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한일수교 누구를 탓하랴
한일수교관련 외교문서의 일부가 공개되면서부터 한일수교협상의 공과를 놓고 다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이 논쟁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둘로 갈린다. 하나는 다가올 앞날에
대비할 과제도 험난하고 수다한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지사를 놓고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재론불필요론이다. 다른 하나는 한일관계의 앞날을 위해서나 잘못된 협상의 되풀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파헤쳐서
시정책을 강구하자는 재론불가피론이다. 필자는 현시점에서 협상의 공과를 논하기에 앞서 1965년 한일수교가 이루어질 당시의 대일협상에 임하는 국민적 자세를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초 한일협상은 그 대전제가 1910년에 체결된 대한제국과 일본국간에 체결된 한일합병조약과
그이전인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이 빼앗아간 조선외교권박탈조약(통상 을사조약이라함)이 군사적 강박 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천무효(Originally null and void)라는 사실을 확인하는데서 출발해야 했다. 한일수교협상이 시작된 1950년대말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본이 한일수교의 전제로 한일합병조약의 원천무효를 수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한일합병조약과 을사조약이
원천무효가 되어야 한국은 대일청구권 즉 식민지상태에서 받은 각종피해 및 손실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법적 권리를 갖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들에게 불리한 원천무효의 수용을 거부하면서 아시아전략상 한일수교를 재촉하는 미국을 통해 한국의
원천무효요구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한일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지자 미국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려는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재원을 대일경협에서 구하라면서 한일
수교를 서둘도록 강력히 압력을 가했다.
상황이 이러했는데도 국내정치권은 대일굴욕외교반대론만 떠들었을 뿐 한일합병조약의 원천무효의 필요성을 강력히 요구하는 방향으로 국민의사를
결집시킬 이론도, 문제의식도 갖지 못했다.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려는 결연한 자세도 갖추지 못했다. 정쟁의 수단으로 한일협상을 들고 나왔을 뿐 국론을 올바로
지도할 정치지도자도 없었다. 결국 金容植 장관 후임으로 임명된 李東元 외무장관이 시이나 에이사브로 일본외상을 만나 “원천무효”아닌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로 물러섬으로써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국제법적으로 받아내야할 대일배상청구권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결과 한국 입장에서는 대일청구권자금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독립축하금이라고 말하는 한일경협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원천무효와 이미무효는 일견 비슷한 것 같지만 법적 효과는 판이하다. 원천무효를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아냈어야 통일의 원천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의 법통을 우리가 정당히 승계할 수 있고 일본이 중국에 양보한 간도문제해결에도 확실한
법적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기, 강박에 의한
조약이 원천무효라는 국제법상의 원칙이 1932년 스팀슨 독트린 이후부터 확립되었기 때문에 1910년에 체결된 한일합병조약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독일의 국제법학자 페어드로쓰(Verdross)나 스위스이 국제법학자 구겐하임(Gugenheim)은
사기 강박에 의한 조약은 원천무효라는 로마법이래의 법전통에 비추어 볼때 을사조약이나 합병조약은 원천무효라는 확고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1965년당시 미국의 압력을 감당할 수없는 쿠데타세력들에게
협상의 주도권을 맡긴 상태에서 실리를 획득할 수 있는 국민적 지혜를 결집하지 못했고 대일굴욕외교라고 떠들면서도 왜 굴욕인가를 논리화시키지 못한채
정쟁만 일삼거나 데모에만 열중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자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한일수교는 분명히
잘못된 협상의 산물이다. 그러나 누구에겐가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그렇게 편할 것 같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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