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헌정지 6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한국의 통일 외교와 국내구조의 안정성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1. 들어가면서

 

바둑에서 승자가 되는 길은 포석을 잘하는 것이다. 상대를 자기가 몰아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포석이 중요하다. 특히 상대방이 놓고 싶은 곳에 먼저 선수를 두어야 한다. 국가의 외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년두 기자회견에서부터 조국의 통일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한반도 통일의 필연성을 역설하면서 국민들이 정부와 더불어 통일준비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이른바 통일 대박 론이다.

통일이 대박이 되는 시대를 만들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호소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영감의 산물은 아니다. 이러한 표현이 나오기까지는 분단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대통령의 나름대로의 고뇌와 대통령 당선 후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가능할 통일여건 조성이라는 과제를 염두에 두고 펼쳐온 정치 외교적 포석과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전망에 기초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박 대통령이 2011년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평론집인 Foreign Affairs(Sep/Oct)에 ‘새로운 한국’이라는 제하에 “서울과 평양간의 신뢰구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까지만 해도 이것이 박대통령이 그리는 한반도 통일구상의 주요한 기둥의 하나가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위 논문에서 제시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개념은 현 정부 대북정책의 주요한 준거(準據)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MB정권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를 모든 정책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웠고 특히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에는 북한의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자처벌과 재발방지가 없는 한 일체의 대북지원을 사실상 중지하는 5.24조치를 실시했다. 이 정책은 그 동안 남북한관계가 전개되어온 현실에 비추어 조금치도 틀린 정책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새로운 정세는 정부가 이 정책에만 계속 매달릴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을 펼쳤다. 우선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북한 정권의 김정일이 사망한데 이어 김정은 정권이 출현했고 중국에서도 후진타오 주석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으로 바뀌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북ㆍ중관계의 변화>

 

이러한 변동기 정세 하에서 북한이 감행한 2012년 12월의 미사일 발사와 2013년 2월의 제3차 핵 실험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보유시도가 주변국들의 안전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정착됨으로 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는 강도 높은 제재결의 2094호를 중국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에 찬성투표를 한 이후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는 유엔결의에 상응,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가 하면 북한을 우방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의 국제정치이론가들은 북한을 중국의 전략적 자산(資産)으로 보던 기왕의 이론-순치(순치)관계론이나 완충(緩衝)지대론-을 낡은 이론이라고 비판하고 중국과 경제적으로나 교류 면에서 상호의존도와 협력강도가 심화되고 있는 한중협력이 중국에 더 유익하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내세우기 시작했다. 물론 학계의 태도가 중국정부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진핑 정부도 이제는 국민여론을 등질 수 없는 발전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학계가 제기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평화협력구상>

 

박대통령은 이러한 상황변화를 의식하면서 새로운 정책으로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내놓았다. 박대통령은 기본적으로는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을 전제로 하지만 그러나 필요하다면 범위를 북한이나 몽골로 넓히는 한편 미국이나 러시아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 각국 간의 평화적 협력을 제도화시킬 외교공간의 확대를 제창했다. 박대통령은 오늘날 동북아시아각국들 간에 경제협력은 심화되고 있지만 정치, 안보 면에서는 오히려 협력보다는 갈등이 심화되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평화적 협력을 촉진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한국외교의 새로운 어젠다로 내놓았다. 박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과 한중정상회담을 통해서 이 구상을 설명하고 양국 지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유라시안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박대통령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임을 감안, 러시아를 통해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철길을 열고 중앙아시아 지역들과도 경제문화협력을 확대한다는 유라시안 이니셔티브(Eurasian Initiative)를 제안했다. 러시아가 이 제안에 호응했음은 물론이다. 남북한 관계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동북아시국가들 간에는 평화협력구상을 통해 경제정치안보분야에 이르는 평화적 협력의 토대를 쌓고 유라시안 이니셔티브를 통해서는 아시아와 유럽,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계, 발전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드레스덴 연설에서 밝힌 새로운 대북제안>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8일 독일방문 중 과거 동독지역이었던 드레스덴을 방문,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은 3개 대북제안을 밝혔다. 첫째 제안은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이다.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임신부터 2세까지 북의 산모(産母)와 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모자(母子) 패키지 1000일 사업'을 추진하자고 했다.  둘째는 북의 농업·교통·통신 등 '민생(民生) 인프라'를 남북이 함께 건설하자는 것이다. 북의 농업·축산·산림 개발을 위한 '복합 농촌 단지' 조성, 북한 신의주 등을 중심으로 남북과 중국이 참여하는 협력 사업 추진, 한국의 북한 지하자원 개발을 언급했다.  셋째는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이다. 박 대통령은 민간 교류 대폭 확대와 미래 세대 인재를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 공동 개발, '남북 교류협력 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 남북한과 유엔이 함께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짓자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하나 된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이런 노력이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은 비핵화로 나아가야 한다"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을 포기해 진정 북한 주민들의 삶을 돌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이 핵을 포기해야 박 대통령도 본격적으로 이 3대 제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 제안을 흡수통일 기도라고 거부했지만 이 제안에는 정부가 기왕에 취한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간에 교류 협력이 열릴 길을 터놓은 점에 북한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이산가족문제나 인도적 교류 사업을 원한다면 남북협력은 언제나 가능하게 되어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년 동안 펼쳐온 이러한 외교포석은 한반도의 진운을 한국주도의 통일로 밀고나갈 큰 구상이었고 큰 포석이었다. 상호 밀접히 연계된 이같은 구상들이 한국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가동될 때 비로소 우리의 통일은 그것이 대박으로 표현될 역사적 전망도 트이게 된다. 그러나 중국 고사에서 흔히 인용되는 모사재인(謀事在人),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는 말처럼 어떠한 훌륭한 구상도 그것의 실현을 뒷받침해줄 행운과 국내에서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줘야만 비로소 성취가 가능한 것이다.

 

2. 국내구조의 안정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대내적으로 두 가지 취약점이 있다. 하나는 6.25동란이 휴전으로 끝난 이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오히려 북한을 정통으로 간주하려는 이른바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갖는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 중심이 된 친북 좌파세력들이 사회의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국민과 정부를 이간시키고 대내적인 모순을 현실화시켜 한국의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극대화시켜 국력의 결집과 국론의 통일을 방해한다. 들고 나오는 명분이 때로는 미군의 교통사고를 이용한 반미선동, 미군기지 이동반대 운동,광우병을 앞세운 반정부, 반미선동, 제주지역에 건설할 해군 항만 건설 반대운동을 통한 한국 안보약화유도 같은 운동을 일으키는가하면 전교조를 이용, 학생들에게 친북선동을 하고 노동조합을 앞세워 반정부 투쟁 등을 벌이는 현실이 국내구조에 나타나는 취약점이다.

 

다른 하나는 압축혁명의 부작용이다. 쉽게 말해서 서구사회가 수 백 년을 걸려 성취한 근대화를 수 십 년이라는 단시일 내에 이룩해나가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들이 사회도처에서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은 물질적 풍요는 가져왔지만 그에 상응하거나 그것을 지속시킬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황금만능주의풍조가 범람하고 관주도의 국가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싹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와 부정부패는 심각한 사회갈등을 유발하였으며 이를 이용한 친북세력들의 모순조작과 이간선동이 맞물리면서 사회전반에는 아노미 현상이 확산되었다.

 

결국 역대정권이 추구해온 경제발전은 분명히 후보완(後補完)을 전제로 한 선발전(先發展)이었지만 보완의 문제는 항상 발전이나 성장욕구에 밀려 뒤처지기 마련이었다. 가치관을 바꾸는 의식혁명, 사회안전망의 효율적인 확충이 뒷전으로 밀렸고 인간안보보다는 국가안보가 항상 우선시되었다.

 

최근 전 국민을 너나없이 우울증에 빠지게 한 세월호 침몰사건은 한마디로 말해서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한 기업주의 탐욕이 세월호를 시한폭탄으로 만들어버린데 기인한다. 결국 제도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가 일치했다면, 바꿔 말하면 물질적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가 상응했다면 인간사에서 혁명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영국 정치학자 라스키(H. Laski)의 견해는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국내구조안정화의 요건이 너무 취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발전이었고 변화였다. 일찍이 미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 박사가 그의 명저인 ‘선택의 필요성'(The Necessity for Choice)에서 외교정책의 효율성은 국내구조의 안정위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박대통령이 취임 후 1년 동안 깔아놓은 한국외교의 통일을 위한 궤도 건설(Rail Building)이 효율적인 외교포석으로 빛을 보려면 국내구조안정화를 위한 조치들을 체계적, 지속적으로 과감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진당 해산청구와 문화투쟁>

 

통진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請求)한 조치는 이러한 관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이지만 이것은 필요한 친북세력퇴치사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북한의 대남선동에 맞장구치는 세력들이 정계는 물론 문화계, 언론계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의 조치가 필요하다. 정계에서는 통진당의 해산청구로 처방이 나왔으나 문화계, 언론계는 아직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들을 상대로 하는 치열한 문화투쟁이 수반되어야 한다. 주요일간지들이 앞장서서 문화투쟁을 지원하지만 SNS분야에서도, 주간지, 월간지 형태의 간행물에서도 친북좌파언론과의 처절한 투쟁의 불길이 번져야 한다. 동시에 공직사회에 만연된 출세지향주의와 부정부패, 먹이사슬관계로 부패협력구조를 체제화한 관피아의 척결역시 앞서 말한 후 보완의 긴급한 과제다. 최근 세월호 사건은 우리 국내구조가 안고 있는 후보완의 과제를 들춰내서 개혁의 도마에 올려놓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국가구조개혁과 내각개조>

 

우리는 하늘이 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 부정부패가 점(点)으로 존재하면 점을 뽑아야 한다. 선(線)이면 선을 절단하면 된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점이나 선이 아닌 입체적이고 전면적일 경우에는 총체적인 수술과 교체와 변환이 요구된다. 박근혜대통령은 바야흐로 총체적인 개혁을 요구받는 도전에 직면했다. 국무총리교체를 비롯한 내각개조가 국가개조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할 이유다. 국내구조상의 취약점을 그대로 두고는 어떠한 훌륭한 외교적 포석이나 이니셔티브도 실효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가 현시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주요한 과업은 국민의식개조를 위한 시민운동의 필요성이다.

 

 세월호의 비극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추진하는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와 같은 시민운동은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분야에서 국민의 의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자발적인 시민운동의 하나다.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부르짖는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국민의 의식개혁, 가치관 개혁운동이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통일을 위한 국내구조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4.16이전의 한국과 4.16이후의 한국이 전혀 달라져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국민적 요구가 실현될 날을 앞당기는데 국민적 총의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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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功七過三으로의 평가 정신이 필요하다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문화다.

등소평(鄧小平)이 모택동(毛澤東)의 행적을 평가하면서

그의 공(功)이 일곱 가지이고 과(過)가 세 가지인데,

 

공이 과보다 크기 때문에 그를 중국 근현대사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인생만사에 공과 과, 득(得)과 실(失), 미(美)와

추(醜)의 상반된 면이 공존한다는 만물의 진리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의 통치체제는 안정되고 사회와

경제가 그 바탕 위에서 큰 흔들림 없이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삼협대학이 주최한 세계총장협의회에서

24개국 총장들이 환담하는 자리에서 주고받은 이 말이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우리에게 지금 혼란이

지속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KBS 특집방송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방영됐다.

이승만 박사에게도 공과 과가 있다.

그는 우뚝 선 항일투쟁가였고 건국대통령이었으며

건국 이후의 혼란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물론 6·25전쟁 때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남하한 일,

개헌 등 독재정권으로 흐른 것 등 과도 있다.

 

하지만 인물로는 그만한 경력과 학식, 외교력과 지도력을 갖춘 이는 드물다.

그런데도 하와이 망명 이후 공은 다 잊히고 과만 지적될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풍요를 누리고

예체능이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바탕이

1960~70년대의 경제발전에 있는 것 아닌가.

 

박 전 대통령에게도 물론 과가 있다.

유신체제로 정권을 유지하려던 독재는 잘못이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 역시 남긴 공이 과보다 훨씬 많다.

지금 우리에게는 숭배할 만한 스승과 지도자가 없다.

존경할 만한 대통령, 어린이들이 배우고

마음으로 새길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선진국에 가면 국민 모두가 받드는 인물들의

동상이 여기저기 서 있고 책에서도 배운다.

 

그들의 과(過)도 기억되고 있지만 공(功)을 더 사서 기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만 부각시켜 폄훼하고 파괴한다.

 

이승만·박정희 두 전 대통령에게는 '건국대통령'

'경제대통령'이란 이름이 걸맞다.

다 같이 독재한 과가 만년(晩年)에

있었지만 공이 더 크고 남는다.

 

민주화에 큰 공이 있는 분에게는 '민주대통령',

선진화에 큰 공이 있는 분에게는 '선진화대통령' 등

이름을 붙여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건립해 나라의

 

지도자로 모신다면 나라의 안녕과 번영에 얼마나 큰 힘이 될까.

그런데 얼마 전 남산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데

정부 관계자는 한 사람도 가지 않았고,

 

박정희 기념관은 서울 외곽에 만들어졌다.

사회와 경제가 커지고 복잡해지면 정치든

정책이든 회색지대가 늘고 이익이

상충되는 부분이 커지기 마련이다. 국방에도,

지역에도, 교육에도, 과학기술에도 좋고

나쁜 것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한 면만 버리거나

편애하면 반대편의 반감과 반동이 생기고

거기서 끊임없는 분규와 투쟁이 생긴다.

그러면 중용(中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이야말로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정신과

이에 바탕한 정책선택이 필요하다.

극한투쟁으로 점철된 한국의 정치도 이제 조금

더 성숙한 관용과 배려, 한층 차원 높은 대도(大道)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

 

                                                       글쓴이▲ 박우희 세종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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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연구원의 통일세미나에서 벌어진 진풍경을 보고-

한반도 평화연구원은 9월28일 하오 2시 서울 은행회관 2층 대강당에서 남북한의 통일담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서울대학교 윤영관 정치외교학부 교수(전 외교통상부장관) 사회로 열린 이 세미나는 김석향 교수(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와 박정란 박사(서울대 평화연구원 북한학연구)의 주제발표가 있은 후 발표내용에 대한 질의가 뒤따랐다.

약80대로 보이는 분이 자기는 김대중 평화연구소 연구원이라고 소개하면서 첫 질의자로 나서서 MB가 북측이 제안한 금강산 피살사건의 공동조사에 불응하고 금강산 관광길을 막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면서 MB의 통일정책을 거두절미 욕하기 시작하자 윤 교수는 주제와 동떨어진 질의를 자제할 것을 당부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분풀이하듯 떠들다가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질의가 이어졌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이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잡고 김석향 교수의 발표에 시비를 걸었다. 내용인즉 김 교수가 북한에서 통일에 관련된 담론을 정리하다가 김정일 대에 들어와서 통일에 관해서 뚜렷한 언급이 없어 담론다운 담론을 말할 것이 없다고 주제를 마무리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선군정치, 핵개발, 미사일 발사 등 모든 것이 적화통일을 위한 노력인데 그런 부분을 통일담론과 관련 없는 것처럼 빼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 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앞서 첫 질의를 했던 사람이 그와 함께 온 80대노인과 합세하여 그분의 발언은 뉴 라이트에 가서나 떠들으라면서 갖은 쌍소리를 퍼부으면서 발언을 방해하고 윤 교수도 이런 식의 질의응답으로서는 좋은 세미나 진행이 어렵다고 발언 자제를 요청했으나 발언을 하던 분은 요지부동의 자세로 발언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장내는 수라장으로 으로 변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1차 회의가 끝났다. 이날 모임에는 이인호 전 주 러시아 대사, 김승호 대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들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세미나 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우리에게 토론문화가 없다는 소리는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을만큼 식상한 소리다. 국회에 없는 토론문화가 민간 속에서 자랄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연구원을 이끄는 김지철 선생이나 이 장로 원장 등이 비싼 돈을 들여 좋은 발표자와 토론자를 섭외하여 모시고 좋은 장소를 임대하여 마련해 놓은 자리에 와서 좋은 토론을 듣고 자기의 의견도 시의 적절하게 표현했으면 좋으련만 무슨 억하심정에서 남의 토론장을 떼로 몰려다니면서 망치는 가. 이를 취미로 삼는 노인 통일꾼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들을 단속할 법도 없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모든 시국 관련 세미나의 有料化를 추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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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如海)포럼: 통일부장관들과의 대화를 참관하고
 
2011년 6월19일 오후 5시 경동교회에서 여해 강원용 목사님의 서거 5주기를 기념하는 포럼이 통일부장관을 역임한 세분의 전직 장관과 현재의 현인택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말머리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오랫동안 통일부 고문을 역임하고 또 통일고문회의 의장을 역임하신 여해 강원용 박사님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오늘 세분 선배 장관님들의 말씀을 통해 많은 가르침과 혜안을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통일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홍국 박사는 포럼인사에서 강원용 목사님이 크리스천아카데미운동을 통해 한국사회의 각 분야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대화운동을 펼쳐 오셨음을 회상하고 특히 여해 선생이 생애의 후반부에 평화포럼의 결성을 주도, 각계각층을 망라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한 대화모임을 적극 추진했던 뜻을 살려 오늘 모임이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 목사님의 서거 5주년을 맞는 오늘날 남북한 간에 대화마저 막힌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하고 오늘 자리를 같이한 두분 장관님들과 제한된 시간내에 뜻잇는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현인택 장관까지를 합하여 통일부장관이 35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오늘 모인 사람이 역대 통일부장관의 의사를 전부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전제한 후 북한을 보는 자기 소회의 일단을 밝혔다.


이홍구 전 장관은 북한은 세계사의 진운에 따라가는데 실패한 정권이라고 지적하고 여기에 남북한 간에 대화에 의한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 큰 원인이 있다면서 통일의 절실성을 느끼지 못하는 세대로 국민의 대다수가 바뀌어 가는 현시점에서 통일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진지한 국민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맨 먼저 주제토론에 나선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강 목사님과 자기는 1968년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대화모임에 초청받은 것을 계기로 여러 차례 자리를 함께 했고 특히 통일부 고문회의 부의장(대통령이 의장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의장)으로 강원용 목사님을 모실 당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는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고 꾸중하는 말씀을 듣고 그 후 대북정책입안에서 목사님 말씀을 귀감으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건 없이 남북한 간에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대화의 시대가 곧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김대중 정권시절 소위 햇볕정책의 전도사역할을 하던 자기 입장이 마치 강 목사님의 말씀에서 연유된 것 같은 표현을 했다.


김영삼 정권시절에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김덕(金悳) 교수는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은 북한에게 끌려가면서 북한을 지원하는 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도출된 정책이라면서 김대중 정권시절은 그당시로서는 햇볕정책을 펼 칠 필요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MB정권의 새 통일접근 정책이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접촉을 통한 북한의 변화유도가 햇볕정책의 목표인 것처럼 보이나 그 정책은 전혀 실효가 없었다고 비판적 견해를 밝히고 아울러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을 해봐야 소용이 없겠지만 국제정치차원에서는 그보다 더 나은 대안도 없다고 말하고 그간 MB정권의 대미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얻고 특히 내년도에 핵 정상회담을 한국에서 개최하게 된 것은 외교적으로 성과가 크다고 평가하면서 북핵 해결을 위한 다각적 노력을 주문했다.

김덕박사는 이어 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대통령 보좌관(성명미상)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의 핵 포기 가능성을 비관하면서도 그러나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당장 성과는 없더라도 그 길을 통한 해결을 꾸준히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제 MB정권도 지금까지 추구해온 대북정책을 변화된 현실의 요구에 맞게 재검토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은에로의 승계문제는 김정일처럼 연착륙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북한공산정권이 당장 붕괴한다거나 공산정권이 변질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정권내부의 소수자중심의 권력다툼이 정권의 붕괴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한 정치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포럼의 좌장인 이홍구 전 총리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소형 원폭으로 25만명의 인명이 살생되었는데 그중 2만5천명의 한국인이 목숨을 잃었음을 상기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없이는 우리는 평화도 통일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키신저가 지구 최대의 군사국가인 미국과 러시아, 지구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이 마주앉아 4자간 대화로 북핵문제를 해결 못한다면 지구상의 어떠한 문제도 협상과 대화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음을 상기하면서 우리 한반도는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보면 매우 불운한 길을 지내왔으나 이제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북한은 지구상에서 지금까지 상궤를 이탈한 예외의 길을 걸어왔지만 영원한 예외는 없기 때문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는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임동원 씨는 이날 마지막 발언에서 우리는 너무 핵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핵문제가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2차 대전 이후 핵보유국 수는 늘었지만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된 일은 없었다고 운을 떼었다.

 이어 그는 핵무기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이라면서 한국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21기의 핵발전소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될 경우에는 현재의 북 핵보다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남북한이 대화를 열어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전쟁예방의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핵은 클린턴 대통령 당시에는 핵 무기화 과정의 5단계 중 제1단계의 낮은 수준이었으나 이것도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핵개발은 중단, 억제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이 대북 적대정책을 강화한 결과 북한 핵 무기화는 이제 3단계를 넘어 소형화, 경량화를 통해 미사일에 탑재하는 단계로 발전시키는 도정에 오른 것 같다고 북측 주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당국 간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북한은 자기들이 천안함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사과할 리 만무하고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일단 사과했기 때문에 더 이상 추가로 사과할 까닭이 없을 것이라면서 전쟁을 방지하려면 대화를 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임동원 씨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비극에 북의 대남공격가능성을 연결시키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뒤엎으려는 정책공갈을 펴고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접근은 지난 지자제 선거 시 야당이 천안함 사건을 역이용하여 전쟁공포를 유발,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압승했음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였다.


그가 말한 이날 발언의 주된 논지는 다음 선거 시 야당의 종북 세력과 북한의 호전세력이 연대, 북한의 미사일을 앞세운 전쟁위협을 무기로 하여 한국유권자들에게 원전폭파가 가져올 가공할 위협을 모면하려면 대북 유화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공갈함으로써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력화시키고 대북햇볕정책을 내세우는 세력의 승리를 도모하려는 책략의 일면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날 포럼에서 이홍구, 김덕 두 분 전 장관들은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합리적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임동원 씨는 북한의 경제적 실패나 3대에 걸친 세습독재, 대남 도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현시점에서 북한이 내놓고 있는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이날 국내 일부 우익들이 임동원 전 장관에 대한 색갈론적 평가가 지나친 편향이 아님을 오늘 그의 발언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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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0일 경동교회에서 박종화목사님이 설교하신 말씀중에 나오는 이 귀절은 통일꾼으로 살아가려는 나의 마음에 너무 뜨거운 감동을 주어  여기에 올립니다.  

前略.....훌륭한 음악가 베토벤의 이야기입니다. 아시는 대로 베토벤이 57세를 살았는데 28살에 청각 장애를 얻었으니 인생의 절반은 잘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 정작 음악활동을 할 때는 청각 장애를 얻어서 귀머거리로 지냈습니다. 귀머거리가 되고 난 뒤 4년 후에 형제들에게 이런 유서를 썼습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혹시 청각장애가 나을 수도 있다는 희망 속에 살았지만 속아서 살았습니다. 낫지 않는 군요. 들을 수 없는 운명, 감각이 없는 운명 속에 음악의 작곡가가 된다는 것이 부조리입니다. 잠시 후면 내가 인생을 마감할 겁니다. 형님들. 불운한 존재 용서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내게 마지막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한 순간만 허락해 주십시오. 너무도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순간만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이 유서인데 유서대로 되지 않고 불후의 명곡들을 작곡했습니다. 어느 날 실러(Friedrich Schiller)라는 시인의 책을 받아보았는데 그 책 이름이 독일말로 , 기쁨에 드리는 헌사, 환희의 송가, 이런 뜻입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신들의 광체를 발하는 기쁨이여, 모든 생명체를 삼키고 마시니 그대의 태양이 날아가듯 기쁨이 날아가리라. 온 인류여 기쁨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자. 기쁨이여 오라.” 이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56세 때, 죽기 바로 1년 전에 베토벤이 작곡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쁨에 드리는 찬가, 이 곡이 56세 때, 비엔나의 쾨른텐 극장에서 공연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습니다. 본인은 아마 광경만 보고 듣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 심포니 9번의 마지막 곡입니다. 저는 이 사실 하나를 보면서 ‘죽고 싶다. 생명이 끊어질 것이다. 정말 죽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작곡가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실러를 통해서 곡을 건졌는데 그 뒤 160년이 지났습니다.

1989년 12월 24일 밤, 한국시간으로는 12월 25일 저녁 시간입니다. 동독과 서독을 막았던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의 기쁨이 다가옵니다. 브란덴부르크 성문 광장 앞에서 수많은 관중이 모여 있습니다. 그 때 모든 청중이 약속이나 한 듯이 기쁨에 드리는 송가, 실러의 가사, 베토벤의 곡을 동-서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불렀습니다. 지휘도 아름다웠고 노래도 아름다웠는데 이 기쁨이라는 단어를 통일로, 2절에서는 자유로 바꿔서 불렀습니다.

생방송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저는 ‘베토벤이 청각장애 때문에 자살했던들, 실러의 시가 없었던들, 분노 속에 미안하다고 먼저 갔던들, 아마 베토벤의 심포니 9번도 없었겠지만 160년 이후의 동서독 통일 때의 환희와 기쁨은 내가 누리지 못했겠구나.’ 그 때 느낌입니다.

後略.....우리 민족에게도 통일은 올 것입니다. 통일을 기다린지 65년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리드리히 쉴러가 작사하고  베토벤이 작곡한 환희의 노래가 독일민족만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작시하고 작곡하는 삶을 키워나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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