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세력과 한국의 헌법질서

 

1.

 

일찍이 영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클릭은 “정치란 한 나라 정치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합당한 자기 몫을 정치세력들 간에 나누는 과정”이라고 정의(定義)했다. 이 정의는 민주정치를 포괄적으로 개념화한 점에서 지금 널리 수용되고 있는 정치에 관한 정의다.

 

이 정의에 비추면 한국에서의 정치란 한국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정치세력들이 이 체제의 존속과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합당한 자기 몫을 분배하는 과정이다. 이를 부연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지키는 안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 발전시킨다는 의미로서의 통일, 자유민주주의의 경제적 표현으로서의 시장경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인권의 실현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합당한 자기 몫을 나누는 것이 한국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국내정치에서 국민적 논의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발전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의 성립자체를 부정하는 정치패거리들이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이용하여 국회에 진출, 반정부투쟁의 원내교두보를 만든 사건에 모아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른바 종북(從北) 성향의 정당이 대한민국 국회에 의석을 차지한 사건이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의 각계각층에 큰 충격과 우려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

 

우리 국민들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록 소수지만 원내의석확보에 성공한 통합진보당을 종북 노선의 당으로 보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종북 노선이라는 용어가 보수진영이 만든 것이 아니고 바로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의 내부노선투쟁과정에서 튀어나온 것이며 당시 당의 주도권을 빼앗긴 측이 당권장악세력인 현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공공연히 종북 세력으로 규정, 비판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비록 내부투쟁이지만 종북이냐 아니냐를 놓고 치열한 당내투쟁을 일으켰고 이 투쟁의 결과로 당이 둘로 갈라졌는데 이 사건은 한국헌정사의 큰 흐름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종북이란 한마디로 북한 노동당의 목표와 지령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마땅히 이러한 노선의 사실여부를 심사하고 우리 헌법이 이러한 정당을 용인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따져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당국은 이 사건을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도 일부 소수 야당세력의 내부갈등 정도로 폄하했거나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방치해버렸다.

 

돌이켜 보건데 이른바 종북성향의 단체들이 걸어온 길을 하나씩 곱씹어 보면 다음 두 가지의 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민족을 앞세운 역사공세(歷史攻勢)를 통해 대한민국의 건국정당성을 부정하고 암암리에 북한정권의 정당성을 두둔, 지지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공헌을 야멸스럽게 부정, 비판하고 한국 내 저명인사들을 친일분자로 낙인찍어 공격하거나 또 좌익테러나 간첩행위를 하다가 단죄된 범법자들을 민주열사로 떠받들고 있다. 여기에 곁들여 국민의례로서 선창되는 애국가를 거부한다.

 

둘째로는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안보발판의 하나인 한미안보협력관계를 이간시키는 각종 분쟁을 유도하는 한편 반미운동을 지속적으로 주도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운동, 미군기지 평택이전반대운동, 광우병파동, 최근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명분상으로는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세계진보지식인 운동의 핵심 캐치플레이스인 반전반핵평화운동은 아예 구호로조차 내놓지 않는다. 북한의 핵무장기도, 미사일 발사, 인권유린, 탈북사태, 3대에 걸친 권력세습이라는 현대판 동양적 전제주의의 부활 같은 북한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이 겪는 모든 어려움이 미국 때문이라는 북한선전매체의 나팔수역할을 한다. 이 패거리들은 정상적 의미의 정당이 아니다. 좋게 표현해서 “혁명정당”이며 본질은 북한주도의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복무하는 국가 전복집단(顚覆集團)이다.

 

바로 이러한 길을 지금껏 걸어왔고 또 똑같은 행보를 계속할 정치집단으로서의 통일노동당이 국회로 진출, 국정을 혼란시킬 교두보를 원내에 마련했다는 사실 앞에 생각하는 국민들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헌법이 이들을 과연 보호하고 용인(容認)해야 할지, 이러한 정당의 존립을 위해 국고보조를 해주는 것이 합당한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3.

 

원칙으로 말하면 대한민국의 성립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한국정치의 경쟁상황에 참여하는 것이 거부되거나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는 그것이 갖는 다원주의적 가치존중 때문에 반체제세력들에게 역이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밀림 속에 침투하여 변신을 일삼고 경우에 따라서는 큰 거짓말에 적은 폭력을 가미하는 이른바 변증법적 역량배합전술을 구사하여 전략목표를 하나씩 달성하는 접근법을 구사, 합법성을 획득해 왔다. 이들은 내부적으로는 혁명정당임을 자부하기 때문에 당내투쟁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관철한다. 최근 통합민주당의 공공연한 당내선거부정이 이를 입증한다.

 

또 이와 병행하여 한국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반 체제세력들의 호신(護身)구호로는 색깔이나 메카시적 수법운운, 시대착오적 냉전논리, 꼴 보수 반동 운운의 용어를 동원하여 항상 수세(守勢)를 공세로 전환함으로써 정치적 생존을 부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들은 군사권위주의 시절에는 국민들 특히 젊은 층의 지지와 호응을 유발하는데 효험이 있었지만 이제는 약효가 떨어졌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적 정치질서가 정착하고 북한이 지구최빈국의 하나로 전락, 수십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탈북 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북세력의 숙주(宿主)는 북한 노동당이다. 노동당의 대남사업의 일부를 맡고 있는 세력이 다름 아닌 종북 패거리들이다. 흔히 식자들 간에는 남한 내의 종북 패거리들을 자생적 좌익운동, 진보세력중의 일부 급진세력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한 평가는 정당하지 않다. 진보성향을 띈 일부 학생운동에 이러한 평가를 적용한다면 다소 통할지 모르나 정당운동으로서의 종북 운동을 숙주와 연관되지 않는 자생운동으로 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북한 노동당의 입장에서 남한 내의 종북운동, 특히 원내침투를 겨냥하는 정당운동으로서의 종북운동은 결코 비예산사업(非豫算事業)일 수 없다. 상당한 공작비와 지령을 통해서 지탱시키는 운동으로 보아야 한다. 확증을 못 잡았다고 해서 이를 자생운동으로 본다면 그러한 평가는 저능(低能)의 극치다.

 

4.

 

현재 우리 사회일각에는 종북 하지 않고는 살맛이 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정상적인 경기규칙 아래서는 삶에 필요한 존경이나 처우를 받기 힘든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실의(失意)의 종교인들이 많다. 이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소리나 행동을 해야 사람들의 관심도 끌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대받는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공공연히 국민의례를 무시, 기피하거나 허가 없이 월북해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찬양하는 언동을 하여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체제내적 소외대중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방치보다는 적극적 계도와 단속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종북 패거리들이 당을 만들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민주주의의 다양성의 한 증좌로 보자는 여유 있는 낙관론도 적잖다. 이와는 달리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암약하는 종북세력을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국가안보의 토대가 붕괴될 것이라면서 공산화된 월남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비관론도 있다. 물론 낙관론이나 비관론에 나름대로의 정당한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2년 사이에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침략을 당했을 때 겪었던 심각한 국론분열에서 큰 교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우리에게 고무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총체적 국력(Capapbility)이 좌파주도의 국론분열을 극복하고도 남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사실적 기초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역행하려는 의도적인 패거리들의 존재도 확인하였다. 특히 이러한 세력이 학계, 교육계, 언론계, 인터넷 매체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보았다. 둘째로 정부가 국가위기 시에 국론분열세력을 확실하게 다스릴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치를 확립할 준비와 태세가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었음을 확인한 것은 매우 씁쓸한 기억으로 남는다.

 

5.

 

한국이 성숙한 민주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귀에 거슬리는 종북적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과민, 과잉반응을 보여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희생시키는 선택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종북행위의 존재형태와 양상, 그것의 물질적 기초, 북쪽과의 연계관계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민감하고 예리하게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들에 대한 법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회적 소외대중에 대해서는 국민복지차원에서 정책적 배려를 강화함과 동시에 계층 간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동반성장의 이념을 구현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곁들여 탈북자들과 다문화차원에서 한국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온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실현하도록 국민적 성원과 협조가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극우적 관점을 갖는 인사들은 한국의 베트남화(越南化)라는 우려를 앞세워 좌파척결을 강조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상황과 당시 베트남상황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큰 업적이라고 떠들어 대면서도 주민들을 극도의 궁핍과 아사지경으로 몰아넣고 국제적 고립 속을 헤매는, 지구 最貧, 최악의 북한정권과 한국을 동일선상에서 대비하는 접근으로는 젊은 지식인들의 공감을 사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극우적 태도역시 우리가 당면한 도전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결단해야 할 과제는 구호로서의 종북이 아닌 행위로서의 종북에 대한 태도다. 구체적 행동을 통해 우리 정치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훼방하고 이를 파괴하려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헌법의 보호에서 확실히 배제하는 방도를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더욱이 국민의 세금으로 종북 패거리들에게 국고로 보조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에 참된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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