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의 單任 약속 이행은 한국민주발전에 기여했다.
연세대학교 국가발전연구원(원장 진영재 교수))은 당대사(當代史) 사료연구의 토대연구를 추진하면서 1차년도 연구 주제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시기의 국가의제와 주요 정책을 삼고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연구를 맡고 당시의 상황을 말해줄 관련인사를 방문, 의견을 녹취하는 Oral History 자료를 만들고 그 내용을 종합토론을 거쳐 재정리하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나는 전 통일부 김형기 차관이 연구를 맡고 있는 5공 관련 정치문제에 관한 인터뷰에 응하고 그 내용을 마무리하는 보고모임에 Discussant로 초청받아 참여했다.
2011년 8월31일 13:30부터 18:00까지 서울 Palace Hotel 3층 제리 홀에서 열린 이날 보고회는 여러 사람의 보고가 행해졌고 이 보고 중에서 중요토론사항은 한국이 민주화되는 과정의 시점에 대한 논의였다. 유신체제를 권위주의 체제로 볼 때 전두환의 단임제의 이행약속이 민주화의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와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이 기점이라고 보는 견해가 나왔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의 단임 정신은 시종일관되었다고 지적하고 내가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장으로서 교육방향 설정 시에 1인장기집권의 폐단을 막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교재에 못 박도록 지시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단임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마친 후의 자신의 안전을 위한 장치마련문제로 많은 고뇌가 있었는데 그가 생각한 대안은 노태우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과 자기의 안전 확보장치로서 필요한 경비를 마련해 두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역사에서 단임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에 단임 이후를 안전하게 살아갈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전두환 대통령의 선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태우가 자신의 안전과 명리(名利)를 위해 전두환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고 청문회에 끌어내고 마침내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 두분 대통령 모두가 구속되어 유죄선고를 받는 재판이 뒤따름으로 인해서 전두환 대통령의 單任精神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날의 토론에서는 역사의 모든 권위주의 독재자들이 권력과 자기생명을 일치시켰던 先例를 조명할 때 전두환 대통령은 惡한 독재자들의 발악적 최후를 선택하지 않고 국민에게 행한 단임 공약을 끝까지 이행하고 청와대를 나온 것은 한국정치가 민주화되는데 가장 크고 중요한 공헌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실천한 단임공약이 그 뒤 계속 이어짐으로 해서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1인장기집권의 폐해는 사라졌다. 이 부분은 반드시 역사에서 재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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