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식 개혁개방이 북한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이 영 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초 중국방문을 계기로 북한이 앞으로 중국식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하는 개혁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주도한 등소평(
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행해진 중국남부의 개혁개방의 상징도시들을 순방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또 이보다 3개월 전인 작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은 평양에서 행한 만찬연설의 3분의 1 가량을 중국에서의 개혁개방의 성과를 설명, 중국이 이룩한 오늘의 발전이 개혁개방 때문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
胡錦燾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는 앞으로 북한이 개혁정책을 펴는데 필요하다면 총규모 20억 달러의 경협을 고려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연초 비공식 방중(訪中)의 명분을 후진타오 주석의 초청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등소평의 남순강화를 본 딴 김정일의귀국강화’(
歸國講話)가 곧 나올 것이며 북한에서도 중국식 개혁개방이 뒤이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중국방문은 1983년 등소평의 초청으로 그가 처음 중국을 방문한 이래 횟수로는 공식, 비공식을 포함 5회째 방문이며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 마다 북한 측에 개혁개방을 권고했고 그때마다 김정일은 각국은 자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를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2002 9월 장쩌민 주석이 북한을 방문, 중국의 개혁개방을 설명하고 북한 측에 중국식 모델을 권고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높은 성과를 얻고 있음을 상하이 방문에서 보았음을 시인하면서도 북한은 중국특색적 사회주의와 구별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밀고 나갈 것임을 밝힘으로써 장쩌민의 방북에 따른 공동성명마저 발표되지 않는 이례(
異例)를 남기기도 했다.

중국은 북한 측에 개혁개방을 권고하고 있지만 개혁개방은 중국에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국도 개혁개방의 시대를 열기위해 생사를 건 투쟁을 전개했고 심각한 난관을 넘어서야 했다. 등소평이 극복해야 했던 가장 큰 난관은 량거빤쓰(
兩個凡是)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즉 모택동의 교시와 정책은 절대적인 것으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모택동의 후계자 후아꾸어펑(華國鋒) 주석의 집권명분과 싸워 이겨야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당 학교 부교장 후야오빵(
胡耀邦)은 1978년 5월11일 광명일보(光明日報)실천이야말로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논설을 발표, 개혁을 향한 여론몰이의 횃불을 올렸고 여기에 등소평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개혁세력이 가세함으로써 실증 되지 않은 모택동 주석의 교시와 정책을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사상해방(思想解放)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이 투쟁을 통해 중국공산당 제11 3차 중앙위원회는 등소평 중심의 개혁세력이 중국공산당의 중심에 서는 정권변환을 이루었다. 이어 1981년 모택동의 위상과 이론과 업적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하는 역사결의를 통해 개혁개방의 대로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이러한 투쟁이 있을 수 없었다. 김일성 주석의 교시와 정책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으며 김일성주석의 가르침과 정책은 그대로 대를 이어 승계되어야 한다는 세습유훈통치(
世襲遺訓統治)가 김일성 주석의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말하는 량거빤쓰 극복투쟁이 북한에는 있을 수 없다. 중국처럼 북한에는 체제운영방식을 둘러싼 대내논쟁도 없었다. 농업생산성의 감퇴로 인한 식량난, 원자재난, 에너지난 등은 그 원인이 천재지변이나 외부환경에 있을 뿐 김일성주석의 교시나 정책에는 흠결이 없다는 것이다.기아와 이로 인한 탈북사태가 초래되어도 북한지도층은 누구도 이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이른바 자연재앙이나 미국의 북한압살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더 이상 개혁과 개방을 늦출 수 없는 내외환경을 맞고 있다. 중국적 기준에서 보면 개혁의 대상이어야 할 현 집권층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서라도위로부터의 개혁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대내적 결핍과 중국의 권유형식에 의한 개혁압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개혁개방을 통해 산업재건, 경제회생을 기하지 않는 한 체제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이 비록 개혁개방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개혁주체세력 없이, 새로운 개혁철학 없이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로 변신해야 하는 한계성 때문에 개혁개방이 소기의 성과를 얻는 데는 중국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시대의 대세인 개혁개방을 더 이상 늦추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개혁의 길로 떨쳐 나서야 할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살길이 있 기 때문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