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13년 4월 9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4월회 주최, 4.19문화상 시상식에서 이영일 4월회고문이 행한 특강연설문 전문이다.

한국통일문제의 현 단계

이 영 일(한중문화협회 회장)

 

1. 통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흔히 잘 아는 말이라도 그것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의(定義)하려면 매우 힘들 때가 많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통일이라는 용어도 이 점에서는 크게 예외가 아니다. 분단직후의 시기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거나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으로 통일염원이 표현되었고 북측에서는 “온 겨레가 일일천추 갈망하는 과업이라고 ”통일”을 정의했다. 남북공히 염원으로서의 통일을 말했을 뿐 구체적인 정의는 없었다.

 

그러나 동서냉전이 한국전쟁으로 격화되면서부터 통일은 일방에 의한 타방의 합병 또는 정복을 의미하였고 한반도의 휴전은 이러한 통일달성을 위한 전투를 현지 군사령관들이 잠정적으로 중지키로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점에서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상태가 법률적으로는 종결된 상태가 아니다. 이점에서 한국휴전협정은 국제법이 생긴 이래 가장 장기간 유지되는 휴전협정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을 가져왔던 국제정세는 많이 변천했다. 강대국들 간의 동서 냉전은 종결되었고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큰 물결이 지구촌을 감싸면서부터 통일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달라졌다. 우선 주변정세와 한반도 내부 상황에서 통일문제를 생각하는 새로운 관점들이 대두했다.

우선 국제정치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를 분단된 휴전체제로 더 이상 방치해두어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에 주변국들이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이 3차에 걸쳐 행해지고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이 지역을 향한 주변 국가들의 목적과제가 협상에 의해 해결될 전망이 약화됨에 따라 한반도 문제를 새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다루자는 논의가 국제정치의 지평에 떠오르고 있다. 오늘의 한반도를 어떻게 운영 관리하는 것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고 분쟁의 씨앗을 제거할 것인가라는 물음의 해법으로 한국통일문제가 새로운 출구를 얻게 되었다.

 

또 한반도 내부사정에서도 탈북현상과 인권문제가 등장하면서부터 어떤 통일, 즉 어떤 체제하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주변정세의 요구와도 어울리면서 탈북을 막고 인권을 보장하여 민족의 분단고통도 줄이고 주변 국가들의 부담도 덜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대두했다. 이하에서 21세기와 그 특징의 하나가 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나라 통일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2. 한국통일 상황의 점검

 

한국통일문제가 강대국이 포함된 국제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1954년의 제네바 정치회담이었다. 그러나 이 회담은 휴전협정을 국제사회가 추인하는데 그쳤고 그 후 한국문제를 유엔으로 이관시키는 것으로 끝장났다. 그러나 북한의 끈질긴 핵과 탄도 미사일개발시도는 한반도의 현상과 미래를 주제로 주변 강대국들 간의 논의가 재개될 필요성을 야기했다. 특히 중국은 북한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지지하면서도 한반도의 비핵화, 전쟁방지와 안정을 위한 6자회담(신 6자회담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의 개최를 안보리의 북한 제재결의에 포함시켜 요구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회담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일 경우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결의의 효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킬 우려도 없지 않지만 비군사적 방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담보할 새로운 메커니즘의 모색은 불가피하다. 여기서의 중점과제는 동북아 각국의 안보우려를 해소할 평화의 새로운 기틀마련이며 이 과업은 구체적으로는 한반도의 운영주체를 한반도의 비핵화. 개방화를 보장할 체제하의 통일 내지 통일에 준하는 안정된 남북한 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논의로 집약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대화가 중심이 되고 의제 가운데는 한반도의 통일문제가 포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한반도의 관리주체를 남북한의 어느 체제로 통합하는 것이 비핵화와 개방을 통한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의 문제로 결론이 집약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 내부 상황에서 보면 남북한의 어느 체제하에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민족의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인권이 보장되고 탈북사태를 막을 것인가라는 민족공리(民族功利)적 측면에서 남북한을 평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탈북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한반도 운영주체를 찾는 과제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상 두 가지의 큰 줄거리를 토대로 그간 남북한이 걸어온 길을 간략히 비교해 보기로 한다.

 

3. 남북한 관계의 전개 회고

1970년은 한반도 역사에서 분단국으로서 남북한이 변화된 내외정세 속에서 경쟁을 새롭게 전개하는 역사의 시발점이 된다. 우선 한국은 1970년 8월 15일의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평화통일선언을 시발로 해서 국가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갔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남북한을 창조와 개발과 건설을 향한 선의의 경쟁에 나설 것을 북한에 촉구하면서 통일수단으로서 무력과 폭력을 사용치 않을 것을 중외에 밝힌 평화통일구상을 발표했다. 이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은 핵무기 비 확산조약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건설에 성공한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1970년 4대군사로선(全體人民의 武裝化, 全軍의 幹部化, 全國土의 要塞化, 軍裝備의 現代化)의 완수를 외치면서 “인민혁명을 통한 남조선 해방”을 선언했던 북한은 오늘날 지구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북한은 한국의 국력우위를 만회할 방도를 상실하자 체제개혁대신에 전체 주민을 굶기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경주, 탄도미사일과 세 차례의 핵실험을 통하여 소위 북한판 강성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남북한의 어느 측에서건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시도할 경우 주변 국가들의 안보우려를 유발, 필연적으로 외세개입을 가져온다. 유엔안보리의 3차 걸친 대북제재결의와 중국주도의 6자회담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개발에서 비롯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외세개입에 다름 아니다.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은 이 점에서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엄청난 난관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동독과 서독이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도, 제조도 하지 않을 것임을 주변국들에게 다짐하고 핵확산 금지조약에 양독(兩獨)이 가입함으로써 주변국들의 안보 우려를 불식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유도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지금 핵무기 없이도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아닌가.

 

4.급변하는 주변정세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한반도의 주변정세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해 4회(결의 1718, 1874, 2087, 2094호)에 걸쳐 제재결의안을 상임이사국 전원 일치로 가결시켰다. 이 결의는 처음에는 권고안이었으나 3차 결의부터는 회원국들에게 구속력을 갖는 결의로 제제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 결의보다 더 중요한 정세변화는 중국의 대북태도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3차 핵 실험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북핵문제의 본질을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문제로 간주하고 중국은 제3자 입장에서 미 북한관계를 조정하는 위치를 고수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화의 바로 직전단계인 제3차 핵 실험에 이르자 중국도 북핵문제가 더 이상 미 북한간의 문제만이 아닌 중국자신의 문제임을 각성하게 되었다. 최근 덩위원(鄧聿文)이라는 중국공산당 당학교의 한 간부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올린 글(2013년 2월 28일 9면)은 오늘의 중국입장을 잘 간추리고 있다.

 

덩위원은 이 글에서 북한이 일단 핵무장을 끝낸다면 김정은 정권은 중국을 상대로도 핵 공갈을 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냉전기에는 중국에 유용했지만 이제 북한을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보는 것은 시대에 뒤진(outdated)견해라면서 중국은 이제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외신에 의하면 덩위원은 이 글 발표 후 직위해제를 당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이미 내부토론을 거친 후 발표되었음을 상기할 때 중국의 대북정책은 바야흐로 변화의 시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북한이 휴전협정을 일방적으로 백지화한다고 선언한 것은 휴전협정의 서명당사자인 중국에 대한 도발임과 동시에 강한 불신을 표현한 것이다.

 

5. 중국의 접근방식

 

이와 동시에 중국의 인민일보가 금년 1월 24일자보도에서 표본겸치(標本兼治)론을 들고 나온 대목도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즉 여기서 표(標)라는 것은 안보리 결의에 맞추어 제제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고 더 이상 국면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취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고, 또 본(本)이라는 것은 동북아 안보기제(Security Mechanism)를 새롭게 정립, 휴전체제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안보에 대한 상호신뢰를 강화해 나가자는 것을 말한다. 인민일보는 2013년 2월 12일자에서 한반도 안보정세의 악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표본겸치(標本兼治)의 방식을 채택, 협상을 통하여 전면적인 안보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관련 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

앞으로 중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중국은 미국과의 논의를 통해 비핵화가 되고 개방된 한반도의 미래를 모색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개혁개방을 선택하지 않고는 경제개발을 이룩할 수 없으며 정권의 주체가 개혁개방노선을 걷는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저지하지 않으면 핵 도미노, 군비경쟁, 전운(戰雲)에 쌓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통일의 기회이기도 하며 새로운 긴장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관계, 당, 학계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한반도의 비핵화(그들은 無核化라고 함)와 한반도의 안정이 중국의 국익과 직결됨을 강조한다. 이 국익을 실현할 방도가 무엇인가.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에 중요한 지역이지만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김정은 세습정권보다는 비핵개방을 공약하는 새로운 북한정권의 등장을 중국은 더 선호할 것이다.(Regime Change)

 

6. 21세기 시대의 큰 흐름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북한이 개혁개방을 성취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봄꽃이 꼭 섭씨 15도(Critical Mass臨界質量)가 되어서 피듯이 평양의 개혁개방도 온도가 현재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 지금 평양의 온도는 몇 도일까. 현재의 온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세계에서 내노라고 하는 국제정치전문가들도 소련의 붕괴나 중동에서 시작된 재스민혁명, 독일의 통일을 예측 못했다. 그러나 예측을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와야 할 사태가 비켜가지는 않는다.

북한 땅에서는 주민들이 비핵개방운동을 펼칠 여지가 현재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북한주민이 체제에 저항할 유일한 수단은 탈북뿐이다. 탈북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평양의 온도는 이미 10도를 넘어선지 오래인 것 같다. 배고픔을 틈타 외부세계로부터 유입되는 지식과 정보가 북한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사상강국(思想强國)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이미 허물어졌고 경제 강국의 꿈도 사라진지 오래다.

그들은 지금 핵미사일 체제만 갖추면 그것이 곧 강성대국이라고 주장하면서 핵무장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침략위협이 사라지면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논리를 당 학습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핵미사일은 재조하는 힘에 못지않게 유지하는 비용이 과다하기 때문에 북한은 결국 인민의 경제적 욕구를 해결할 방도가 없고 더욱이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 등 외부의 압박으로 핵미사일체제의 유지는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현시점에서 강대국들이 제시할 한반도 문제해결방안은 명분상으로는 한반도정세변화에 이해관계를 갖는 주변 국가들의 안보우려를 해결할 동북아시아 안보기제(安保機制)를 마련하고 이 틀 안에서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변화시키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동북아시아의 안보기제가 강구될 수 없기 때문에 비핵화와 안보기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표본겸치(標本兼治)가 필요한 것이다.

 

7. 결론과 전망

 

현시점에서 주변대국들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을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기 책임을 다하도록 하자는 데도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몰려오는 탈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담을 줄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 문제의 해법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외면하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김정은 세습정권을 북한체제유지의 유일한 대안으로 보는 사고를 버리는데서 찾아야 한다.

우선 한국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비핵화, 개방화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탈북현상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중국의 잉여 노동력을 오히려 흡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양자 공히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균형을 취하게 될 것이다. 한국주도로 통일이 성취되지 않고 북한에 비핵개방정권만 성립되어도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은 가속화되고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만들어져 경제통합이 촉진됨으로 해서 한반도는 준통일상태(準統一狀態)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완전통일은 자주적으로 여유 있게 추진해 나갈 것이다.

북한 땅에 비핵개방정권을 세우는 일이 현 시기에 있어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지름길임을 남북한 동포들과 주변국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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