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도의 통일이 곧 한반도의 비핵화다.
- 한미중 국제학술회의를 참관하고
이 영 일
1. 한미중(韓美中) 학자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
지난 4월 4일 서울 강남의 한 대형빌딩에서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동북아시아와 미국을 주제로 한,중,미 3국학자들의 정책포럼(Trilateral Conference on Northeast Asia and the United States)을 열었다. 요즈음 중국학자들의 참여가 늘어난 학술회의가 서울 도처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고 있는데 반해 8, 90년대의 유행이던 일본학자들 참가의 학술회의는 많이 퇴색했다. 중국의 커진 국력과 한국의 안보와 통일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한 탓이 아닐 까.
이날 필자가 방청한 포럼에는 나름대로 한중일 3국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다수 참석했다. 우선 미국 측에서는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Robert EINHORN, Kenneth Liberthal, Jonathan D. Pollack등 미국의 학술지에 발표된 그들의 논문으로 한국학계에 잘 알려진 분들이 참가했다. 중국 측에서도 중국사회과학연구원의 니펑(倪峰)부소장, 베이징 대학의 자칭궈(賈慶國), 주펑(朱鋒)교수,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웬펑(袁鵬)부원장, 샹하이 푸단대학의 선딩리(沈丁立), 중국인민해방군 국방대학원의 쉬히(徐輝)교수 등이 참가했고 한국에서는 서울대학교의 정재호, 정영록, 박철희 교수, 문정인, 이정훈 등 연세대교수, 성균관 대학교의 김태효 교수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공개회의 전날 비공개회의에서 심층 토론을 한 후 이날은 공개포럼으로 열렸는데 비공개회의에서 얼마만큼 밀도 있는 토론과 의견교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공개회의에서는 얻을 내용이 별로 없는 개념논쟁이 주를 이루었다. 주요쟁점은 미중관계로서 중국이 내놓은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미중 양측의 입장표명과 토론, 또 미중관계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 또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한일관계와 미국의 입장 등이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론을 보는 미국적 시각>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작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미중관계를 신형대국관계로 발전시켜 양국이 서로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세계문제를 대등한 자격에서 논의해결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측의 제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피하고 양국 협력의 중요성만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학자들은 신형대국관계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대국으로서 감당해야할 역할의 중요성에서 원칙적으로 수용하지만 이 용어가 다분히 중국적이며 미국으로서는 그 말의 의미를 객관,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이유인즉 중국이 말하는 핵심이익이라는 개념도 중국의 국력이 신장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그 이익의 리스트가 계속 추가되는데다가 “대국”(大國)의 개념도 양적 개념인지 질적 개념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중국의 힘이나 역할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국제관계에서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을 미국과 1대1의 대등한 관계로 받아들이기는 거북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중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에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맞장트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미국이 일본을 제치고 중국을 미국과 동격으로 대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학자들은 논리적으로는 미국의 주장을 긍정하면서도 동북아 지역문제해결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임을 내세우면서 미국의 중국견제(Hedging)가 주안점인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나 재균형(Rebalancing)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미중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賈慶國)
<미중관계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평가>
한국학자들은 현재 협력과 경쟁이 혼재하는 미중관계가 한반도의 비핵화문제를 아직까지 미해결상태로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중 양국, 특히 중국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진 바 영향력을 보다 강도 높게 행사할 것을 역설했다. 또 어느 한국 학자는 미중의 패권경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100년 안에 동북아시아에서 확실한 패권을 가질 국가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이색적인 주장도 튀어나왔다.
이날 토의에서 한국의 박철희 교수는 최근의 한일관계와 관련, 중국 측이 한일양국의 갈등을 즐기고 있다면서 일본의 아베정권은 잃어버린 세계 G2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구호로 일본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아 정권을 잡고 있지만 역사인식과 영토문제로 주변국들의 반발을 유발해서는 정권을 지탱해 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학자들은 한일관계에 대해 한국이 역사문제와 현실 안보문제를 분리해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중국학자들은 일본정부의 영토와 역사문제를 통한 도발은 아시아지역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 외국학자들과의 통일 대화
필자는 이번 학술회의가 끝난 다음날 중국 베이징 대학의 朱鋒 교수와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연구센터소장인 Jonathan Pollack박사를 오찬에 초대, 전날 가진 세미나에 대한 필자 나름의 참관소감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를 놓고 이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분 모두 박근혜 대통령이 펼치는 통일안보외교정책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 오히려 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의 질문가운데 공통되는 첫 번째 문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내구성(耐久性)에 대한 평가였다. 이들은 장성택 이후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공고화되었느냐 여부였다.
< 북한 김정은 정권의 내구성 평가>
필자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김정은이 현재 노동당 부부장들인 황병서, 조연준, 김경옥 등의 반간계(反間計)에 걸려 장성택을 제거했기 때문에 김정은은 형식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반간계를 주도한 노동당 조직부 부부장 그룹에 얹혀 있는 형편이며 이들이 최근 북한 내부에서 진행되는 숙청과 승진인사를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명분으로는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말하지만 북한소식통에 의하면 백두혈통이 반드시 김(金)씨 만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김일성과 함께 백두산일대에서 투쟁한 사람들의 후손은 모두 백두혈통이라는 이야기가 현재 북한에서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남북한 외교상황을 비교해 봐도 북한의 위기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우선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몇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만도 3회에 걸쳐 가졌으며 이외에도 인도, 베트남,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 등을 국빈 방문, 해당지역의 국가수뇌들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특히 이번 헤이그의 53개국 핵 안보정상회담에서는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를 핵 없는 세계건설의 출발지로 만들자고 호소하는 등 한반도 비핵화외교를 활기차게 전개해 왔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정권을 세습한지 3년차에 이르지만 해외는 물론 아직까지 동맹국의 수도인 베이징조차도 방문하지 못했으며 북한이 중시한다는 대미외교도 기껏해야 미국의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과의 교유(交遊)정도에 그치고 제3차 핵실험에 뒤이은 유엔안보리 결의 2094호로 말미암아 국제무역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김일성 때부터 강조해오던 이른바 국제혁명지원역량은 철저히 고갈되었으며 한국내의 친북 호응 세력도 그 마각이 들어나면서 국민적 지지를 상실한 가운데 소멸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 외교관들은 김정은 정권이 겪는 외교적 고립 때문에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었으며 북한내부의 지배동맹세력들도 김정은이 겪는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김정은은 난국돌파의 수단으로 대남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많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김대중이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북한을 달래는 정책보다는 강력한 응징을 선택하는 리더십을 보이고 있어 김정은은 결코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난 셈이라고 설명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위기가 이처럼 내부적으로 심화되는 상황이라는 필자의 지적에 두 분 학자들은 공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통일을 강조 하는가>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정권들과는 달리 금년 들어 한국통일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통일을 현실적인 과제로 들고 나온 배경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책임 있게 답변을 할 위치가 아님을 밝히고 다만 필자 나름의 관점을 정리해서 설명했다. 우선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미중양국은 지난 20년 동안 북 핵을 양국의 외교카드로 활용하면서 서로 즐겨(?)왔지만 이젠 북 핵은 미중양국이 더 이상 방치할 수없는 현실적 위협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북 핵 폐기를 시급히 서둘러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북 핵 폐기 없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시점에서 중국은 시장경제와 개방체제로 성공한 한국이 한반도 전체의 관리주체가 되어야 비로소 동북아시아 긴장의 원천인 한반도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으며 가장 확실한 비핵화와 개방화의 대안은 다름 아닌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임을 역설했는데 두 사람 모두 필자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Pollack박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연설을 보면 점진적 통일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은 정권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통일은 기회가 올 때 이를 포착하여 통일목표에 연결시킬 준비와 능력이 있느냐 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한반도 비핵화프로세스는 그 추진과정에서 한반도에 긴장도 가져오지만 통일의 기회도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주펑 교수도 통일을 위한 기회포착과 준비의 중요성에 적극 공감하면서 필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필자는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현실에서 볼 때 남북한의 어느 측이나 핵을 보유할 경우 주변의 어느 국가도 한국 통일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독일은 전략무기로서 미사일과 핵을 보유하지 않음으로 해서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어 통일을 이룩했음을 상기시켰다. 한국은 주변4대국의 동의가 통일의 필수조건인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주변국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통일을 성취할 수 없는 점에서는 독일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Pollack 박사와 주펑 교수의 논평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일본도 한반도 주변 국가이긴 하지만 한국 통일에 비토권을 행사할 수는 처지가 아닐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북한주민들이 한국주도의 통일에 마음으로 부터 지지를 해야 큰 성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도 이들 견해에 동의하면서 봄꽃 이야기를 비유로 대화를 마쳤다. 봄꽃은 반드시 기온이 섭씨 15도가 되어야 피며(15도가 Critical Mass) 그 이하의 온도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고 현재 북한의 상황을 온도에 비유하면 약 13도까지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머지 2도를 더 올리려면 미중양국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분 학자들도 필자의 견해에 공명하면서 오찬대화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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