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글은 2007년 7월 16일 선린회 하기대회에서 행한 특강전문이다.
현대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들어가면서
흔히 인류는 지난 400년 동안 두 차례의 커다란 권력이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첫째는 17세기 유럽의 등장이다. 산업 혁명으로
힘을 기른 유럽이 세계바다를 주름잡았다. 두 번째 권력이동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세계최강국으로 성장한 미국이다. 냉전의 종결로 소련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는 Pax Americana 시대를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적 권력의 등장을 알리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개혁개방을 외치면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 2007년 1월 22일 Time誌보도]
또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은 2007년 1월 23일 아세안+한중일 3국정상회의가 끝난 후 이 지역에 중국이라는 Big Brother를 가진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아세안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은 팽대해졌다. 중국은 정녕 Pax Sinica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또 Goldman Sachs는 그들의 경제예측에서 중국은 앞으로 2016년이면 일본을 앞지르고 2040년이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우덕, CHINA-세계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MIRAE ASSET 투자교육연구소 2007) pp25-27]
미래에 대한 예측이 다 적중하는 것은 아니고 사정변화에 따라 예측은 빗나갈 수 있지만 우리 한국은 중국의 등장과 세력 화, 강국화를 결코 좌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地政學的 위치는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결코 중국을 우회하여 확보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간 경제성장으로 우리의 경제수준은 이제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 수준은 넘어서서 돌고래 정도는 되었지만 우리 주변에는 돌고래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큰 고래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돌고래같이 영리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상황이다.
지금 중국은 개혁개방이후 연간 9%를 넘는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고 앞으로 2020년까지 연평균 7.8%의 경제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서방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Guy Sorman, L'anne'e du Coq : Chinois et rebelles, 기 소르망, 중국이라는 거짓말-경제성장의 장막에 가려진 중국,(홍상희, 박혜영 옮김, 문화세계사, 2006)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은 허구이며 성장의 정당성을 평가할 통계도 전부 엉터리라고 비꼬면서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중국은 2005년에 有人宇宙船을 발사한 것을 비롯해서 매년 300억 달러(미국은 900억 달러라고 주장하고 있음) 의 국방비를 지출, 군사적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중국의 위신도 크게 제고되었으며 기존의 고립주의에 가까운 외교노선을 버리고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나날이 국제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대해지고 있는 중국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
즉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놓고 중지를 모아야 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한중관계는 경제적 측면의 교류협력 면에서 본다면 매우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중무역거래의
총량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對中무역거래에서 한국이 누리는 출초(出超)는 360억 달러로서 하루 1억 달러씩 흑자를 내고 있는 샘이다.
한국 제일의 투자국, 수출국이 중국이며 중국제2의
수출국, 투자국도 한국이다. 수교이후 한중관계만큼 다방면에
걸쳐 교류협력이 확대발전하고 있는 나라도 없다고 양국지도층이 공통적으로 인정할 만큼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은 눈부실 정도다.
연간 4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중국을 내왕하고 있으며 중국에 유학하고 있는 외국학생
중 가장 많은 학생이 한국학생으로서 4만 명을 넘어섰다.
또 한국에 유학 온 중국유학생수도 2007년 현재 2만5천을
헤아린다. 한중관계는 현재 겉에 들어난 지표로만 본다면 지극히 양호하지만 국가관계는 날씨처럼 항상 변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順境과 逆境을 동시에 고려하는 대비가 필요하며 여기에 한중관계연구의 적극적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2.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척도
중국은 흔히 베트남, 쿠바 북한과 더불어 지구상에 현존하는 4개 공산국가의 하나로 분류된다. 따라서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이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이론과 그 정당성의 논리적 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중국은 특히 등소평의 개혁개방이후 중국 에서 공산주의를 국가의 理想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市場資本主義를 기초로 하는 배금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중국의 대외정책도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명분과 외교실천 간에 적잖은 괴리가 있다. 군사적 강국화와 중화민족주의의 고양을 적극 추구하면서도 외교이론에서는 평화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런 양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현대중국을 바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중국을 바로 알기위해서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내놓고 있는 이념상의
변명-당 이론-과 대외정책상의 변명-외교이론-을 우선 검토하고 지구최후의 분단국으로서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내치외교의 辯解를 평가하고 금후 한국이 취할 방도를 모색하고자 한다.
가. 현 중국 지도자들의 內治理念에 관한 辨解
① 등소평의 정치이론-사회주의초기단계이론
현시점에서 중국이 성취하고 있는 발전은 사회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적이다. 즉 姓은 사회주의인데 실은 자본주의인 것이다. 그러
나 개혁개방을 주도한 등소평은 그가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모택동 사상을 올바로 이해한 사회주의의 정도라고 주장한다. 그는 소위 문화 대혁명시대를 풍미했던 階級鬪爭萬能論이 지향했던 “부유한 자본주의보다는 가난한 사회주의를 원한다.”(寧要窮的社會主義,不要富的資本主 義)는 태도는 중국 사회주의의 현 단계를 잘못 인식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중국은 신민주주의단계를 거쳐 무산계급이 집정하는 공고한 사 회주의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에 중국사회 내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모순은 階級鬪爭적 성질을 지닌 것이 아니며 중국사회의 주요모순은 날 로 증가하는 인민들의 물질문화에 대한 수요와 낙후된 사회생산력간의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그는 1962년에 대약진운동의 수습책으로 이미 黑猫白猫론을 주장, 공산당은 인민들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킬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주의 생산력의 낙후성은 중국이 처한 사회주의 단계가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놓여있는데 기인한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趙 紫陽의 정치보고를 통해 사회주의 초급단계는 단순히 사회주의에 진입한 초기라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낙후된 생산력과 상품경제가 발전 하지 못한 조건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중국이 거쳐야할 특수한 역사적 시기라고 규정하고 이 시기는 장시간을 요한다고 말했다.
[趙紫陽, “沿着有中國特色的社會主義道路前進,” ⌜紅旗(1987年 21期)⌟, p25]
등소평은 사회주의 본질이란 생산력의 해방, 생산력의 발전, 착취의 소멸, 극단적 격차의 제거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모두가 부유해지
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社會主義的本質,是解放生産力,發展生産力,消滅剝削,消除兩極分化,最終到達共同富裕)이라고 정의했다.
② 4項基本原則 堅持
등소평은 1982년 헌법 개정에서 자기의 이러한 지론을 수정헌법에 반영하였고 그 후 중국공산당 15차당대회는 ①堅持社會主義道路 ②堅持無産階級專政 ③堅持共産黨領導 ④堅持마르크스-레닌주의,毛澤東思想,鄧小平理論을 당장에 삽입했고 이어 16차당대회는 장쩌민의 3個代表重要思想도 黨章에 추가하였다.
등소평의 집권정치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 初級단계론은 등소평 등장이후의 중국의 정치상황에 적응하려는 책략적 성격을 지닌다. 즉 마르크스와 레닌의 社會主義론을 폐기하지 않고 생산력이 낙후된 중국현실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위한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사회주의 사회의 발전단계를 구분함으로써 이후 변화된 현실을 수용할 수 있는 외연을 확대하려는 折衷論이라고
볼 수 있다.
등소평은 당내보수파의 도전을 제압하면서 중국의 발전에 필요한 生産力증대론에 대한 당내의 공감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는 “빈곤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빈곤을 해소해야한다, 부유를 실현해야 한다, 사회주의의 부유는 전체인민의 공동부유이며
소수의 부유가 아니다, 양극분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의 생산력논의 일부인 先富論이 양극분화를 심화시키고 이를 용인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등소평은 중국혁명에서 “우경화에 경각심을 높여야겠지만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좌경적인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평화적 전복의 위험이 경제 분야에서 온다는 보수좌파의 공세를 겨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③등소평 이론의 발전과 진화
이러한 중국 측의 이데올로기 辨解는 소위 ‘중국특색사회주의’로 포장되었으며 여기에 후에 詳述하겠지만 장쩌민 주석의 3개 대표이론이 추가되고 작금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과학적 발전관이 당 이론으로 부상될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의 등소평 이론은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지론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며 善意로 해석하면 이론의 발전이지만 正統론에서 보면 異端이라 할 것이다.
문혁시기에 모택동이 등소평을 주자파로 비판한 것은 이런 이단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이 후계자로 내세운 장쩌민도 그의 3개 대표이론은 등소평의 프롤레타리아 독재(無産階級專政)에 대한 중대수정이 아닐 수 없다.
장쩌민은 중국공산당이 국가선진화를 대표하고 선진문화를 대표하며 전체국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이른바 3개 代表論을 발표하고 이를 당장에 올렸는데 이는 中共당이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노선을 바꾸는 것과 다름없는 결정이다.
또 후진타오가 말하는 과학적 발전관은 생산제일주의, 경제제일주의를 비판하면서 先富보다는 均富를 내세우고 인권과 環境親和적 발전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등소평의 선부론, 장쩌민의 경제제일주의에 대한 수정을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개방이후의 중국의 통치이데올로기는 장쩌민이 말하는 與時俱進, 즉 시대의 흐름과 상황의 요구에 즉응하여 변화해가는 정치적 상징조작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택동,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르기까지 현대 중국정치이론에서 불변하는 요소는 중국공산당이 중국혁명을 영도
한다는 공산당 領導론이다. 등소평은 중공당 영도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서 다음 세 가지 논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입장은 후계자 들에 의해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④ 공산당 영도 불가피론
⑴ 개혁과 개방은 장기간에 걸친 어렵고도 험난한 과정이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서 정치적 안정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오직 견실한 공산당의 영도 하에서만이 정치적 안정과 전체인민의 단결을 유지할 수 있다.
⑵ 공산당은 공산주의의 실현을 최고의 강령으로 하는 정당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고 보호하는 수호자이다.
(3)중국공산당은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자아비판을 통해 보다 완벽을 추구하는 역사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당도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부단한 糾正과 개선을 통해 공산주의 실현을 향한 정확한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당의 영도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해서도 안 되는 절대원칙이다. 등소평 이후의 중국정치이론은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시의에 맞도록 당론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後述하겠지만 경제발전과 공산당 일당독제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은 ‘성공의 역설’이라고 부를 사태를 유발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등소평 치하에서 중국경제는 溫飽단계에 진입, 국민들의 식생활을 해결하였고 장쩌민 주석치하에서는 小康 단계 에 진입, 의식주와 교육, 의료 등 기초생활태도를 갖추었으며 후진타오 주석은 ‘全面的 小康社會“실현을 목표로 경제발전에서 큰 성과 를 얻음으로 해서 공산당 영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중국사회의 각 분야에서의 변화의 추동력이 됨으로 해서 소유제의 유형, 금융, 관리, 각종 격차를 낳음으로 해서 공산당 영도에 부담이 되는 도전으로 등장하고 이다.
나. 개혁개방이후의 중국의 대외정책 辨解
① 戰爭可避論의 정착
개혁개방이후 중국외교정책에서 두드러진 특색은 毛澤東의 이른바 戰爭不可避론을 戰爭可避론으로 수정한 것이다. 당초 등소평은 핵전력시대에
전쟁은 피할 수 없더라도 늦출 수 있다는 입장을 지녔으나 미소관계의 변화를 지켜본 끝에 핵무장으로 인한 공포의 균형이 美蘇간에 유지되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중국의 발전이야말로 전쟁억지역량을 강화하는 길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앞으로 우발적 내지 국지적 전쟁은 발생할 수 있지만 강대국들이 개입하는 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동시에 그
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안정과 평화-전쟁 없는 상태-가 앞으로 70년 내지 100년 간 계속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이러한 유리 한 국제환경을 활용, 중국의 현대화발전을 가속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모택동이 지구상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하다면서 중공업건설과 군비확충을 강화함으로써 농민을 희생시키던 정세관과 사뭇 입장을 등소평은 밝히고 있다.
즉 전쟁과 평화를 바라보는 그의 안목이 오늘의 중국현대화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②韜光養晦, 有所作爲
등소평은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서방진영이 중국의 인권유린을 강력히 규탄하고 각종의 국제정치적 압력을 가해오는 위기상황 속에서 시국타개를 위한 20字방침을 천명하였다.
내용인즉 冷靜觀察, 穩住陳脚,(내외의 모든 격변의 상황에 태연하고 자기보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沈着應付, 韜光養晦, 有所作爲이다.
이중에서도 등소평은 韜光養晦 有所作爲를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의 현대화건설기의 대외정책의 원리로 제시했다. 그는 명성과 재능 을 감추고 창끝을 들어내지 않으면서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리되 국가주권을 수호하는 것 같은 꼭 해야 할 일에는 주저 없이 어떤 대가
를 치루더라도 당당히 대처하자는 것이다.
이는 모택동이 중국을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에 세우고 사회주의 깃발을 들고 제3세계의 선두에 서서 국제자본주의국가와 싸우겠다는 노선을 비판하고 중국의 현실에 맞는 대외노선을 정립한 것이다.
이 당시 중국의 경제실력은 미국의 9분의 1, 일본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주요자원의 1인당 평균보유량은 세계평균수준의 50%에도 미달한 형편이었음을 등소평은 직시한 것이다.
그의 戰爭可避論과 더불어 도광양회, 有所作爲론은 장쩌민, 후진타오로 이어지는 지도부의 和平崛起론으로 발전된다.
③和平崛起 내지 和平發展론
중국의 장쩌민, 후진타오로 이어지는 제3,제4세대지도부는 중국의 경제발전의 결과에서 나오는 국제사회의 중국위협론에 대처하는 외교전략으로 화평굴기론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중국은 자기들의 평화5원칙에 입각하여 다른 나라로 부터 침략을 당하지도 않으며 침략을 하지도 않고 오직 현대화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중국인민들의 물질적 생활향상에 전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연간 300억 달러의 군비지출(미국은 895억 달러라고 지적)을 하면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서방측이 경계심을 늦출 까닭이 없다.
따라서 최근에는 和平崛起에서 崛起를 빼고 화평발전으로 표현을 바꾸면서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완화하려는 외교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금 중국위협론은 미국에서 오는 중국위협론과 일본에서 오는 중국위협론, 印度에서 오는 위협론 등으로 미국의 대중국 牽制網 형성에 연결되고 있다.
④주변국들에 대한 3隣 政策의 外交口號화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가들(중국과 국경을 맞댄 인접국의 총수는 14개국임)을 순방하면서 安隣, 睦隣, 富隣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현대화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인접국가와의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인접국 들과 화목하고 인접국들을 잘 살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동남아 외환위기 때 중국이 위안화를 고정시킨 것을 富隣 정책의 가장 좋은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西藏工程,
東北工程을 보면 과연 중국3000년 역사에서 한번도 있어본 일이 없는 3린 구호가 중국외교의 위장술인지 아니면 주변국을 선무하기위 한 공작구호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외교심리전으로는 그럴듯한 성과를 얻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3.與時俱進의 나라로서의 중국
중국은 戰略書로서 三國志가 있고 세계를 변화의 실체로 보는 周易이 중국생활철학의 기초이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변신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길을 걷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쩌민도 그의 3개대표론을 발표하면서 중공당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나가야 한다(與時俱進)고 강조했다.
모택동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중국적 모순해결에 대입 수정함으로써 모택동사상을 발전시켰다면 등소평은 모택동의 階級革命만능론
과 戰爭不可避論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조적 해석을 실천을 통해 진리여부를 검증하자는 논리를 내세워 모택동 사상을 비판적으로 극 복하고 등소평 이론을 새롭게 정립, 당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① 장쩌민의 3개대표론
중국사회는 앞에서도 보아왔듯이 등소평 개혁이후 정치체제의 기반을 지탱해왔던 경제적 기반이 급변하였고 지방의 분권이 발전하고 있으며 농촌인민공사의 완전해체, 국유기업의 비중 축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의 충격에 직면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유형태의 문제, 특히 사유재산의 보호, 국유기업의 株式會社화, 근대적 경영시스템의 변화는 새로운 이론적 創新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지금까지 당 강령수정의 형태로 실현되었다. 중공의 전당대회는 사회주의 초급단계이론과 상품경제론(제12차 당 대회),사회주의시장경제론(제15차 당대회)과 같은 전환기적 과제를 당의 강령에 반영시켜 추진해왔다.
2002년에 열린 제16차당대회는 후진타오를 당 총서기로 선출하면서 당 강령을 수정,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 동사상, 등소평 이론과 ‘3개 대표’중요사상을 자신의 행동지침으로 삼는다고 했다.3개대표론은 ‘중국공산당이 중국의 선진생산력의 발 전요구, 중국의 선진문화의 전진방향, 중국의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즉 선진생산력 대표이론은 중공당의 이론과
정책과 강령과 사업방침 등 생산관계의 상부구조가 생산력발전에 조응하도록 조정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사회주의원칙이 갖는 발전의 이념적 제약요소를 벗어날 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로 선진문화대표론은 그 핵심이 중공당의 정책, 강령, 제 방침이 사회주의 정신문명건설의 요구에 조응시키자는 것이다. 즉 도덕이 있고 문화가 있고 기율이 있는 중국공민을 양성한다는 취지인데 이는 반 부패투쟁을 교육을 통해 강화해 나간다는 뜻이다.
셋째로 전체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 함은 모든 정책과 조치는 인민의 근본이익을 고려하고 각종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며 대중에게 절실한 정치, 경제 문화이익을 얻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통해 새롭게 부자가 된 신자본가계급(新紅資)에게도 당참여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3개대표론의 전 과정에 대해서는 江澤民, ⌜論 ‘三個代表論’⌟(北京:中央文獻出版社,2002)]
이는 프롤레타리아독재(無産階級專政)를 규정한 등소평 이론과 그에 앞선 당 강령과 마찰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현실의 필요에서 새로운 당 이론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공당은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자기변신을 꾀하면서 공산당 영도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당은 이 시기에
이르면 혁명정당이라기 보다는 집권당으로서의 자기보전이라는 현실적 요구을 수용하고 조응하는 자세로 변모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공산당의 전통이론의 맥락에서 볼 때 3개대표론은 그 혁명적 성격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장쩌민은 쩡칭홍의 도움을 얻어 2000년 2월 25일 광동성 가오저우(高州)시 방문에서 처음으로 3개대표론을 언급하고 이 어 2001년 당 창건 80주년을 기념한 7.1강화에서 민간기업인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는 혁명적 조치를 취하면서 당 제15기 6
차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3개대표론을 지지하는 당 기풍 건설강화 및 당 중앙결정이 채택되었다.
이어 2002년 제16차당대회에서 공산당의 당 규약에 삽입되었다. 당 總綱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 사상, 등소평 이 론의 당 발전에 대한 공헌을 열거한 뒤 “장쩌민 동지의 ’3개대표‘ 중요사상은 현 세계와 중국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요구를 받아들
인 강대한 이론무기”라고 평가함으로써 장쩌민은 모택동, 등소평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이 연장선상에서 2004년 3월 전국인
민대표대회 제10기2차 총회는 장쩌민의 3개 대표 이론을 중국의 지도이념의 하나로 중국헌법전문 중에 삽입하였다.
[“中國共産黨章程,”⌜中國共産黨第十六次全國代表大會文件編⌟(北京: 人民出版社,2002)]
②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과 和諧社會論
중국의 제4기지도자로
부상된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을 밥을 먹을 수 있는 溫飽단계로 끌어 올린 鄧小平이나 최소한의 의식주문제를 해결, 小康시대의 문을 연 장쩌민 주석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날 후진타오가 지도하는 공산당은 더 이상 혁명정당이 아니고 집권정당이며 공산당 영도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앞선 지도자들로부터 물려받은
각종 발전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해소해야할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29년을 지나면서 이미 시장을 자유화했고 외국무역과 투자를
개방함으로써 지구적 규모의 경제력을 갖는 나라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 결과 현시점에서 중국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은 지방정부에 대한 인민들의 높은 불만,
환경 악화, 심각한 자원부족, 낙후된 금융시스템, 부적절한 의료보장체계, 안정을 잃은 농촌인구의 동요, 대규모의 도시화(urbanization on a massive scale),
사회적 불평등의 확산 등이다.
[John L. Thornton, " China's Leadership Gap", Foreign
Affairs(november/december 2006),Vol 86 Number 6,pp133-140]
이러한 문제점들은 개혁개방과정의 전 기간을 통해서 있어왔지만 지금과 다른 점은 국가가 변화를 장악할 능력의 크기보다 변화의 폭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4년 8월 30일 개최한 “당의 집권능력건설공작 세미나”에서 당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분석하고 그 대안으로 경제제일주의와 발전제일주의를 인권을 신장하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발전의 과학화, 양극화를 몰고 오는 先富론과 구별되는 均富론을 내세우면서 階層간 隔差와 都農간 隔差, 地域간 隔差를 줄이고 조화와 협력을 추진할 和諧社會를 발표하고
있다.
[和諧사회론은 16기 六中全會 코뮈니케(October 12, 2006)에서 당론으로 채택되었다. 柳世熙 編著, 현대중국정치론,(2005,博英社) p 91참조]
앞으로 이 논리가 오는 10월의 17차공산당
대회에서 주석직의 연임과 함께 당 이론으로 확정되어 등소평, 장쩌민에 이어지는 지도자의 반열에 후진타오가
오르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후진타오의 현재의 문제 상항진단은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정책적 실적을 얼마나 쌓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러한 중공당의 반성은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의 경우 동서간의 격차는 한정된 財源을 가지고 경제발전에 유리한 지역을 먼저 발전시키자는 先富론에서 연유될 수밖에 없지만 현재 나타난 상황은 상당히 우려할만한 단계에 이르렀다.
예컨대 외국인의 직접투자가 집중된 동부 연해지역과 중부, 서부내륙지역간의 1인당 GDP격차는 1978년의 100:67:56에서 2002년에는 100:53:37로 악화되었다.
2003년 서부 貴州省과 浙江省 간의 1인당 GDP격차는 5.6배이며 샹하이 와의 격차는 13배에 이른다.都農간의 격차는 중국의 공식통계상으로도 증명된다. 1978년
도시민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은 344.3元 , 농촌주민 1인당 순수입은 133.6元 인데 2003년에는 도시는 8,472.2元, 농민은 2,622.2원이다.
또 중국사회과학원이 밝히고 있는 지니계수도 2002년
0.454로 1992년의 0.282에서 10년 만에 2배 가까이 확대되어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 南開대학의 연구팀은 중국의 지니계수는 사실0.5를 넘어섰다고 분석하면서 지니계수가 0.4를 너머서면 계층대립 등 사회불안을 일으킬 정도로 빈부격차가 불균형한 상태에 들어갔음을 뜻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都農隔差는 ‘中國統計年鑑-2004’(北京中國統系出版社,2004)
P.357 再引用]
[지니계수는 유세희, 김인, “중국사회주의의 미래 : 문제와
전망”, 유세희 편 현대중국정치론(博英社 2005년) P.337引用]
중국혁명에서 농촌과 농민은 공산당 집권의 기반이었는데 현 상황은
농민과 농촌의 피폐로서 공산당이 결국 농민과 농촌을 배신한 셈이다.
현재 소득격차확대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를 여론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전체응답자의 4분의 3이 소득격차의 확대가 심하다고 느끼고 격차확대의 주원인이 불법적인 치부나 분배불공정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3월에 실시된 東方早報의 인터넷조사 結果임 柳世熙 編 前揭書 p318 引用]
후진타오주석이 당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국민들의 증가하는
욕망과 욕망달성 간에 간극이 크다는 점이다. 즉 욕망곡선이 성취곡선을 계속 앞서가기 때문에 이 간극을
정부가 산출로서 채워 나가지 못한다면 사회적 불만과 공산당 영도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공의 역설이 나오는 것이다.
4. 전망
중국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與時俱進의 나라이기 때문에 어떤 이념에 묶이기 보다는 현실에 맞는 처방을 통해 생존과 번영을
유지해왔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를 국가발전의 대안으로 선택했고 사회주의를 이론 그대로가
아니라 중국현실에 적합하도록 이론을 발전시켰으며(모택동 사상) 사회주의가
갖는 발전제약요소를 실천을 통한 眞理檢證론을 내세워 止揚하면서 사회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이루었다.
혁명정당으로서의 사명이 사실상 종료되고 집권당의 입장에서 국정을 주도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계급정당론을 국민정당으로 변신, 경제발전이 몰고 온 사회적 변화를 당 이론으로 포섭함으로써 당 영도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공산당 집권이후의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정치의 실질은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중국을 근대화하는데 역점을 두면서
탈사회주의화 과정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중국특색사회주의나 시장사회주의는 사회주의로 포장된 개발독재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성장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혁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설과 상황변화에 대한 적응일 뿐 혁명은 아니라는 설이 있다.
[Harry Harding, China's Second Revolution (Washington D. C.: Brookings
Institution,1987) cf.]
나는 등소평 이후의 개혁 개방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혁명이라는 견해를 지지한다.
현시점에서 중국경제는 앞으로도 2020년까지 8.5%에서 7.5%로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다. 그것은 ①30~40%의 높은 저축률과 외국자본유입을 통한 자본축적②도시화의
진전과 인적자본투자, 경제개혁과 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③인구13억의 방대한 내수시장과 젊은 인구구성을 바탕으로 한 저임노동력,④공업화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이 추세대로 라면 앞으로 2025년경이며 GDP규모가
일본을 능가, 미국을 추격하는 제2의 경제대국이 되며 1인당 GDP도 중소득국가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애로사항도 적잖다. 우선 석유 전력 등 에너지자원과 철, 동, 알미늄 등 기초자원의 태부족,
심각한 물 부족과 환경오염, 빈부격차확대로 인한 사회적 갈등 심화, 정치개혁의 부진과 부정부패, 국제경제 환경의 불확실 등을 들 수
있다.
[國務院發展硏究中心課題組(李善同 외 執筆),“經濟增長潛力和‘十一五 ’及2020年經濟增長前望”(課題報告, 2005.3; 趙全厚.馬洪范,2005]
후진타오 시대는 이런 제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과제의 성격을 조명해 볼 때 경우에 따라서는 공산당 영도의 한계상황을 맞을
수 있다.
개발독재를 주도한 당의 노력으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결과 새롭게 조성된 사회 각 분야의 모순, 외부세계의
중국경계론 등을 극복해야 할 도전에 당이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금후의 전망이 결정될 것이다.
경제면에서는 중국경제의 연착륙을 장담하는 베이징 컨센서스 파와 경착륙을 우려한 워싱턴 컨센서스 파간에 대립이 있지만 단기적으로 보아서 중국경제는 현재 안정 기조를 유지한 가운데 인민생활의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추론하건데 중국은 오늘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정치명제를 입증이나 하듯 심각한 부패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있다.
경제발전의 動力이 拜金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 간부가 개입된 부정과 부패는 치유할 방도를 찾기 힘들
정도다. 독일의 사회학자 Max Weber는 자본주의가 여러
가지 병폐를 불러왔지만 항상 프로테스탄트윤리를 가치판단의 준거로 삼고 있기 때문에, 또한 민주주의 정치제도인 선거와 심판을 통한 부패의 응징 및 自己淨化능력을
가짐으로 해서 부패에 의한 체제와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당 영도이론에 입각하여 중국의 오늘과 내일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지만 부정부패의 자기치유능력은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極刑을 앞세운 처벌과 단속, 수시로 실시하는 정치교육을 통해 부정부패와 독선을 방지하려고 하지만 중국경제가 발전하고 그 연 장선상에서 사회가 다양화됨에 따라 일당독재체제의
병폐에서 비롯되는 부패와 독선과 부정은 시정되지 않고 있다.
이는 계층 간은 물론이거니와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省과 省간의 관계에서도 일당독재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고 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면 중국은 一黨(공산당)優位의 前提하에 권력을 분산하고 힘의 다원화를 실현할
정치제도로서의 연방제를 적극 모색해야할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현재 중국에는 중공당의 둘레에 중국농공민주당(의료, 위생, 수리방면의 학자 및 전문가중심),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대륙에 잔류한 국민당당원과 군정이사 및 자녀), 중국민주동맹(문교 과학계의 중상층 지식인), 中國民主建國會(상공업계 금융계인사), 중국민주촉진회(문교 과학기술계 및 중등학교 교사), 中國致公黨 (귀국화교와 그들의 권속), 九三學社 (과학기술계지식인), 대만민주자치동맹(대륙거주 臺灣省籍 동포)등 8개 民主諸黨派가 있다.
이들 잘 馴致된 정치세력을 통일전선으로 묶으면서 中華合衆國(The United States of China)을 지향하는 정치발전이 조만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일당독재가 그 限界狀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힘의 分散과 多元化가 불가피하며 민주화의 정치과정을 始動해야 하기 때문이다.
5. 한중관계의 과제
⑴ 한중관계의 기조
한중관계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 걸쳐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라는 표현이 손색이 없을 만큼 수교 이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단기적으로만 볼 때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거니와 호혜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나 러시아에 적용하는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범위 안에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전략적 파트너로
간주하기를 꺼린다.
중국의 궁극적 목표가 사회주의 근대화의 완성 아닌 중화민족주의의 꿈, 즉 Pax Sinica를 이루겠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장쩌민․ 김대중 시대의 협력적 동반자관계(1999-2001)를 노무현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2004)로 격상시키는데 합의했다. ‘전면적’이라는 의미는 경제, 문화, 정치, 외교뿐만 아니라 군사안보까지를 포괄하자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아닌 한, 군사안보분야의 협력은 형식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국가 간의 양자관계를 ① 단순수교 ② 선린우호관계 ③ 동반자관계 ④ 전통적 우호협력관계 ⑤ 혈맹관계 등 5단계로 구분하고 여기에 동반자관계를 세분하여 전면적
동반자관계, 협력적 동반자관계, 건설적 동반자관계 등의 표현으로
다양화하면서 국가대 국가관계에 일정한 순위를 매기고 협력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태환, 중국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 세종연구소 2007(한울아카데미916) p170 참조]
현시점에서 양국관계는 경제적 호혜관계를 넘어서서 정치, 안보협력의 확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정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얼마만큼 고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서 호혜의 측면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중장기적 차원에서
대 중국 경제적 편중 내지는 초보적 종속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양국 간 경제관계의 관건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중국경제의 경착륙에 대한 대비가 허술하다고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2005년 6월 18일 우쉬칭(Wu Shuqing) 전 북경대학 총장과 청언푸(Cheng Fu)중국해외경제이론연구협회 부회장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마가레트 대처 수상이 말하는 경제이론은 케인즈 이론을 신자유주의이론으
로 변형시킨 것으로서 규제완화주창, 시장근본주의 예찬, 사적 소유신화의 영속적 역할에 대한 긍정, 공유제 반대를 내용으로 하면서 지구적 자유화(Global Liberalization)를 강조하고 미국주도하의 자유경제를 옹호하고 신경제질서 수립을 반대하며 복지를 개별화하여 사회보장의 책
임을 정부에서 개인들에게로 옮기는 福祉逆行정책이 Washington Consensus인데
이 정책과 노선을 따른 러시아와 동구의 개혁지도지침이 되었다. 그러나 Beijing Consensus는
중국처럼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도 Stagflation에 빠지지 않고 있다면서 중구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Washington Consensus파를 비판한다]
한편 韓中간의 政治的 善隣은 수교를 시발로 부단히 진전되어 왔으며 현
단계는 최고지도자들의 상호방문, 국제현안에 대한 공동보조 등 일반적인 국가관계이상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과의 우호협력을 한반도정책의 다른 한 軸으로 고수하는 상황 하에서는 정치적 善隣의 내용, 범위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의 대북관계, 한국의
대미관계가 좀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을 고려한다면 한중간의 정치적 선린관계는 확대심화의 방향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안보협력은 정치적 선린보다 차원이 더 높고 주변정세와의 관계에서 더 민감하기 때문에 배타적 안보협력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한미, 북․중 관계의 변화나 역내 다자안보협력의 진전여하에 따라서는 느슨한 형태의 안보협력이 증대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평화체제구축 등과 관련해서는 양국간 협력 여지는 크다고
볼 수 있다.
⑵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발전시키려면
한중양국의 대통령이 합의, 발표한 한중간의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려면 정치안보부분을
포함한 포괄적인 한중관계를 통일이후까지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협력 구도를 작성하고 관계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단기적 이해나 특정현안에만 집착하는 편중정책보다는 다각적인 교류협력의 증진을 통해 양국협력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우리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좋건 싫건 간에 중국을 우회하여 생존과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면서 그간 경제관계에만 편중되었던
양국관계, 중국을 단순히 輸出市場으로만 보려는 近視眼的 시각을 청산해야 한다.
특히 21세기 한중관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젊은 세대의 교류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체제이념의
벽을 넘는 새 차원의 관계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⑶ 대중정책과 대북정책의 연계와 분리
중국은 한반도 현안에 대해 적잖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향력 행사는 자금의 동북아
정책의 큰 틀에서 실리위주로 전개하기 때문에 대중정책을 반드시 북한문제해결에 연계시키도록 요구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 현재 구상하는 현안에 대한 인식과 태세를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연결할 것과 분리 대응하는 것을 준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후진타오 정권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 김정일 체제의 생존을 위한
대내외적 변신과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하려 할 것이며 이를 통해 한반도 위기관리자, 동북아 평화의 기여자로서
위상을 제고하려 할 것이다.
⑷ 대미관계와 대중관계의 균형유지
중국은 한미간의 정치관계가 적어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아 배타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관계의
변화 및 그에 따른 자국의 개입확대여지를 적극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치․안보적 독점구조의 변화 없이는 자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남한과의 안보협력의 여지를 부단히 모색하는 동시에 한반도 현안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주도를 최대한 억제하고자 한다.
현시점의 중미관계, 한미동맹구조 속에서 한국이 한미, 한중관계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중관계의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가 불가능 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문제 개입에 있어 당사자 해결원칙을 곧잘 내세운다. 이는 첫째 북한의 일방적
지지요구를 회피함과 동시에 북한에 대해 설득, 압력, 영향력
행사를 촉구하는 한국, 미국 등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반도문제가 지나치게 국제화됨으로 해서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개입이 확대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구체적인 현안에서 중국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거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애매한 상황을 모면할 있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의 이러한 외교행태를 유념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적 난경을 회피하는 원칙으로 당사자 해결원칙의 활용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⑸ 결론
중국은 개혁개방이후의 경제발전을 딛고 서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향한 정치안보전략에 입각, 대외전략을 구사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동북아와 한반도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 등 제4세대지도부는 이런 면에서 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을 부강 시키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는 점진적 탈사회주의화에 성공한 개혁개방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후진타오가 오늘날 대표하는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혁명정당이 아닌 집권정당이며 중국의 변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당지배를 견지하기
위하여 다각적 공작과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GDP 세계랭킹 12위위라고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에서 보면 한국민족주의를 앞세운 주변국 정책보다는 오늘날 중국이 취하고 있는 韜光養晦 정책을 역이용, 국가적 실리와 안보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언론인 Nicholas Kristof는 앞서 인용한 그의 저서에서 “중국이 한국과 관련해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金日成 前 主席이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변지역에 연고권을 주장하는 한국 내 여론이다.--- 한국의
영토회복주의(Irredentism)는 그 목적을 실현하지도 못하면서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초래하고 나아가 국제사회가 다른 외교 분쟁마저 옳다고 믿게 할 우려가 있다.---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주장은 억지이다. 마찬가지로
오래전 중국동북지방의 일부가 조상들의 땅이었다는 이유로 그곳이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모순이다. 故土를 회복하기 위해 국경을 변경하려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어 “한국이 거대한 중국을 정면으로 대응하기는 어렵겠지만 몇 가지 길이 있다.
첫째 중국과 국경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한국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처럼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는다면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중국의 대응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국은 미국, 일본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공동안보전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수 천년 간 중국과 공존하는데 성공한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중국대국화시대의 한국의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참고가 되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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