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盜聽 반드시 폭로되기 마련이다

 

도청은 반드시 폭로되기 마련이다
 
   이 영 일 

 국정원장은 지난 8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역대 정권의 불법감청(약칭 
盜聽)사실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근대국가 성립 이 래 국가기관이 스스로 불법비리를 자백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 예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국가기관의 행위는 설사 거기에 불법비 리가 있더라도 항상 적법성의 추정을 받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국정원은 과거 권위주의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민주화로 존립명분을 삼았던 김영삼, 김대중 정권시절에도 불법감청이 자행되었음을 시인하고 국민 에게 용서를 구했다.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중에 저질은 인간에 대한 생체실험이나 정신대동원 같은 만천하에 공인된 사실마저 공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비교할 때 우리 국정원의 태도는 일견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참 성숙단계에 이른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그 러나 지금 국민들은 도청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시인사과를 듣고서도 반가운 느낌보다는 허탈한 느낌,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가 갑 자기 더욱 초라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안전의 보루이고 파수꾼이기  때문에 국가안보 또는 테러, 마약으로 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분자들이나 세력을 상대로 감청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선진민주국가들에서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의 감청은 법원의 허가는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과  대상도 특정하여 개개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보다 큰 국민이익을 위한 감청인 점에서 적법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와 동시에 정보조 직에서 행해지는 감청은 정권이 몇 차례 바뀌더라도 그 내용과 임무종사자들에 대해서는 항상 인수인계되는 가운데 사후관리의 철저를 기 하고 있다. 따라서 임무종사자에 의한 자료의 누출이나 자료를 이용한 협박 공갈이란 결코 있을 수없는 것이다. 보안이 생명인 정보조 직에서 감청자료 그것도 불법감청자료가 시중에 나돌고 그 자료가 금품취득을 위한 협박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조직은 이미 정보기관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다른 나라 아닌 우리나라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세계 랭킹 12위의  경제국가로 발전했다는데서 오는 자부심은 일순간에 무너지고 우리 존재의 초라함을 절감치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국정원이라는  이름의 정권의 하수인은 있었어도 국가정보조직 다운 조직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수치심  때문이다. 비록 도청 팀은 국정원의 방대한 업무 중 지극히 작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기관도덕성의 중요한 척도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불법감청에는 국익이 전제되지 않는다. 국가안보나 테러방지, 마약단속 같은 구체적인 국민이익을 위해서는 불법감청을 할 까닭이 없 다. 국가기관이 불법감청의 주체가 되는 것은 국가가 아닌 정권, 그것도 정권의 실세들이 자기의 사적 이익을 위해 정적(
政敵)들의  약점을 파헤치는, 도덕성을 완전히 결여한 파렴치행동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다. 권력사유화 현상의 극치에서 불법감청, 소위 도청현 상이 발생한다. 도청명령권자는 도청으로 취득한 정보를 자기의 임명권자에게 상납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들은 이 자료를 국정판단의 자 료로 활용해 왔다. 도청임무수행자는 비록 그들 행위가 불법임을 알지만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명령 권자나 임무수행자간에는 처음부터 국익수호라는 신성한 윤리의식이 있을 수 없다. 양자 간에는 정권의 존속기간동안만 협력할 뿐 정권의 퇴진과  더불어 모든 관계는 종결되고 도청자료는 국익에 관련된 비밀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서둘러 폐기된다. 따라서 임무수행자에 대한 사후관리란 생각할 수도 없고 임무수행자 자신도 자기가 취득한 기밀을 무덤까지 지 니고 갈만큼 가치 있는 국익자료로 생각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도청자료는 언제나 폭로될 숙명에 놓이게 된다.

 국정원장이 이례적으로 도청사실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한 것은 우선 도청자료가운데 보호해야할 국익이 담겨있지 않았기 때 문이고 또 도청관행이 묵인되어서는 국가정보기관이 집권자의 사유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의 결과라고 본다. 그러나 제대 로 개혁을 달성하려면 우선 법원의 허가 없이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위임된 재가절차를 이용하는 감청제도를 즉각 폐기하고 모든 감청에  법원의 허가를 받는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또 기밀업무종사자에 대한 사후관리시스템도 이를 완비하고, 지득한 기밀은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무덤까지 가져가는 직업윤리를 확립시켜야 할 것이다. 도청을 지시하고 활용한 당사자들은 아래로 책임전가에 급급하지 말고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원의 제도개선노력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국정원장의 침통한 대국 민사과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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