의 일류 급식을 즐기는 부유층 학생들로부터 ‘이지메 (괴롭힘)’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죠일본의 학교급식은 시설과 설비를 국고에서 일부 지원 하지만 급식비 자체는 생활보호법의 보호 대상자에 대해서만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뿐입니다. 결코 무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료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4대강 사업비를 줄이면 된다고 합니다. 글쎄요, 근본적으로는 홍수를 막을 4대강 사업이 빈부를 안 가리는 초중생들의 전원 무료급식과 무슨 상관이 있을지요? 그렇게 무료급식이 절박하다면 그것을 주장하는 국회의원, 교육감, 도지사들이 명예직이 되어 월급을 안 받거나 정당의 국고 보조금을 출연하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더 받을지 모릅니다.

 

   돈을 쓸 데가 없어 주체하지 못하는 부자 자녀 모두에게 무료로 점심을 주기보다는 아침과 점심을 거를 빈곤층 학생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학용품을 주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요? 더욱이 출산율이 세계 최저로 ‘국가가 키워줄 때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여 ‘출산 파업’이라는 말마저 나오는 우리나라입니다. 힘들게 임신과 출산을 해도 고작 20-30만원의 쿠폰을 줄 뿐인 인구 정체의 나라에서 부자 아이들에게까지 공짜로 점심을 주느니 출산비와 영유아 양육비를 획기적으로 보조해주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닌가요.

 

   학교 무료급식을 안 하는 프랑스도 아이를 가지면 부유층을 뺀 약 90%의 가정이 임신 7월째에 출산수당 855유로( 136만원), 육아수당 일시금 1,710유로( 273만원), 3살이 되기 직전 달까지 매월 171유로( 27만원)를 받습니다. 또 둘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에 매월 최저 119유로( 19만원)의 가족수당을 줍니다. 국민이 국가의 기본이라는 신념을 드러내는 정책 이죠.  

 

   전원 무료급식의 논란을 보면서 우리 정당이 얼마나 왜곡된 정보로 국민을 기만하려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선후완급을 정밀하게 숙고하는 정책의 정합성이 없습니다. 그런 주먹구구식으로 재집권의 기회가 옵니까?

 

어느 예비후보는 ‘6.2 지방선거가 무료급식 세력 대 반대세력의 국민투표’라고 주장했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낸 어느 지사 출마 희망자는 ‘이번 6월 선거에서 여당을 심판하는 것이 아이들의 빼앗긴 밥그릇을 찾아오는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무료급식이 이제 생각났나요? 좌파 집권 10년 간엔 뭘 했나요? 천문학적인 비용의 행정수도를 건설할 생각을 말고 무료급식에 착안했다면 지금쯤 상당히 합리적으로 확대되었을 것입니다. 전원 무료급식은 무료급식이 급한 게 아니라 ‘부자들의 표’ 가 더 급하다고 생각한 발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원 무료급식 주장은 이 나라에서 정치한다는 자들의 수많은 문제점 중의 하나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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