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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통일 외교와 국내구조의 안정성

통일꾼이영일 2014. 5. 29. 11:24

                      (이글은 헌정지 6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한국의 통일 외교와 국내구조의 안정성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1. 들어가면서

 

바둑에서 승자가 되는 길은 포석을 잘하는 것이다. 상대를 자기가 몰아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포석이 중요하다. 특히 상대방이 놓고 싶은 곳에 먼저 선수를 두어야 한다. 국가의 외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년두 기자회견에서부터 조국의 통일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한반도 통일의 필연성을 역설하면서 국민들이 정부와 더불어 통일준비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이른바 통일 대박 론이다.

통일이 대박이 되는 시대를 만들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호소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영감의 산물은 아니다. 이러한 표현이 나오기까지는 분단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대통령의 나름대로의 고뇌와 대통령 당선 후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가능할 통일여건 조성이라는 과제를 염두에 두고 펼쳐온 정치 외교적 포석과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전망에 기초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박 대통령이 2011년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평론집인 Foreign Affairs(Sep/Oct)에 ‘새로운 한국’이라는 제하에 “서울과 평양간의 신뢰구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까지만 해도 이것이 박대통령이 그리는 한반도 통일구상의 주요한 기둥의 하나가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위 논문에서 제시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개념은 현 정부 대북정책의 주요한 준거(準據)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MB정권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를 모든 정책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웠고 특히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에는 북한의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자처벌과 재발방지가 없는 한 일체의 대북지원을 사실상 중지하는 5.24조치를 실시했다. 이 정책은 그 동안 남북한관계가 전개되어온 현실에 비추어 조금치도 틀린 정책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새로운 정세는 정부가 이 정책에만 계속 매달릴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을 펼쳤다. 우선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북한 정권의 김정일이 사망한데 이어 김정은 정권이 출현했고 중국에서도 후진타오 주석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으로 바뀌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북ㆍ중관계의 변화>

 

이러한 변동기 정세 하에서 북한이 감행한 2012년 12월의 미사일 발사와 2013년 2월의 제3차 핵 실험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보유시도가 주변국들의 안전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정착됨으로 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는 강도 높은 제재결의 2094호를 중국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에 찬성투표를 한 이후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는 유엔결의에 상응,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가 하면 북한을 우방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의 국제정치이론가들은 북한을 중국의 전략적 자산(資産)으로 보던 기왕의 이론-순치(순치)관계론이나 완충(緩衝)지대론-을 낡은 이론이라고 비판하고 중국과 경제적으로나 교류 면에서 상호의존도와 협력강도가 심화되고 있는 한중협력이 중국에 더 유익하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내세우기 시작했다. 물론 학계의 태도가 중국정부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진핑 정부도 이제는 국민여론을 등질 수 없는 발전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학계가 제기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평화협력구상>

 

박대통령은 이러한 상황변화를 의식하면서 새로운 정책으로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내놓았다. 박대통령은 기본적으로는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을 전제로 하지만 그러나 필요하다면 범위를 북한이나 몽골로 넓히는 한편 미국이나 러시아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 각국 간의 평화적 협력을 제도화시킬 외교공간의 확대를 제창했다. 박대통령은 오늘날 동북아시아각국들 간에 경제협력은 심화되고 있지만 정치, 안보 면에서는 오히려 협력보다는 갈등이 심화되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평화적 협력을 촉진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한국외교의 새로운 어젠다로 내놓았다. 박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과 한중정상회담을 통해서 이 구상을 설명하고 양국 지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유라시안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박대통령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임을 감안, 러시아를 통해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철길을 열고 중앙아시아 지역들과도 경제문화협력을 확대한다는 유라시안 이니셔티브(Eurasian Initiative)를 제안했다. 러시아가 이 제안에 호응했음은 물론이다. 남북한 관계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동북아시국가들 간에는 평화협력구상을 통해 경제정치안보분야에 이르는 평화적 협력의 토대를 쌓고 유라시안 이니셔티브를 통해서는 아시아와 유럽,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계, 발전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드레스덴 연설에서 밝힌 새로운 대북제안>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8일 독일방문 중 과거 동독지역이었던 드레스덴을 방문,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은 3개 대북제안을 밝혔다. 첫째 제안은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이다.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임신부터 2세까지 북의 산모(産母)와 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모자(母子) 패키지 1000일 사업'을 추진하자고 했다.  둘째는 북의 농업·교통·통신 등 '민생(民生) 인프라'를 남북이 함께 건설하자는 것이다. 북의 농업·축산·산림 개발을 위한 '복합 농촌 단지' 조성, 북한 신의주 등을 중심으로 남북과 중국이 참여하는 협력 사업 추진, 한국의 북한 지하자원 개발을 언급했다.  셋째는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이다. 박 대통령은 민간 교류 대폭 확대와 미래 세대 인재를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 공동 개발, '남북 교류협력 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 남북한과 유엔이 함께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짓자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하나 된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이런 노력이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은 비핵화로 나아가야 한다"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을 포기해 진정 북한 주민들의 삶을 돌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이 핵을 포기해야 박 대통령도 본격적으로 이 3대 제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 제안을 흡수통일 기도라고 거부했지만 이 제안에는 정부가 기왕에 취한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간에 교류 협력이 열릴 길을 터놓은 점에 북한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이산가족문제나 인도적 교류 사업을 원한다면 남북협력은 언제나 가능하게 되어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년 동안 펼쳐온 이러한 외교포석은 한반도의 진운을 한국주도의 통일로 밀고나갈 큰 구상이었고 큰 포석이었다. 상호 밀접히 연계된 이같은 구상들이 한국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가동될 때 비로소 우리의 통일은 그것이 대박으로 표현될 역사적 전망도 트이게 된다. 그러나 중국 고사에서 흔히 인용되는 모사재인(謀事在人),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는 말처럼 어떠한 훌륭한 구상도 그것의 실현을 뒷받침해줄 행운과 국내에서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줘야만 비로소 성취가 가능한 것이다.

 

2. 국내구조의 안정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대내적으로 두 가지 취약점이 있다. 하나는 6.25동란이 휴전으로 끝난 이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오히려 북한을 정통으로 간주하려는 이른바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갖는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 중심이 된 친북 좌파세력들이 사회의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국민과 정부를 이간시키고 대내적인 모순을 현실화시켜 한국의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극대화시켜 국력의 결집과 국론의 통일을 방해한다. 들고 나오는 명분이 때로는 미군의 교통사고를 이용한 반미선동, 미군기지 이동반대 운동,광우병을 앞세운 반정부, 반미선동, 제주지역에 건설할 해군 항만 건설 반대운동을 통한 한국 안보약화유도 같은 운동을 일으키는가하면 전교조를 이용, 학생들에게 친북선동을 하고 노동조합을 앞세워 반정부 투쟁 등을 벌이는 현실이 국내구조에 나타나는 취약점이다.

 

다른 하나는 압축혁명의 부작용이다. 쉽게 말해서 서구사회가 수 백 년을 걸려 성취한 근대화를 수 십 년이라는 단시일 내에 이룩해나가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들이 사회도처에서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은 물질적 풍요는 가져왔지만 그에 상응하거나 그것을 지속시킬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황금만능주의풍조가 범람하고 관주도의 국가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싹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와 부정부패는 심각한 사회갈등을 유발하였으며 이를 이용한 친북세력들의 모순조작과 이간선동이 맞물리면서 사회전반에는 아노미 현상이 확산되었다.

 

결국 역대정권이 추구해온 경제발전은 분명히 후보완(後補完)을 전제로 한 선발전(先發展)이었지만 보완의 문제는 항상 발전이나 성장욕구에 밀려 뒤처지기 마련이었다. 가치관을 바꾸는 의식혁명, 사회안전망의 효율적인 확충이 뒷전으로 밀렸고 인간안보보다는 국가안보가 항상 우선시되었다.

 

최근 전 국민을 너나없이 우울증에 빠지게 한 세월호 침몰사건은 한마디로 말해서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한 기업주의 탐욕이 세월호를 시한폭탄으로 만들어버린데 기인한다. 결국 제도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가 일치했다면, 바꿔 말하면 물질적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가 상응했다면 인간사에서 혁명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영국 정치학자 라스키(H. Laski)의 견해는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국내구조안정화의 요건이 너무 취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발전이었고 변화였다. 일찍이 미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 박사가 그의 명저인 ‘선택의 필요성'(The Necessity for Choice)에서 외교정책의 효율성은 국내구조의 안정위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박대통령이 취임 후 1년 동안 깔아놓은 한국외교의 통일을 위한 궤도 건설(Rail Building)이 효율적인 외교포석으로 빛을 보려면 국내구조안정화를 위한 조치들을 체계적, 지속적으로 과감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진당 해산청구와 문화투쟁>

 

통진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請求)한 조치는 이러한 관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이지만 이것은 필요한 친북세력퇴치사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북한의 대남선동에 맞장구치는 세력들이 정계는 물론 문화계, 언론계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의 조치가 필요하다. 정계에서는 통진당의 해산청구로 처방이 나왔으나 문화계, 언론계는 아직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들을 상대로 하는 치열한 문화투쟁이 수반되어야 한다. 주요일간지들이 앞장서서 문화투쟁을 지원하지만 SNS분야에서도, 주간지, 월간지 형태의 간행물에서도 친북좌파언론과의 처절한 투쟁의 불길이 번져야 한다. 동시에 공직사회에 만연된 출세지향주의와 부정부패, 먹이사슬관계로 부패협력구조를 체제화한 관피아의 척결역시 앞서 말한 후 보완의 긴급한 과제다. 최근 세월호 사건은 우리 국내구조가 안고 있는 후보완의 과제를 들춰내서 개혁의 도마에 올려놓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국가구조개혁과 내각개조>

 

우리는 하늘이 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 부정부패가 점(点)으로 존재하면 점을 뽑아야 한다. 선(線)이면 선을 절단하면 된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점이나 선이 아닌 입체적이고 전면적일 경우에는 총체적인 수술과 교체와 변환이 요구된다. 박근혜대통령은 바야흐로 총체적인 개혁을 요구받는 도전에 직면했다. 국무총리교체를 비롯한 내각개조가 국가개조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할 이유다. 국내구조상의 취약점을 그대로 두고는 어떠한 훌륭한 외교적 포석이나 이니셔티브도 실효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가 현시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주요한 과업은 국민의식개조를 위한 시민운동의 필요성이다.

 

 세월호의 비극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추진하는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와 같은 시민운동은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분야에서 국민의 의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자발적인 시민운동의 하나다.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부르짖는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국민의 의식개혁, 가치관 개혁운동이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통일을 위한 국내구조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4.16이전의 한국과 4.16이후의 한국이 전혀 달라져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국민적 요구가 실현될 날을 앞당기는데 국민적 총의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